‘영국보다 미국에서 먼저 출간된 디킨스의 작품’ 중 하나 : 조지 실버맨의 해명(George Silverman's Explanation by Charles Dickens)(1868)은 매우 드물게 ‘영국보다 미국에서 먼저 출간된 디킨스의 작품’ 중 하나로, Atlantic Monthly를 통해 발표되었습니다. 미국에서 발표되었기는 하지만, 특정한 미국인이 아니라 인간 자체의 위선을 고발하고 풍자하는 작품입니다. 찰스 디킨스가 생애 말미에 쓴 작품 중 하나로, 고아 주인공은 그가 즐겨 사용하는 캐릭터입니다만, 전반적인 작품의 분위기가 어둡고 우울할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성격 또한 소심해 그의 목소리로 접하는 소설 또한 독자를 깊은 심연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과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문학여행을! B
집조차 갖지 못하고 직장조차 변변치 않은 부모와 함께 프레스턴의 지하실(Preston cellar)에서 어렵사리 성장한 조지 실버맨(George Silverman)은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됩니다.
My parents were in a miserable condition of life, and my infant home was a cellar in Preston. I recollect the sound of father’s Lancashire clogs on the street pavement above, as being different in my young hearing from the sound of all other clogs; and I recollect, that, when mother came down the cellar-steps, I used tremblingly to speculate on her feet having a good or an ill-tempered look,?on her knees,?on her waist,?until finally her face came into view, and settled the question. From this it will be seen that I was timid, and that the cellar-steps were steep, and that the doorway was very low. 부모님은 비참한 삶을 살고 계셨고, 유아원은 프레스톤에 있는 지하실이었어요. 저는 아버지의 랭커셔 나막신 소리가 제 어린 귀가 다른 모든 나막신 소리와는 다르다고 상기합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지하실 계단을 내려올 때, 저는 떨면서 어머니께서 좋으시거나 성질이 고약해 보이실 거라고 추측하곤 했습니다. 마침내 어머니 무릎 위, 허리. 에이스가 시야에 들어와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것에서 내가 소심하고 지하실 계단이 가파르고, 출입구가 매우 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조지는 부모를 잃고 나서야 지하실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호크야드(Hawkyard)의 눈에 든 그는 어둡고 컴컴한 지하실을 벗어나 농가에 머무르며 학교와 교회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그리 순탄하게 풀리지 않았는데…….
‘Well,’ said he, ‘you are going, George, to a healthy farm-house to be purified. Keep in the air there as much as you can. Live an out-of-door life there, until you are fetched away. You had better not say much?in fact, you had better be very careful not to say anything?about what your parents died of, or they might not like to take you in. Behave well, and I’ll put you to school; O, yes! I’ll put you to school, though I’m not obligated to do it. I am a servant of the Lord, George; and I have been a good servant to him, I have, these five-and-thirty years. The Lord has had a good servant in me, and he knows it.’
그는 소심하고 무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세상이 그를 소심하고 무지하게 만들어졌다고 할까요?
MY timidity and my obscurity occasioned me to live a secluded life at college, and to be little known. No relative ever came to visit me, for I had no relative. No intimate friends broke in upon my studies, for I made no intimate friends. I supported myself on my scholarship, and read much. My college time was otherwise not so very different from my time at Hoghton Towers.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아델리나(Adelina)마저 자신보다 더 나은 조건의 남자 그랜빌(Granville)에게 양보할 정도로 한없이 어리숙한 조지 실버맨.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조지는 페어웨이(Lady Fareway)에게 ‘자신의 희생’을 조롱 당하고 비난당하기 일쑤입니다.
With apologies for my remissness or indistinctness, I assured my lady that I accepted it most readily and gratefully. I added that I hoped she would not estimate my appreciation of the generosity of her choice by my flow of words; for I was not a ready man in that respect when taken by surprise or touched at heart. 내가 태만하거나 불명료한 것에 대해 사과하면서 나는 그것을 가장 기꺼이 그리고 감사하게 받아들였다고 부인에게 확신시켰다. 나는 그녀가 내 말의 흐름으로 내가 선택한 관대함에 대한 감사를 평가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나는 놀랐거나 마음에 감동을 받았을 때 그런 면에서 준비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느덧 말년에 접어든 조지 실버맨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독자에게 이야기를 건넵니다. 과연 그의 해명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판단은 오직 독자의 몫일 것입니다.
They stood by me, Adelina and her husband, through it all. Those who had known me at college, and even most of those who had only known me there by reputation, stood by me too. Little by little, the belief widened that I was not capable of what was laid to my charge. At length I was presented to a college-living in a sequestered place, and there I now pen my explanation. I pen it at my open window in the summer-time, before me, lying in the churchyard, equal resting-place for sound hearts, wounded hearts, and broken hearts. I pen it for the relief of my own mind, not foreseeing whether or no it will ever have a reader. ‘영국보다 미국에서 먼저 출간된 디킨스의 작품’ 중 하나 : 조지 실버맨의 해명(George Silverman's Explanation by Charles Dickens)(1868)은 매우 드물게 ‘영국보다 미국에서 먼저 출간된 디킨스의 작품’ 중 하나로, Atlantic Monthly를 통해 발표되었습니다. 미국에서 발표되었기는 하지만, 특정한 미국인이 아니라 인간 자체의 위선을 고발하고 풍자하는 작품입니다. 찰스 디킨스가 생애 말미에 쓴 작품 중 하나로, 고아 주인공은 그가 즐겨 사용하는 캐릭터입니다만, 전반적인 작품의 분위기가 어둡고 우울할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성격 또한 소심해 그의 목소리로 접하는 소설 또한 독자를 깊은 심연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과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문학여행을! B
집조차 갖지 못하고 직장조차 변변치 않은 부모와 함께 프레스턴의 지하실(Preston cellar)에서 어렵사리 성장한 조지 실버맨(George Silverman)은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됩니다.
My parents were in a miserable condition of life, and my infant home was a cellar in Preston. I recollect the sound of father’s Lancashire clogs on the street pavement above, as being different in my young hearing from the sound of all other clogs; and I recollect, that, when mother came down the cellar-steps, I used tremblingly to speculate on her feet having a good or an ill-tempered look,?on her knees,?on her waist,?until finally her face came into view, and settled the question. From this it will be seen that I was timid, and that the cellar-steps were steep, and that the doorway was very low. 부모님은 비참한 삶을 살고 계셨고, 유아원은 프레스톤에 있는 지하실이었어요. 저는 아버지의 랭커셔 나막신 소리가 제 어린 귀가 다른 모든 나막신 소리와는 다르다고 상기합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지하실 계단을 내려올 때, 저는 떨면서 어머니께서 좋으시거나 성질이 고약해 보이실 거라고 추측하곤 했습니다. 마침내 어머니 무릎 위, 허리. 에이스가 시야에 들어와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것에서 내가 소심하고 지하실 계단이 가파르고, 출입구가 매우 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조지는 부모를 잃고 나서야 지하실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호크야드(Hawkyard)의 눈에 든 그는 어둡고 컴컴한 지하실을 벗어나 농가에 머무르며 학교와 교회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그리 순탄하게 풀리지 않았는데…….
‘Well,’ said he, ‘you are going, George, to a healthy farm-house to be purified. Keep in the air there as much as you can. Live an out-of-door life there, until you are fetched away. You had better not say much?in fact, you had better be very careful not to say anything?about what your parents died of, or they might not like to take you in. Behave well, and I’ll put you to school; O, yes! I’ll put you to school, though I’m not obligated to do it. I am a servant of the Lord, George; and I have been a good servant to him, I have, these five-and-thirty years. The Lord has had a good servant in me, and he knows it.’
그는 소심하고 무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세상이 그를 소심하고 무지하게 만들어졌다고 할까요?
MY timidity and my obscurity occasioned me to live a secluded life at college, and to be little known. No relative ever came to visit me, for I had no relative. No intimate friends broke in upon my studies, for I made no intimate friends. I supported myself on my scholarship, and read much. My college time was otherwise not so very different from my time at Hoghton Towers.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아델리나(Adelina)마저 자신보다 더 나은 조건의 남자 그랜빌(Granville)에게 양보할 정도로 한없이 어리숙한 조지 실버맨.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조지는 페어웨이(Lady Fareway)에게 ‘자신의 희생’을 조롱 당하고 비난당하기 일쑤입니다.
With apologies for my remissness or indistinctness, I assured my lady that I accepted it most readily and gratefully. I added that I hoped she would not estimate my appreciation of the generosity of her choice by my flow of words; for I was not a ready man in that respect when taken by surprise or touched at heart. 내가 태만하거나 불명료한 것에 대해 사과하면서 나는 그것을 가장 기꺼이 그리고 감사하게 받아들였다고 부인에게 확신시켰다. 나는 그녀가 내 말의 흐름으로 내가 선택한 관대함에 대한 감사를 평가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나는 놀랐거나 마음에 감동을 받았을 때 그런 면에서 준비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느덧 말년에 접어든 조지 실버맨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독자에게 이야기를 건넵니다. 과연 그의 해명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판단은 오직 독자의 몫일 것입니다.
They stood by me, Adelina and her husband, through it all. Those who had known me at college, and even most of those who had only known me there by reputation, stood by me too. Little by little, the belief widened that I was not capable of what was laid to my charge. At length I was presented to a college-living in a sequestered place, and there I now pen my explanation. I pen it at my open window in the summer-time, before me, lying in the churchyard, equal resting-place for sound hearts, wounded hearts, and broken hearts. I pen it for the relief of my own mind, not foreseeing whether or no it will ever have a rea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