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엔 쉬어야 하는 법률이 있다면?! 리쌍(Leessang)이 부릅니다. 조까라 마이싱!! : 3개조의 일요일(Sunday Under Three Heads by Charles Dickens)(1836)은 찰스 디킨스가 1836년 티모시 스파크(Timothy Sparks)란 필명으로 Chapman and Hall 출판사를 통해 발표한 소책자(Pamphlet)입니다. 작가는 이를 통해 귀족 계급의 터무니없는 정책은 물론 이를 만든 광신도와 상류 계급층의 오만함을 풍자하고 비판하였습니다. Look into your churches?diminished congregations, and scanty attendance. People have grown sullen and obstinate, and are becoming disgusted with the faith which condemns them to such a day as this, once in every seven. And as you cannot make people religious by Act of Parliament, or force them to church by constables, they display their feeling by staying away. 여러분의 교회들을 들여다보세요. 줄어든 회중과 적은 출석자. 사람들은 점점 시무룩해지고 완고해져서 오늘과 같은 날, 일곱 명 중 한 명꼴로 그들을 비난하는 믿음에 혐오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회법에 의해 사람들을 종교적으로 만들 수도 없고, 경찰관으로 하여금 교회에 강제로 가게 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멀리함으로써 그들의 감정을 드러냅니다.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과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문학여행을! B
당시 찰스 디킨스의 나이는 피 끓는 24세로, 헌사(Dedication)를 통해 런던 주교(Bishop of London)에게 (물론 그의 동의 없이) 헌정하는 퍼포먼스까지 과시하였습니다. 비아냥거림과 조롱으로 가득한 문장을 읽노라면, 왜 그가 필명으로 출간하였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Your elevated station, my Lord, affords you countless opportunities of increasing the comforts and pleasures of the humbler classes of society?not by the expenditure of the smallest portion of your princely income, but by merely sanctioning with the influence of your example, their harmless pastimes, and innocent recreations. 주여, 당신의 높은 지위는 당신에게 사회의 더 보잘것없는 계층의 안락과 즐거움을 증가시킬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줍니다. 당신의 작은 수입의 지출이 아니라 단지 당신의 본보기와 그들의 무해한 취미와 순진한 오락의 영향으로 허락하는 것입니다.
That your Lordship would ever have contemplated Sunday recreations with so much horror, if you had been at all acquainted with the wants and necessities of the people who indulged in them, I cannot imagine possible. That a Prelate of your elevated rank has the faintest conception of the extent of those wants, and the nature of those necessities, I do not believe. 영주님께서 일요일의 휴양을 그렇게도 끔찍하게 생각하셨으리라 생각하셨다면, 만약 당신이 그것에 탐닉하는 사람들의 욕구와 필수품들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의 높은 지위에 있는 수도원장님은 그들이 원하는 범위와 그 필수품들의 본질에 대한 가장 희미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For these reasons, I venture to address this little Pamphlet to your Lordship’s consideration. I am quite conscious that the outlines I have drawn, afford but a very imperfect description of the feelings they are intended to illustrate; but I claim for them one merit?their truth and freedom from exaggeration. I may have fallen short of the mark, but I have never overshot it: and while I have pointed out what appears to me, to be injustice on the part of others, I hope I have carefully abstained from committing it myself. 이러한 이유로, 이 작은 소책자에 대해 각하께서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제가 그린 윤곽을 꽤 의식하고 있지만, 제가 묘사하고자 하는 감정들에 대한 매우 불완전한 묘사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한 가지 장점, 즉 진실과 과장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합니다. 제가 표적에 못 미쳤을지 모르지만, 저는 결코 그것을 극복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들의 부정으로 보이는 것을 지적한 반면, 저는 제 자신이 그것을 저지르는 것을 조심스럽게 자제했기를 바랍니다.
안식일주의(Sabbatarianism) : 3개조의 일요일(Sunday Under Three Heads by Charles Dickens)(1836)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영국에서 발의된 의회법 안식일주의(Sabbatarianism)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스코틀랜드 하원의원 앤드류 아그뉴 경(Andrew Agnew, 7th Baronet Agnew of Lochnaw)을 중심으로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1836년 일요일에 모든 노동과 여가 활동을 금지하는 법률(prohibiting all work and all recreation on a Sunday)을 발의하였습니다. 일요일에 쉬는 것까진 좋은데, 여가 활동까지 금지한다?! 뭔가 느낌이 쎄하네요. 더군다나 아이를 돌보는 주부, 교회로 향하는 마차의 마부, 일요일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요리사와 웨이터 등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며, 특히 부와 권력을 갖춘 귀족들보다 서민층에서는 터무니없는 법률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도 안식일주의(Sabbatarianism)는 법안으로 통과되지 않았고, 그가 1837년 의회를 떠난 이후에는 그 누구도 비슷한 법안을 발의하지 않으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원제는 3개의 머리 아래의 일요일(Sunday Under Three Heads by Charles Dickens)(1836)로 당시 사용한 소책자 표지에는 실제로 3개의 얼굴이 위에서부터 세로로 줄지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소제목과 함께 가장 위에는 뚱뚱하고 심술 맞아 보이는 귀족(I. As It Is)이, 중간에는 삐쩍 마른 여인이 울상 짓고 있는 표정(II. As Sabbath Bills Would Make It)이, 마지막에는 가장 멀쩡해 보이는 사내의 얼굴(III. As It Might Be Made)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본지에서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제목이라고 판단해, 3개조의 일요일(Sunday Under Three Heads by Charles Dickens)(1836)로 옮겼습니다.
There is not a manufacturer or tradesman in existence, who would not employ a man who takes a reasonable degree of pride in the appearance of himself and those about him, in preference to a sullen, slovenly fellow, who works doggedly on, regardless of his own clothing and that of his wife and children, and seeming to take pleasure or pride in nothing. 자신의 옷차림이나 아내나 자녀와 상관없이 끈질기게 일하고, 즐거움이나 자존심을 갖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무룩하고 단정치 못한 사람을 선호하기 위해 자신과 그에 대한 사람들에 대해 상당한 정도의 자부심을 가지는 사람을 고용하지 않을 제조업자나 상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