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의 사후 그의 장녀 메리 디킨스(Mary Dickens)(1838~1896)와 그의 가사도우미이자 고문인 조지나 호가스(Georgina Hogarth)는 그가 평생 쓴 편지를 정리해 3권의 서간집(The Letters of Charles Dickens)(1833~1870)으로 엮었습니다.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과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문학여행을! B
We intend this Collection of Letters to be a Supplement to the "Life of Charles Dickens," by John Forster. That work, perfect and exhaustive as a biography, is only incomplete as regards correspondence; the scheme of the book having made it impossible to include in its space any letters, or hardly any, besides those addressed to Mr. Forster. As no man ever expressed himself more in his letters than Charles Dickens, we believe that in publishing this careful selection from his general correspondence we shall be supplying a want which has been universally felt. 우리는 이 편지 모음을 John Forster의 "Charles Dickens의 삶"에 대한 부록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전기로서 완벽하고 철저한 저작은 서신에 관해서만 불완전합니다. 책의 구성으로 인해 포스터 씨에게 보낸 편지 외에는 어떤 편지도 포함하거나 거의 포함할 수 없었습니다. 찰스 디킨스만큼 자신의 편지에서 자신을 더 많이 표현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일반적인 서신에서 이 신중한 선택을 출판함으로써 보편적으로 느껴져 온 부족함을 채워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Our request for the loan of letters was so promptly and fully responded to, that we have been provided with more than sufficient material for our work. By arranging the letters in chronological order, we find that they very frequently explain themselves and form a narrative of the events of each year. Our collection dates from 1833, the commencement of Charles Dickens's literary life, just before the starting of the "Pickwick Papers," and is carried on up to the day before his death, in 1870. 편지 대출에 대한 우리의 요청은 매우 신속하고 완벽하게 응답되어 우리의 작업에 필요한 충분한 자료를 제공했습니다. 시간 순서대로 편지를 배열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이 매우 자주 스스로를 설명하고 매년 사건의 서사를 형성한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컬렉션은 "Pickwick Papers"가 시작되기 직전인 Charles Dickens의 문학 생활이 시작된 1833년부터 시작되어 1870년 그의 사망 전날까지 계속됩니다.
이는 존 포스터(John Forster)의 찰스 디킨스의 삶(Life of Charles Dickens) 부록으로 기획되었기에, 그와 주고받은 서신이 대거 포함되어 있으며, 이와 함께 찰스 디킨스와 서신을 주고받은 수많은 지인, 친구, 출판관계자 등을 기증받아 추가하였습니다.
It was our intention as well as our desire to have thanked, individually, every one?both living friends and representatives of dead ones?for their readiness to give us every possible help to make our work complete. But the number of such friends, besides correspondents hitherto unknown, who have volunteered contributions of letters, make it impossible in our space to do otherwise than to express, collectively, our earnest and heartfelt thanks. 살아 있는 친구와 죽은 자의 대표자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감사를 표하는 것이 우리의 의도이자 소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특파원 외에 자원하여 편지를 기부한 그러한 친구들의 수는 우리의 공간에서 우리의 진지하고 진심 어린 감사를 집단적으로 표현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1833년부터 그가 사망하기 직전의 1879년까지, 연대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나 안타깝게도 그의 막내딸 케이트(Kate)와 주고받은 서신은 1873년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제외되어 있습니다.
A blank is made in Charles Dickens's correspondence with his family by the absence of any letter addressed to his daughter Kate (Mrs. Perugini), to her great regret and to ours. In 1873, her furniture and other possessions were stored in the warehouse of the Pantechnicon at the time of the great fire there. All her property was destroyed, and, among other things, a box of papers which included her letters from her father. Charles Dickens의 가족과의 서신에는 그의 딸 Kate(Mrs. Perugini), 그녀와 우리 모두에게 보낸 편지가 하나도 없어서 공백이 있습니다. 1873년, 그녀의 가구와 기타 소지품은 대화재 당시 팬테크니콘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녀의 모든 재산과 무엇보다도 그녀의 아버지가 보낸 편지가 들어 있는 종이 상자가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3권으로 분권 출판해야할 만큼 방대한 양의 편지는 ‘인간 찰스 디킨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입장권일 것입니다.
In publishing the more private letters, we do so with the view of showing him in his homely, domestic life?of showing how in the midst of his own constant and arduous work, no household matter was considered too trivial to claim his care and attention. He would take as much pains about the hanging of a picture, the choosing of furniture, the superintending any little improvement in the house, as he would about the more serious business of his life; thus carrying out to the very letter his favourite motto of "What is worth doing at all is worth doing well." 보다 사적인 편지를 출판할 때 우리는 그의 가정적이고 가정적인 생활에서 그를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합니다. 즉, 그의 끊임없고 힘든 일 속에서 그의 보살핌과 관심을 요구하기에 너무 사소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은 가사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 그는 그림을 걸고, 가구를 선택하고, 집안의 작은 개선 사항을 감독하는 일에 대해 인생의 더 심각한 일을 하는 것만큼이나 많은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따라서 "할 가치가 있는 일은 잘할 가치가 있다"는 그의 가장 좋아하는 모토를 글자 그대로 실천합니다.
그는 1870년 6월 9일 급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숨을 거두었는데, 같은 해 5월에 쓴 편지까지 포함되어 있으며, 호주에 있는 아들 알프레드(Alfred D'Orsay Tennyson Dickens)(1845~1912)에게 보낸 편지는 그의 사후에 전달되었습니다. 알프레드는 군 입대에 실패한 후 재단사로 근무하던 중 아버지의 권유로 1865년 호주로 이민 갔습니다. 이후 호주에 정착하여, 45년간 머물렀으나 아버지가 사망한 후 잠시 영국으로 귀국해 머물렀습니다. 이후 ‘찰스 디킨스의 아들’로써 왕성하게 활동하였으며, 미국에서 사망한 후 맨해튼에 안장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