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에 만나는 그의 첫 소설이자 출세작!
청년 무명작가를 일약 러시아문학의 총아로 만든 바로 그 작품!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이 된 『가난한 사람들』이 새로운 번역으로 독자들과 만난다. 가난하고 궁색한 삶 속에서도 오로지 문학에만 정진하던 20대의 무명작가 도스토옙스키는 이 작품으로 당시 최고의 작가로 불리던 “제2의 고골”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러시아문학의 무서운 신인으로 자리하게 된다.
대도시의 초라한 뒷골목에 사는 중년의 하급관리 마카르 제부시킨과 그의 먼 친척뻘이 되는 고아 소녀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의 비극적 사랑을 다룬 이 작품은, 도스토옙스키가 새로운 형식의 탐구와 이의 완성을 위해 스스로 얼마나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었으며, 치열하게 고민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수차례의 개작과 수정, 보완을 거쳐 완성한 『가난한 사람들』의 첫 독자가 된 친구 그리고로비치와 출판인 니콜라이 네크라소프는 밤을 새워 작품을 읽었고, 마지막 부치지 못한 편지 대목에서 동시에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이후 네크라소프는 유명한 평론가인 비사리온 벨린스키를 찾아갔고, 벨린스키는 “가난한 사람들의 사랑과 고통, 파멸을 통해 사회적인 불평등과 갖가지 사회악적 요소들을 드러낸 걸작”이라고 평가하며 도스토옙스키에게 격려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주인공 마카르와 바르바라가 주고받는 54통의 편지글에는 경제적 빈곤, 사람들의 조롱과 따가운 시선으로 하루하루 절박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두 주인공 외에도 이 작품에는 가난하고 가련한 사람이 여럿 등장한다. 몸이 닳도록 일하는 하숙집 하녀 테레자, 아침 일찍부터 빨래와 바느질을 하는 노파 페도라, 약한 몸에도 일자리를 구하려고 분주히 돌아다니가 병에 걸려 죽고마는 대학생 포크롭스키, 삶이 괴로워 술독에 빠져 지내고 아들마저 먼저 떠나보낸 노인 포크롭스키, 거리에서 음악을 들려주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악사 샤르만카, 억울한 일로 오랫동안 법정에서 다투다가 끝내 승소했지만 갑자기 세상을 떠난 코르시코프와 그의 가족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들이 느끼는 외로움, 수치심, 위축감, 두려움, 분노심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대부분 가난에서 비롯된 것임을 가감 없이 드러냄으로써 사실주의 문학의 진수를 선보였다.
당시 최고의 작가였던 고골에 빗대
“새로운 고골”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심리를
구체적 서사로 풀어놓은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대표작!
작품 속에서 마카르는 바르바라가 빌려준 니콜라이 고골의 단편 「외투」를 읽게 된다. 「외투」는 볼품없는 외모와 소심한 성격을 가진 만년 9등 문관 아카키예비치가 어렵게 돈을 모아 마련한 새 외투에 얽힌 이야기이다. 더는 수선도 불가능한 낡은 외투를 버리고 새 외투를 입고 출근한 첫날, 아카키예비치는 강도에게 외투를 빼앗기고 만다. 갖은 노력으로 외투를 되찾기 위해 분투하지만 결국 외투를 찾지 못한 채 앓아누워 죽게 된다는 것이 「외투」 개략적인 줄거리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주인공 마카르는「외투」의 주인공 아카키예비치와 그의 불행을 자신에 관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고는 모욕감에 분노하고 절망한다. 실제로 두 주인공은 외형적으로는 매우 닮아 있지만 차이점 또한 존재한다. 「외투」에서 주인공의 모습과 형편은 제3자의 눈으로 묘사되며, 그의 내면세계는 들여다볼 수 없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서는 주인공들의 삶과 그들 앞에 놓인 문제, 생각과 감정, 심리 상태가 그들에 의해 직접 이야기된다. 도스토옙스키는 가진 것 없고, 억눌리고, 사회적으로 하찮게 여겨지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도록 했다. 당시 평론가들이 도스토옙스키에게 “새로운 고골”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벨린스키가 평가했듯 “사회적인 불평등과 갖가지 사회악적 요소들을 드러낸 걸작”을 뛰어넘어 주인공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사랑, 행복, 박탈감, 소외감 등을 그들의 심리를 통해 구체적인 서사로 풀어낸 작품이다. 마카르는 바르바라를 돕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고 결국 빈털터리가 되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즐거움이나 행복은 오로지 부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며, 가난한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바르바라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서 자신이 처한 처지를 “운명이 날 내몰고 천대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스스로 존엄성을 부정”할 정도라고 표현했다. 바르바라 역시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떨어져야 한다”라는 말을 전하며 결국 마카르 곁을 떠난다.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전망이 있을 리 없다. 도스토옙스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두 주인공을 통해 가난과 궁핍이 주는 심리적 결과를 절절하게 그려냄으로써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가진 것 없고, 억눌리고,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이 지닌 선량함과 순수한 사랑, 고결한 자기희생
『가난한 사람들』은 사랑할 대상을 만난 마카르의 설레는 봄 편지로 시작해 그 대상을 잃고 비통해하는 가을, 차마 끝맺지 못하는 편지로 마무리된다. 배운 것 없고 능력도 없으니 그저 순종적인 태도로 조용히 사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마카르는 먼 친척뻘이 되는 아가씨 바르바라를 알게 되면서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 일상에 활력을 얻는다. 그녀에게 새 거처를 마련해주고 자신은 이웃집의 가장 저렴한 방으로 옮겨온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최선을 다해 그녀를 보살피려는 그의 의지는 결국 그를 무일푼 신세로 만든다. 바르바라는 마카르에게 한없이 감사한 마음을 지니지만 한편으로는 서서히 피폐해가는 그를 지켜보며 괴로워한다. 경제적 빈곤, 사람들의 조롱과 따가운 시선으로 하루하루 절박하게 살아가는 두 사람에게 분홍빛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벼랑 끝에 서서 삶과 죽음, 정신적인 구원과 파멸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체험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스토옙스키가 독자들에게 보여주려 한 것도 그들의 각박한 현실과 전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였을까? 그렇지 않다. 그가 이 작품을 통해 강조하고자 한 것은 ‘가난’이 아닌 ‘순박하고 고결한 영혼’이다. 하급관리인 마카르에게 제복은 삶을 위한 필수품이자 자신의 분신이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상징이다. 그러나 그는 바르바라를 위해 그 제복마저 팔아치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실천적이며 희생적인 사랑이 오히려 마카르를 빛나게 하고 존엄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비웃어도 그는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하는 숭고한 자기희생을 자처한다. 또한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수치를 알고 양심을 잃지 않는다. 그를 통해 독자들이 느끼는 것은 인간에 대한 존엄은 차치하더라도 인격조차 인정받지 못하며 쓰레기 취급을 당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바탕에는 숭고한 희생과 순결한 사랑이 자리한다는 더없이 소중한 결말이다. 이러한 주제는 도스토옙스키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바탕을 이룬다. 아무리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인간일지라도 그 내면에서 빛나는 인간미와 희생정신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보석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