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드의 사상적 출발은 순수한 개인주의인 동시에 그 귀결(歸結)도 또한 순수한 개인주의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개인주의를 살리려 할 때 지나간 세대에 속하는 봉건주의(封建主義) 이데올로기의 권화(權化)인 가톨리시즘(Catholicism)과 대립하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서 만약 지드가 그 범용(凡庸)한 우부우부(愚夫愚婦)와 같이 신(神)에 대한 신앙을 일종의 잠혈적 습속(?血的習俗)으로서 아무 반성과 자각(自覺)도 없이 지나갔다면 오히려 자기로서는 안도(安堵)한 생(生)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드는 거의 생득적(生得的)인 감정으로 ‘인간’의 입장(立?)에 섰던 것이다. 그러나 지드로서도 장구(長久)한 역사의 전통을 경솔히 무시하기는 어려웠으므로 항상 신(神)과 인간과의 갈등 가운데서 반생(半生)을 악전고투(惡戰苦鬪)로 지나왔다.<서문 중에서>
지드는 지금에 있어서도 “나는 개인주의자(個人主義者)이다”라고 언명(言明)하는 바와 같이 그 옛날에 있어서도 또한 개인주의자(個人主義者)이었다. 그러나 지드가 근년에 와서 자기가 개인주의자(個人主義者)라는 것을 말할 때나 또는 자기가 생각하는 개인주의라는 것을 말할 때는 항상 개인주의라는 말 밑에 괄호(括孤)를 치고 ‘정당(正當)하게 이해된(Bien Compris)’이라는 주석을 붙였다. 또한 이러한 개인주의는 코뮤니즘과 대립되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지드가 그 출발에 있어서도 개인주의자(個人主義者)이었고 그 전향(轉向)에 있어서도 개인주의자(個人主義者)라는 것은 벌써 그 개인주의란 말이 명목으로서 문제가 아니고 그 내용으로서 질적 변환(變換)이 있었다는 것이다.<작품연구 중에서>
펼쳐보기
내용접기
저자소개
* 이원조(李源朝)(1909~1955) 호 임목아(林木兒), 여천(黎泉)
평론가
경북 안동 출생
이육사 동생
일본 호세이대학 불문과 수학
조선일보 기자‘카프’ 활동
조선문학건설본부, 조선문학가동맹 참여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전영사(餞迎辭)(1929)’ 입선
다수 평론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