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의 물리치료사 ‘아이샤’,
그녀가 있는 풍경에는 언제나 따스한 삶의 희망이 빛나고 있다!
『아이샤 꾸리』(21세기북스 펴냄, 장미란 지음)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에 들어가 왕의 물리치료사로 일한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저자는 이모 조남표(52)의 체험담을 취재해서 이국적인 향취가 물씬 풍기는 독특한 글 속에 고스란히 녹여 냈다. 저자 장미란은 이모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모아 그녀의 추억과 상처를 때로는 가슴이 먹먹하게, 때로는 투명하도록 아름답게 엮어나가며 독자들을 그녀의 삶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든다. 2012년 조선일보 논픽션 대상 심사위원회에게 “지원작 가운데 문장력은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생생하고 섬세한 묘사가 압권이다.
저자는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 내며, 삶에 대한 진지한 사색과 통찰을 제시한다. 특히 논픽션답게 역사 속의 생생한 증인으로서 체험에서 우러나는 진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걸프전의 한가운데에 떨어져 삶과 죽음을 바로 코앞에서 맞이한 에피소드는 전쟁의 비극과 아픔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
조남표는 어머니를 잃고 그 상실감에 절망하다 무슬림이 되어 ‘아이샤’란 이름을 얻는다. 그 어떤 나라보다도 독특하고 폐쇄적인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0대의 대부분을 보낸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며 생의 의미를 찾는다. 그녀는 수없이 한국과 중동을 오가며 근사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도 깊은 외로움과 아픔을 안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이.
삶은 때로는 견디기 힘든 상실감과 슬픔을 주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따뜻한 온기를 가진 희망을 품고 있다. 그녀는 삶이 주는 연속된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언제나 그 희망을 놓지 않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강인하게 걸어간다. 그녀가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은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마음에 깊은 울림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끝까지 다 살아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생의 의미,
두려움과 절망 속에 삶이 숨겨 놓은 비밀은 무엇인가!
오후 4시쯤, 사우디아라비아로 들어가는 에미레이트 항공기가 담맘의 ‘킹 파드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속도를 낮추고 저공비행 중이다. 그녀는 스튜어디스의 안내 목소리를 듣고 창문의 블라인드를 올리면서 다른 손으로는 가방 속의 선글라스를 찾았다.
그녀의 이름은 조남표. 그러나 그녀가 ‘남표’라는 이름으로 불린 시간은 그녀의 인생에서 그리 길지 않았다. 꽃같이 아름답고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20대 시절에 그녀는 심연처럼 어두운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하루하루 절박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삶은 그녀에게 우연을 가장한 채 찾아와 운명 같은 길을 열어 주었다. 1983년 5월, 그녀는 우연히 라디오에서 아랍어 무료 강좌 광고를 듣고 이태원에 있는 한국 최초의 이슬람 사원을 찾아가 아랍어와 『코란』을 배운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은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는 그녀를 자연스레 무슬림의 길로 이끌었다. 그녀는 신에게 기댄 채 갑갑한 삶의 탈출구를 찾아 헤매다 또다시 우연한 기회로 당시 한국에 와 있던 사우디아라비아 왕의 고문을 통해 왕실로 가게 된다. 그 후 1986년부터 1992년까지 6년 동안, 아무도 그녀의 원래 이름을 알고 있거나 불러주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왕의 물리치료사가 되어 ‘아이샤’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억압과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밝게 살아가는 이슬람의 여인들,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는 훌륭한 왕과 아름답고 상냥한 왕비, 모든 것이 풍족하고 화려한 왕실 생활은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된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녀는 새로운 일에 용감하게 뛰어들며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삶은 그녀에게 생을 포기할 만큼 큰 좌절을 안겨 주었다. 그녀는 가혹하리만치 혹독한 시련을 주는 운명 앞에 지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찬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며 진정한 삶의 기쁨을 느낀다.
삶은 얼마나 많은 우연을 우리 앞에 마련해 놓았을까? 또 그 우연은 저마다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는 것일까? 최악의 순간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인생은 항상 우리 앞에 또 다른 가능성과 길을 열어 준다. 이 작품은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잊고 있던 것,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지금 주어진 삶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일깨워준다. 또한 어떤 삶의 굴곡이 찾아와도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설 힘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