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바로알기 5

김기홍 | e퍼플 | 2021년 10월 01일 |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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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삼국사기 바로알기 5]는 차대왕, 신대왕, 고국천왕의 시절에 대한 글입니다. 차대왕 시절부터 고구려의 연표는 바로잡히지만 여전히 그 내용은 혼란스럽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는 [삼국사기]의 편자들이 지나치게 내용을 간추렸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삼국사기]에 대한 해석이나 해설은 시중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출간되어 있으며 인터넷에서도 쉽게 그 해석과 해설을 접할 수 있습니다만, [삼국사기]에 기록된 한 줄 한 줄을 상식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고대사를 마치 신화처럼 여긴다거나 확실한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은 [삼국사기]가 많은 사건들을 삭제하고 그 앞뒤의 설명을 생략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여 본 서에서는 상식적인 [삼국사기]의 해석과 해설을 통하여 우리 고대사를 상식적인 이해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고대지명들에 대한 오늘날의 위치를 찾는 것입니다. 왜곡된 역사해석에 기초한 왜곡된 역사지리는 명, 청 시절의 학자들이 마음대로 해석한 역사지리로부터 시작되어 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저들의 동북공정이나 여러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잘못된 역사지리를 바로잡는 것이 보다 중요합니다.

저들의 논리를 허물어뜨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가령 모용씨가 세운 연나라의 자리를 저들은 지금의 요녕성 요하 인근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우리도 이를 따르고 있습니다. 즉 연나라의 수도였던 용성이 오늘날 요녕성 조양시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융흥사(隆興寺)라는 유적의 존재로 인하여 그 근거가 완전히 허물어 집니다. 융흥사는 과거 후연(後燕)의 모용희가 아내를 위해 지었던 용등원(龍騰苑)의 터에 지어진 것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용등원과 용성(龍城)의 거리는 하룻밤 사이에 오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따라서 용등원이 있는 곳이 바로 용성이 있던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융흥사는 오늘날 하북성 석가장시 정정현(河北省石家莊市正定縣)에 존재하며 정정대불사(正定大佛寺)라고도 불립니다. 즉 하북성 정정현에 용등원이 있었다는 것이며, 그 곳에 과거 연나라의 도읍이었던 용성이 존재하였다는 뜻이 됩니다. 이곳은 현재 중국 국무원에 의해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全國重點文物保護單位)로 지정되어 보호 받을 만큼 중요하고도 유명한 유적입니다. 즉 저들이 용등원의 유적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해괴한 것은 중국 측이 요녕성 조양시 어느 야산의 잡풀 사이에 용등원유지(??苑?址)라는 표지석을 세워놓고 그곳 또한 용등원의 터전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즉 용등원의 터전이 하북성 정정현과 요녕성 조양시 두 곳에 존재하였다는 주장이 되는데, 이 두 지역은 직선거리로 따져도 600km 넘게 떨어진 장소입니다. 모용희가 손오공의 분신술을 쓰지 않는 한 용등원의 터전이 그 멀리 떨어진 두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즉 하나는 거짓 유적지라는 뜻입니다. 어느 유적지가 가짜인지는 융흥사의 존재와 표지석의 존재를 비교하면 그리 판단이 어렵지 않습니다.

중국 측이 요녕성 조양시 야산에 허술하게 세워 놓은 표지석은 저들이 줄곧 그곳에 연나라의 용성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뒷받침 하고자 함입니다. 즉 연나라의 용성이 하북성 정정현에 있다는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면 저들이 여태껏 고구려의 흔적을 지우고자 왜곡한 모든 역사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실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들은 이 하북성 정정현의 융흥사를 공식 유적물로 등록시켜 이곳이 모용희가 지은 용등원이 있던 곳이라고 자랑스럽게 외치고 있으며 기념 우표까지 발행하였으니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기만 한다면 저들의 역사 왜곡도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을 것입니다. AD436년 고구려는 이 하북성 정정현에 있는 용성으로 2만 명의 군사를 보내 북연의 마지막 왕인 풍홍을 북위로부터 구해줍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학자들 역시 요녕성 조양시를 과거 용성이 있던 곳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요녕성 요하를 중심으로 요동과 요서가 나뉘었다는 주장으로 이어지며, 이곳에서 과거 선비족들의 나라 또는 중원의 나라들과 고구려가 영역을 다투었다는 잘못된 주장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용성이 하북성 정정현이라는 진실은 이 모든 주장을 단숨에 무너뜨리게 됩니다. 요녕성 요하는 중국이나 우리의 고대사와는 전혀 관계 없는 지역입니다. 이는 유적이 증명하고 또한 기록이 증명하는 진실입니다.

[삼국사기 바로알기]는 오늘날 무의식중에 받아들이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쓰여진 책입니다. 즉 기록들의 상호 증명을 통하여 기존의 역사해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밝히고자 함입니다.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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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소개

차대왕

1. 차대왕 원년
2. 차대왕 2년
- [고구려의 관직과 칭호, 작위, 품계]
3. 차대왕 3년
4. 차대왕 4년
5. 차대왕 8년
6. 차대왕 13년
7. 차대왕 20년

신대왕

1. 신대왕 원년
2. 신대왕 2년
- [중국사서에 기록된 거리에 대하여]
3. 신대왕 3년
4. 신대왕 4년
5. 신대왕 5년
- [오환을 찾아서]
6. 신대왕 8년
7. 신대왕 12년
8. 신대왕 14년
9. 신대왕 15년

고국천왕

1. 고국천왕 원년
2. 고국천왕 2년
3. 고국천왕 4년
4. 고국천왕 6년
5. 고국천왕 8년
6. 고국천왕 12년
7. 고국천왕 13년
- [해(海)와 호타하(??河)]
8. 고국천왕 16년
9. 고국천왕 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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