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으니 나이 들어 이보다 더 좋은 친구는 없다. 나의 민낯이 숨김없이 드러나도 아직은 작은 알갱이라도 잡으려는 잠재력이 있어 행복하다.”
전시회를 몇 차례 한 바 있는 이름난 민화 작가이자 서예 작가인 류경자 수필가가 두 번째 수필집 『내 마음의 바지랑대』를 펴냈다.
“…걸음걸이가 좀 흔들리면 어떻고 귀가 안 들리면 어떠리. 마음속에 따뜻한 사랑을 간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직도 기쁨의 인생을 짓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런들 어떠리」)
그렇다. “아무런들 어떠리.” 책에 실린 48편의 작품에서 류경자 수필가는 있는 그대로 우리의 일상을 진실하게 보여준다. 하루하루 되풀이되는 평범한 삶의 갖가지 에피소드를 수다를 떨 듯 푸근하게 풀어놓으면서도 사금처럼 반짝이는 감동이 있는 글로 만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아무런들 어떠리’라는 무한긍정의 그 마음, 따뜻한 사랑의 그 마음이 작가의 손끝에서 배어 나와 글로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엄연히 재봉틀은 기계지만 외관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반짝반짝 빛을 내는 세련된 까만 몸통에 유려한 곡선의 허리를 자랑하고, 금속 머리 판에는 당초무늬로 장식하고 멋을 냈다. 노루발의 교체로 온갖 변신을 할 수 있는 이 기계는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다.
실 끝도, 바늘귀도 보이지 않는 나의 눈 상태이지만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 격으로 요행히 실을 꿰어 바지통 줄이고 늘리는 재미는 아직도 이어간다.-「재봉틀과 좀 놀아본 사람」
일명 “쪽보”라고 불렸던 이 유품은 외조모가 혼인하기 전에 만든 것이다. 내가 결혼할 때 선물로 받은 하얗던 보자기는 세월의 두께만큼 누렇게 변했다. “류경자 외조모”라고 초록색 “구뎡실”로 사인까지 수놓은 잠자리 날개 같은 이것을… 중략 …요즈음 너도나도 “예술가”가 흔해 빠진 세상이지만 옛날이라고 해도 어찌 신사임당만 예술가였겠는가, 우리에게 그 아름다운 것을 승화 전수시킨 할머니도 예술가였던 것을! 다만 후손이 아둔하여 눈을 못 뜨고 온전히 간직하지 못했으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예술가」-
‘곰삭은’ 글맛 있는 관록의 작가가 그려 보여주는 ‘민낯’의 솔직한 생활 이야기가 손에 잡힐 듯 경쾌하고 선명하다.
아니 저놈이 좀 미친놈이라고 치자. 그래도 뭔가 볼 게 있으니 나한테 딴죽을 걸었을 거 아닌가 말이다. 음 내 다리가 괜찮아 보였나? 아니 내가 지 또래로 보였나! 히히히… 하여간 미친놈이야. … 아이고 맙소사 내 착각에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다.… 그러니까 아까 그 트럭의 운전수가 빵빵거렸던 것은, 내 다리가 예뻐서도 아니고 내 제 또래로 보여서도 아닌, 다만… -「착각」-
특히, 사별, 병환, 늙음 등 황혼의 일상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작품을 통해서 “진정한 어른의 기준은 쇠약해가는 육신이 아니라 성숙한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라는 인생 경험에서 우러난 생생한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안간힘으로 버티는 삶의 시간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사랑과 평안함을 찾아라.”라는 지혜로운 충고가 담긴 『내 마음의 바지랑대』 한 편 한 편이 각박한 우리 일상에 바지랑대가 되어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