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존 버닝햄 · 제2의 퀸틴 블레이크라 평가받는 작가 샘 어셔의 신간 그림책, 《WILD 고양이와 함께한 날의 기적》이 주니어RHK에서 출간되었다. 《SNOW 눈 오는 날의 기적》, 《RAIN 비 내리는 날의 기적》, 《SUN 햇볕 쨍쨍한 날의 기적》, 《STORM 폭풍우 치는 날의 기적》에 이은, <기적> 시리즈의 다섯 번째 그림책이다. 샘 어셔의 <기적> 시리즈는 계절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아이와 할아버지가 경험하는 즐거운 상상과 모험을 선사해 독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샘 어셔는 <기적> 시리즈를 통해 아이와 할아버지의 일상을 보여 주다가 한순간 환상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해 상상하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게 한다. 상상을 통해 평범한 일상을 즐겁게 물들이는 모험, <기적> 시리즈를 관통하는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모험의 시작과 끝, 그 속에 담긴 상상의 즐거움
고양이를 돌보게 된 날, 아이와 할아버지는 제멋대로 집을 나가 버린 고양이를 찾아 나섰다가 야생 정글로 들어선다. 그것이 모험의 시작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아이와 할아버지는 타잔처럼 넝쿨을 타고서 폭포를 가로지르고, 생경한 야생 식물들이 우거진 수풀 사이를 헤집으며, 허물어진 고대 유적에까지 조심스레 발을 디딘다. 그리고 그곳에서 둘의 모험은 절정에 다다른다. 달아났던 고양이를 비롯한 수많은 고양이들과 호랑이, 사자가 한데 모여 벌이는 야생 파티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야생 동물들의 익살스런 춤사위와 즐거운 표정을 살피다 보면 어느새 귓가에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이와 할아버지의 집에 초대받은 고양이가 이번에는 둘을 야생 정글로 초대한 셈이다.
아이와 할아버지의 모험을 따라가다 보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상상인지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맨 첫 장면에서 아이가 펼쳐 놓은 책을 유심히 들여다보자. 뒤에서 아이와 할아버지가 야생 파티를 즐기게 될 장소가 그려져 있다. 아이의 상상은 고양이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고양이와 함께하게 될 하루를 환상으로 바꾸고, 기적 같은 모험을 펼치는 엄청난 상상 말이다.
과감한 구성으로 화면 가득 담아낸 대자연의 경이로움
이 책에서 모험의 무대는 대자연의 세계로 확장된다. 그리고 그 첫 무대는 바로 ‘야생 정글’이다. 창 밖으로 달아난 고양이를 찾아 나선 아이와 할아버지가 덤불을 지나 짙고 어두운 푸르름이 내려앉은 야생 정글에 처음 들어선 장면은 그야말로 독자들을 압도한다. 일상의 공간에서 환상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찰나의 긴장감, 신비한 야생의 색과 낯선 야생의 공기가 묵직하고 고요하게 장면을 장악하고 있어서다.
일상의 배경이 조각난 장면들과 여백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환상의 배경으로 전환된 뒤로는 여백을 찾아볼 수 없다. 펼침 페이지마다 이름 모를 무성한 이파리와 위로 옆으로 굵게 자란 나무, 곳곳을 휘감은 넝쿨, 이국적인 꽃과 열매로 꽉 채운 과감한 구성이 돋보인다. 샘 어셔가 포착한 대자연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 보자. 그리고 아이와 할아버지와 함께 야생 정글이라는 아름답고,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세계에 발을 내디뎌 보자. 과감하게 펼쳐지는 대자연의 경이로움 속으로…….
할아버지와 손자, 그 관계의 친밀함을 포착하는 따뜻한 시선
<기적> 시리즈의 가장 놀라운 점 가운데 하나는 아이와 할아버지의 관계이다. 아이에게 할아버지는 자신과 함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기꺼이 함께 모험을 떠나는 ‘친구’나 다름없다. 특히 《WILD 고양이와 함께한 날의 기적》에서 샘 어셔는 아이의 뒤를 따라 서툰 몸짓으로 엉금엉금 덤불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모습, 자신 있게 넝쿨을 타고 폭포를 가로지르는 아이 뒤에서 넝쿨을 쥐고 머뭇거리는 모습, 사자와 손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을 통해 할아버지를 진짜 아이처럼 그리고 있다.
아이에게는 거리낌없이 모험을 제안할 수 있는, 또 기꺼이 모험에 동참하는 할아버지와의 관계가 진정한 기쁨이자 선물 아닐까. 조부모 세대와의 깊은 교감이 필요한 요즘 시대에 그 관계를 자신만의 이야기로 꾸준히 그려 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새삼 고맙다. 아이들에게도 부모에게도 또 그 윗세대의 어른들에게도 기분 좋게 권할 수 있는 그림책이 있어 반갑다.
샘 어셔의 이야기와 그림, 디테일이 가득한 그림책 세계
아이의 시점에서 1인칭으로 풀어낸 텍스트는 간결하다. 누구나 읽고, 읽어 주고, 이해할 만큼 쉽다. 반면 그림은 굉장히 디테일하다. 이 책에는 면지와 속표지에서부터 아이가 고양이를 연구한 흔적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어쩌면 고양이의 특성을 파악하고, 움직임과 몸짓을 제대로 그려 내기 위해 작가가 기울인 노력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샘 어셔의 그림이 디테일하지만 결코 요란하거나 복잡해 보이지는 않는 까닭은 적재적소에 여백을 똑똑하게 활용하고 있어서다. 이 책에서 여백은 독자들이 숨을 고를 틈을 주고 한 장면 한 장면을 집중하며 따라가게 해 주는 장치이다. 배경이 야생 정글로 바뀐 순간, 여백은 사라지고 모험의 긴장감은 고조된다.
아이와 할아버지가 이국적인 풍경의 야생 정글에서 길을 잃은 장면을 유심히 살펴보자. 풀숲 뒤 어두운 곳에 숨어 우리를 쳐다보는 수많은 눈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두 눈을 반짝이며 책에 숨겨진 디테일과 위트를 발견하고, 모든 장면을 계속계속 들여다보게 하는 마법 같은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