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성공회의 초창기 국내 선교 장면이 세밀하게 기록된 핵심 사료
1917년 출간된 이 책은 영국성공회가 한국 땅에서 기독교를 전파하기 시작한 1890년부터 1917년까지의 선교 활동을 선교사들이 직접 서술한 것으로서, 당대의 선교부와 교회 사정은 물론이고 선교사들의 일상생활을 이해하는 데 매우 요긴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사료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본서는 그동안 한국 학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사용된 적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본서의 번역 출간은 영국성공회의 초창기 국내 선교를 기록한 핵심 사료의 발굴이란 차원에서, 한국 교회사와 한국사 연구의 새로운 연구의 지평을 여는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영국성공회의 기독교 현지화 과정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
저자는 당시 신학교육, 여성 사역, 의료선교 등 각 분야에서 실제 사역에 참여했던 5명으로, 성공회 대학교의 전신인 성미가엘 신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역임한 바 있는 허지스 신부가 전도와 교사 및 성직자 양성 사역을, 존 바실 심슨 신부가 재한일본인 사역을, 프란체스 맥도널드와 이자벨 번 등 두 여성이 여성 및 소녀 사역을, 전문 의료인이기도 했던 앤 버로가 의료 사역을 정리하여 서술했다.
이 책에 따르면 영국성공회가 한국 선교에서 특별히 중점을 둔 것은 기독교 현지화였다. 그들은 낯선 환경을 극복하고 현지 사정을 정확히 알기 위해 가장 먼저 언어를 배우고자 했는데, 현실적으로도 복음 전파 이전에 교육 사업과 의료 활동을 펼쳐야 했기에 한국인과의 소통은 필수적이었다. 이 책의 처음 부분에서는 선교사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언어를 배우느라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내다 보면 어느덧 언어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것은 물론, 한국인과 한국의 풍속에 대해 눈이 떠져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다. 더불어 한국인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기 시작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당신이 꼭 필요한 꾸중을 했는데, 상대방이 미소를 짓는다고 해서 화를 낸다면 지혜로운 처사가 아니다. 당신은 그 미소로 인하여 언짢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 미소야말로 당신이 한 말이 당신의 의도대로 적중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17~18쪽)
이러한 과정은 결국 성당을 한옥으로 짓는다든가, 한국인 성직자를 세우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선교사들의 모습으로 연결되는데, 당시 영국성공회가 지녔던 현지화에 대한 열망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비기독교 국가에서 전도하면서 맞닥트리게 되는 사건들, 신학교를 세우는 일과 그 과정에서 불거지는 선교사들의 고민, 소외된 여성이나 버려진 소녀들을 돌보고 그들을 사회로 다시 내보내고자 노력하는 과정, 의료사역 현장에서 벌어지는 의료선교사들과 한국인에 얽힌 갖가지 에피소드들이 다루어진다. 특히 한국 교회의 민족주의적 성향 때문에 줄곧 소홀히 취급되었던 재한 일본인 사역에 대한 정보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희귀한 기록으로서, 귀중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
선교사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풍속과 신앙
한국 기독교, 그것도 소수에 속하는 ‘성공회’의 초창기 역사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이 책이 관련 분야의 연구가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선교사들이 자신들과 한국인들의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부드럽게 서술하였고, 장례 절차에 대한 세세한 묘사나, 무당들의 행태, 시집온 교인 며느리를 구속하는 시어머니의 모습 등 이들에게 무척 낯설 법한 풍속들에 대한 묘사와 해석을 에피소드 식으로 구성하여, 근현대사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일반 독자와 기독교 신자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한국인에 대한 선교사들의 양면적 시각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은 순수와 무지가 공존하는 신비한 존재였다. 한편으로는 가까운 과거에 있었던 몇 차례의 박해에서 수많은 가톨릭 순교자를 낸 존경받아 마땅한 민족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미신을 좇고 무책임하고 충동적인 성품을 지닌 계몽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이 책에서 선교사들은 교회에 막 들어온 새내기임에도 교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양반 교인들의 행태를 지적하고, 서양 의술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국인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전통에 고착된 완고함을 보여주는가 하면, 늘 소외되어왔던 여성들이 이제 어엿한 사회인으로 발돋움하려는 새로운 모습 등, 낡은 것과 새것이 교차하던 당시의 복잡한 면모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급성 복막염으로 앓고 있는 환자에게 돼지고기를 먹여 위독해지는 등 웃지 못할 에피소드에서부터, 사제들의 목회 활동, 신학교의 교과 과정과 성직자들의 훈련 내용 등 전문적인 부분까지도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이 책은 영국선교사의 독특한 시각으로 당시 한국인과 한국 사회를 바라본 몇 안 되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