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에서 떼어온 오디오,
노래방에서 가져온 조명이지만,
화려함만큼은 마산 최고의 예식장!
90세 남편은 예식 상담부터 사회, 주례, 사진 촬영까지,
80세 아내는 드레스와 화장 준비부터 하객 역할에 촬영 보조까지,
55년째 마산의 작고 오래된 예식장을 지키는 노부부는
하루도 쉴 틈이 없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에 위치한 신신예식장은 1967년에 문을 연 이래로 반세기 넘게 백낙삼(91) 사장과 최필순(81) 이사 노부부가 둘이서 운영하고 있다. 개업 때부터 ‘무료 예식’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지금까지 1만4천 쌍이 넘는 부부를 탄생시켰다. 색색의 페인트로 칠해놓은 3층짜리 건물의 내부로 들어서면 1970~80년대 예식장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55년 전 개업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소품들과 백낙삼 사장이 이곳저곳에서 가져온 오래된 물건들이 어우러져 신신예식장 특유의 매력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보통은 소박한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하는 이들이 주로 신신예식장을 찾는데, 세월이 흐르고 문화도 바뀌면서 이제는 무료 예식뿐 아니라 리마인드 웨딩을 하려는 노부부, 가족들이나 친구들끼리 웨딩드레스를 입고 추억 사진을 남기려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신신예식장은 TV와 라디오 방송에도 여러 차례 소개되고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배경으로 한 장면 등장했는데, 그렇게 알려진 후로는 호기심에 관광명소처럼 찾아오는 이들도 많아졌다.
이 책은 신신예식장의 오래된 공간과 그곳을 오랜 세월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2년간 서울과 마산을 오가며 예식장 구석구석의 옛 정취 가득한 풍경과 백낙삼, 최필순 부부의 일상을 추억 앨범 만들 듯 차곡차곡 담았다. 이 책은 오래된 공간과 ‘결혼’이라는 배경으로, 대한민국 한 시대 속 사람들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이야기를 담은 역사적 기록이기도 하다. 이 50년 넘게 한자리에서 작고 오래된 예식장을 지켜온 노부부의 역사를 읽다 보면, 잊고 지내던 옛 추억에 대한 그리움과 내일을 향한 희망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마산에 방문할 일이 생긴다면, 꼭 신신예식장에 들러 백낙삼 사장이 직접 개발한 백초차를 한 잔 맛보고 가시기를!
본문 중에서
오랫동안 주례를 해오다 보니 몇 가지 레퍼토리가 생겼다. 그 가운데 어떤 이야기를 해줄지를 결정하는 건 그날 하객들의 분위기다. 손님이 많고 밝은 분위기라면 농담을 많이 섞어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주례사를, 부부의 특별한 사연으로 숙연한 분위기라면 정중한 주례사를 택한다.
예식장을 운영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혼례지도사’라는 주례 자격증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따로 자격증을 따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신신예식장에서 진행한 1만3천 번 넘는 예식 중 족히 1만 번 이상은 직접 주례를 했는데, 백낙삼 사장은 대한민국에서 누구보다 주례를 많이 섰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이 넘친다. ―‘주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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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신부가 입장하고 마지막 행진을 하는 길 천장에는 모자이크 조명이 길게 이어져 있다. 조명이 켜지면 무지갯빛 색이 차례로 바뀌면서 색다른 분위기가 펼쳐진다. 보통 예식장에서는 전체 조명을 낮춰서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데, 신신예식장의 조명은 웨딩홀 공간 전체를 축제의 현장으로 만든다. 백낙삼 사장이 발품을 팔아서 구해온 재료에 그만의 남다른 아이디어가 더해져서 탄생한 신신예식장만의 이색 풍경이다. ―‘웨딩홀 조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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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보에 없던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백낙삼 사장은 예식장 건물 앞에 남는 우산들을 내놓는다. 이런 일을 하는 까닭을 물어도 변변한 답은 없다. 그냥 비를 맞고 뛰어가는 사람들을 본 후로 시작한 일이다. 급할 때 쓰고 천천히 돌려달라고 적혀 있지만 돌아오는 우산은 얼마 없다. 하지만 그만큼 버려져 있는 우산도 많아서 이렇게 내놓는 우산의 양은 거의 일정하다. ―‘우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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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삼 사장은 1년에 두 번, 부부의 날과 결혼기념일에 꼭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내용은 사랑 고백이다. 편지는 아내에게 직접 건네지 않고 우체통에 넣는다. 며칠이 걸려 번거롭게 먼 길을 돌아서야 아내의 손에 닿지만, 백낙삼 사장 나름의 이벤트다.
자랑스레 말하는 백낙삼 사장과 달리 이야기를 듣는 최필순 이사의 표정은 덤덤하다. “노상 받는데 설렐 게 뭐 있나. 그냥 왔구나 싶지” 하며 내색 않고 말하지만, 받은 편지는 모두 소중하게 보관 중이다. 편지를 다시 꺼내 읽기 시작한 최필순 이사가 갑자기 백낙삼 사장을 보며 말했다.
“여보, 다시 보니 우째 내용이 다 비슷비슷하네?” ―‘남편의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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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알려진 것처럼 백낙삼, 최필순 부부는 서로 존중하며 아끼는 사이였습니다. 그 가운데 서로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당신은 좀 쉬어요. 내가 할게요.’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