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절망은 선택할 수 있다.”
우울증을 이해하고 이겨내기 위한 가장 정직한 안내서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임세원 교수는 갑자기 “마치 누가 허리를 칼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게 된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도 잠시, 통증은 점점 심해지더니 마침내 그의 일상 전반을 완전히 잠식해 버린다. 수술부터 약물 치료, 평소라면 절대 택하지 않았을 한방 치료, 카이로프랙틱까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갖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병세는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점차 깊은 우울에 빠지게 된다.
이 책에서 임 교수는 자신이 우울증에 빠지게 된 경로와 자살 사고(자살 생각)에 이르게 된 과정, 그 고통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을 충격적일 만큼 생생하게 털어놓고 있다. 우울증의 증상과 이 증상을 겪는 환자들의 감정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사례를 전혀 미화하지 않고 솔직하게 보여준 것이다. 예를 들어, 이유 없이 평소보다 한두 시간 정도 일찍 깨어나 버리는 우울증의 ‘조기 각성 증상’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는 자신이 경험한 이 증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모두가 잠든 새벽은 너무나 고요해, 작은 감각에도 예민해진다. 바스락거리는 소리 하나하나가 귀에 꽂히고 창밖의 작은 불빛에도 잽싸게 눈길이 쏠린다. (…) 이대로 해가 뜨지 않았으면, 하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해 본다. 하지만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가고, 곧 동이 튼다. 새로운 하루를 이미 극도로 지쳐 버린 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하루는 끝없는 고통의 연장일 뿐이다.”
그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거치며 얻게 된 깨달음도 아낌없이 풀어 놓는다. 그중 첫 번째 깨달음은 “세상 모든 일은 그 원인을 찾아야 해결할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불행”이라는 것이다. “아프지만,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그는 대체 내게 왜 이런 불운이 찾아왔느냐며 ‘왜’에 집착하다 보면 점점 더 우울해질 뿐이며,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갑작스러운 불운인 ‘첫 번째 화살’은 어쩔 수 없지만, 그로 인한 절망감이나 좌절 등 ‘두 번째 화살’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삶은 마침내 자신의 길을 찾아낼 것이다.”
세상의 고단한 삶들에게 보내는 뜨거운 공감과 격려
이 책은 일차적으로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것이지만, 인생의 고비를 힘겹게 넘어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깊은 위로를 얻을 수 있을 만한 보석 같은 가르침으로 가득하다.
임세원 교수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희망’이다. 물론 막연하게 다 잘 될 것이라는 식의 희망은 오히려 우리를 절망에 빠뜨릴 뿐이라며, 그는 무엇보다 ‘근거 있는 희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희망의 근거’를 수집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는 통증이 심해질수록 사람들과의 자리를 피하고 미래를 기약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점점 고립되면서 우울감만 심해졌다. 마음가짐을 달리한 그는 자신의 몸 컨디션을 꼼꼼히 파악하고 루틴을 만드는 한편, 가까운 사람과 꼭 필요한 약속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최소한의 계획만은 반드시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의 생활이 통제ㆍ예측 가능한 범위 안으로 들어오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줄어들면서 점차 희망이 생겨났다.
또한,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주는 가족 곁에서 작은 행복들을 하나씩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가족을 웃게 만들고 싶은 마음에 주말 아침에는 직접 요리를 하는 루틴을 만들었고, 좋아하는 야구 팀의 팬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런 즐거운 순간순간이 모여 행복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의사로서의 초심을 기억하며 환자들을 돕는 데서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 “환자로부터 배우며, 환자를 위해 배우겠다는 마음가짐, 의학적 근거에 기반한 호기심, 타인의 인생에 대한 관심과 공감의 태도, (…) 아무리 힘들어도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 이것이 레지던트 1년 차로서 첫 환자를 담당했을 때의 자기 모습이었음을 떠올린 그는, 환자들의 마음 치료에 집중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들이 그런 마음 상태가 된 원인을 바로잡는 데까지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임세원 교수는 의사로서 불리할 수도 있었을 자기 이야기까지 책에 풀어내며 이 책이 많은 환자들에게 꼭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환자들을 위하는 이런 귀한 뜻을 담아,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그가 개발에 참여한 한국형 표준자살예방 교육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를 요약하여 실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버겁다 느끼는 모든 이에게, 임세원 교수는 지금도 내가 내민 이 따뜻한 손을 꼭 잡아 보라고, 함께 살아 보자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