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 끝에 얻게 될 수프 한 그릇은 달다”
성미 급한 소설가의 뭉근한 심신 단련 에세이
취미와 취향의 세계를 넓혀 갈 ‘좋아하세요?’ 시리즈. 다섯 번째 주제는 수프다. 수프는 기다리는 능력이 필요한 음식이다. 3분 요리라는 간편한 선택지가 있지만, 밍밍하면서도 인공적인 맛의 국물을 목구멍에 넘기고 있자면 신선한 재료로 공들여 끓인 수프가 생각나는 것이다.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면 냉장고 속 자투리 채소와 우유, 버터 한 조각만 가지고도 고급스러운 맛을 내는 수프 한 그릇이 완성되지만, 단단한 채소가 냄비 속에서 차츰 뭉개져 마침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기다리기 힘들어하는 사람은 잘 끓인 수프의 깊은 맛을 알기 어렵다. 무슨 일이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수다.
『수프 좋아하세요?』는 소설집 『피구왕 서영』으로 주목받은 황유미 작가의 첫 번째 에세이다. 작품에서조차 ‘황급히’란 단어를 자주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급한 성격의 덕을 보는 시기가 끝났음을 깨달으며 수프 끓이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수프를 끓여 먹으며 영위하는 일상은 “몸과 마음의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속도”를 조금씩 늦춰 주었고, ‘버티는 자가 승리한다’는 교훈을 주기도 했다. 처음 끓여 본 단호박 수프의 맛은 놀랄 만큼 호사스러웠고, 손님을 초대해 수프를 대접하며 함께의 기쁨을 맛보았다. 바삐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뭉근히 수프를 끓이는 일은 그리 대단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대단하지 않더라도 각자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 있다. 유일하게 느슨해질 수 있는 공간에서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며 나를 먹여 살리는 일, “인생은 고통이니까 수프나 끓여야지” 말하며 스스로 달래는 일이 어쩌면 매일을 버티며 끝내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