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포스코차이나 김동진 사장이 전하는,
‘느슨하게 나이 드는 즐거움’
어제보다 오늘 더, 나중보다 지금 바로, 나를 위해 살아간다
일흔 청년의 라이프 스토리
◎ 도서 소개
노년을 즐기는 두 가지 자세,
‘과거를 자랑하지 말 것’ ‘학생으로 남을 것’
40여 년의 직장생활. 회사와 가족을 위해 무소처럼 달려온 세월을 뒤로하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전(前) 포스코차이나 김동진 사장의 에세이, 『한 번쯤은 나를 위해』가 21세기북스에서 출간됐다.
중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중국 거주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영구 거주권을 얻었고, 한국 철강업계의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손꼽히는 김동진 저자는 평사원으로 시작해 최고의 자리까지 이른, 가히 성공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퇴직 이후, 지난날에 미련을 두지 않고 새로 태어났다는 생각으로 겸손하게 자신의 인생을 마주하기로 다짐했다.
‘과거를 자랑하지 말 것’, ‘꾸준히 학생으로 남을 것’. 이 두 가지를 노년을 즐기는 자세로 삼고 사진과 글, 여행, 세 가지에 집중했다. 그리고 10여 년간 묵묵하고 꾸준히 써온 600여 꼭지의 글을 고르고 골라 담백한 사진들과 함께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거품을 걷어내고 알맹이만 남겨가는 뺄셈의 기록,
느슨하고 유순하게 살아간다
무엇이든 설렁설렁, 대충대충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회사를 위한 머슴처럼 살았던 지난날. 그때의 버릇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제는 대상이 바뀌었다. 오로지 나 자신에 충실한 삶을 살아 보자는 것이다.
글과 사진을 배우기 위해 수없이 쓰고, 수없이 찍었다. 무슨 글을 써도 회사 보고서처럼 딱딱한 글이 되어 버려 좌절하기도 했지만, 멈추지 않고 꾸준히 써내려 갔다. 그에게 사진과 글을 가르쳐준 고수들은 하나같이 “힘을 빼라”고 조언했다. 그 말을 마음에 담고 하나하나 걸러내다 보니 본인도 몰랐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김동진 저자는 이 책이 바로 그 ‘뺄셈의 기록’이라며, 노년의 여생이란 갈 사람은 가고, 거품을 걷어내고, 알맹이만 남는 것이라 말한다. 남겨진 알맹이의 단단한 사랑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이 책을 적어냈다.
책 속에는 짜장면 한 그릇, 영화 한 편에 행복했던 청소년기를 추억하며 영화관에 들른 일, 600살 넘은 매화나무와 상상의 인터뷰를 펼친 내용, 매주 화요일 친구들을 만나 소박한 옛이야기를 나누는 느슨하고 유순한 일상이 솔직하게 담겼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즐겨본 재즈나 건축 답사 등 그동안 살면서 해보지 않은 것들을 살금살금 누려본 이야기들도 담겼다.
어떠한 강요나 질책도 없이 그윽하고 조용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살아간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이 뭉클하게 와닿는다. ‘주어진 생명이니 그저 완성한다’는 자세로 살아온 그의 담백한 인생살이를 읽다 보면 동네 작은 밥집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어르신들마저 새삼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21세기북스의 책
▶ 인생 삼모작: 세 못자리에서 거둔 중도주의적 삶의 철학 | 안병영 지음 | 17,000원
◎ 책 속으로
글을 쓰는 일과 사진을 찍는 일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잘 쓰려(찍으려) 애면글면 애쓰지 말고, 보고 느낀 대로 솔직하게 쓸(찍을) 것. 그리고 꾸준히 쓸(찍을) 것. 그러다 보니 나만의 ‘스타일’이란 것이 드러나더라. 스타일이 뭐 별건가. 프랑스 시인 르네 도우말(Rene Daumal; 1908~1944)이 그랬다. “스타일이란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왔는지에 대한 족적이다.”
그러니까 글 쓰고 사진 찍는 일은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왔는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과정이기도 했다. 이렇게 또 하나의 ‘나’로 태어나는구나.
[작은 뺄셈의 기록: 9쪽]
아니,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주어진 생명이니 그저 완성한다”는 선암사 매화의 자세가 매년 아름다운 꽃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칭찬해주지 않는다고 삐치지 않고, 무시한다고 화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무관심에 그냥 살짝 서운하면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다른 이의 시선에도 특별히 신경 쓰지 않고, 올해는 더욱 그렇게 살리라. 매년 매화를 맞이하며 조용히 나만의 다짐을 한다.
[매화 문답: 26쪽]
유정하다.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듯한 형세, 산세, 지형을 ‘유정하다’고 말한단다. 풍수지리서에 자주 쓰이는 말이다. 수년 전 친구에게 그 말을 듣고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유정에는 크게 두 가지 뜻이 보인다. 인정이나 동정심이 있다는 뜻의 유정有情, 그윽하고 조용하다는 뜻의 유정幽靜. 친구가 어느 쪽으로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뒤로도 ‘어머니 품처럼 따뜻하고 그윽하고 조용한’이라는 뜻으로 ‘유정’을 애용한다. 유정한 풍경, 유정한 산천, 유정한 마을, 유정한 생각, 유정한 사람들……. 어디에 써 봐도 무리 없이 아우른다.
[어느 솔찬한 아홉 번의 하루: 44쪽]
“우리는 항상 좋은 놈이 아니야. 항상 나쁜 것도 아니고. 우리는 그냥 우리야.”
그럴싸하게 들렸다.
왁자지껄 버스에 올라타고 보니 부잡스럽게 놀았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문득 동창회 닉네임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바른길’ 동창회말고 ‘부잡하게 살자’ 동창회로. 세상 시름 내려놓고 이젠 그냥 부잡스럽게, 까불며 살다 가기로 작정한 친구들처럼 모두 표정이 활기차다. 그래, 포항 거쳐 경주로 떠나는 이번 여행은 우리만의 ‘부잡 선언’인 것이다.
[까불며 살자: 76쪽]
주위 친구들이 내가 쓴 글을 읽으며 재미있어한다. 마당 닭이 날아보겠다고 기를 쓰며 푸드득 거리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였던가 보다. 내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 웃을 수 있다니, 갈수록 웃을 일이 줄어드는 세상에 어쨌든 좋은 일 하나는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스스로 격려한다. 완벽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누가 뭐래든’이라는 생각으로 즐기니 행복한 것이다.
[니싱푸마?: 94쪽]
겨울과 친해지는 연습을 하기에는 서울이 훨씬 좋다. 올겨울에 내가 할 일들을 쭉 적어보았다. 책 읽기, 음악 감상, 전시회 관람, 영화관 가기, 산사山寺 탐방, 성지순례, 봉사활동, 친구들 만나기……. 움츠러들지 않고 이런 계획들을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이번 겨울에는 더욱 이 계절에 익숙해져야겠다고 작은 결심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의 ‘삼동문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겨울을 배우는 이가 선비 아닐까. 이제야 회사의 머슴으로 살았던 시간을 내려놓고 어언 선비 흉내를 내보는 셈이다.
[비로소 겨울과 화해하기: 157쪽]
누르고 눌렀던 침묵이 결국 터져 울음으로 나오는 순간이 있다. 울 수밖에 없는, 짐승 같은 울음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표현될 수 없는, 그런 순간이 있다. 울음이 가장 원초적인 말이 되는 순간이다. 나는 그럴 때 『침묵의 세계』라는 책을 우연찮게 만났다. 울음을 온전한 침묵으로 되돌리는 법을 고민했다.
말이 잔치를, 아니 홍수를 이루는 세상이다. 과연 나는 제대로 침묵하고 있는가. 침묵을 눅이고 눅여 말을 만들고 있는가. 사물에 깃든 침묵을 제대로 포착해 사진을 찍고 있는가. 그동안 내가 쓴 글과 사진을 보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살아가는 하루를 되돌아본다. 섣부른 글과 사진을 주저없이 지운다.
[살아 있는 침묵: 2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