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천 (1911-1953)
1929년 평양고보를 졸업한 후 동경 호세이 대학에 입학하였으니 1931년 제명되었다. 일찍이 사회주의와 노동주의에 관심을 두어 조선프롤레타리아에술동맹 동경지부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1930년에 있었던 평양 고무공장 노동자 총파업에도 참여하였다. 평론가로서도 활동하며 1930년 「영화운동의 출발점 재음미」를 시작으로 많은 평론을 남겼다. 좌익 문인들과 활발히 교류하던 중, 1947년에 시인 임화와 함께 월북하였고, 이후 남로당 숙청 때 숙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