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성과 계몽: 모더니티의 미래

장춘익 | 21세기북스 | 2022년 02월 16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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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사회철학적 사유와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치열하게 분석해낸 현대사회의 문제들, 그리고 새로운 미래

장춘익의 사유와 통찰을 응축한 사회철학 시리즈
미시마 겐이치 교수, 주동률 교수, 신광영 교수, 홍윤기 교수 추천



◎ 도서 소개

근현대 독일철학사가 낳은 위대한 원전을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을 묻다
장춘익의 사유와 통찰을 응축한 사회철학 시리즈

장춘익의 사회철학 시리즈(전 2권). 1권 『비판과 체계: 하버마스와 루만』, 2권 『근대성과 계몽: 모더니티의 미래』는 고(故) 장춘익(1959~2021)이 남긴 학술적인 원고를 모은 책이다. 1992년 여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후 한림대학교 철학과에서 28년 6개월간 재직하는 동안 저자가 우리말로 쓴 학술지 논문, 공저 도서의 원고, 연구보고서의 원고, 역서 머리말 중에서 학술적 작업으로 간주되는 글을 모아 편집한 책이다.
장춘익은 헤겔, 하버마스, 루만 등 난해하기로 유명한 대학자들의 사상을 누구보다 쉽고 정확하게 소개하고 해석할 뿐만 아니라, 합리성, 평등, 공동체, 평화, 기술지배 등 철학과 사회과학의 주요 주제들을 치밀하게 파고들어 현대사회가 마주한 문제를 해결할 창의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각 글이 다루는 주제를 고려하여 1권에서는 하버마스와 루만, 칸트, 헤겔, 마르크스, 짐멜에 이르는 독일 사회철학을 대표하는 불멸의 사상가를 탐구하고, 2권에서는 사회철학적 사유와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현대사회의 문제를 분석하고 미래를 위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의 글은 정확한 원전 이해와 균형 잡힌 해석을 제공하면서도 가독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현대 사회이론에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독일 사회이론의 탁월한 길라잡이 역할을 해줄 것이다.


◎ 출판사 서평

사회철학적 사유와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치열하게 분석해낸 현대사회의 문제들, 그리고 새로운 미래

2권 『근대성과 계몽: 모더니티의 미래』에는 사회이론적이고 사회철학적 학식과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깊이 있게 분석하고 진지하게 대안을 모색한 장춘익의 글을 담았다. 하버마스와 루만 등 사회철학의 중요한 사상가들에 대한 저자의 연구물들은 이미 널리 주목을 받아왔지만, 시대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엄밀하고 독창적인 사유를 전개하는 저자의 글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이런 점에서 2권에 실린 글들은 독자들에게 사회철학자 장춘익의 치열한 사유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는 기쁨을 줄 것이다.
2권의 제목은 근대의 기획이 노정한 문제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치유할 힘 또한 근대성 안에서 길어 올릴 수 있으며, 그것은 근대사회가 스스로를 계속해서 새롭게 성찰함으로써 가능하다는 저자의 신념을 반영하고 있다. 저자는 위기의 시대에 사회철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함과 동시에, 기술지배와 생명과학의 문화적 충격, 정보사회의 위험성, 근대의 폭력, 생태 위기, 가부장제 젠더 질서에 대한 진지한 의문을 던지며 공감과 연대, 환대의 윤리의 필요성을 참신한 시각으로 일깨운다.
저자는 칸트의 평화구상이 그가 스스로 표명한 것보다 훨씬 더 인류의 도덕적 학습능력에 의지한다는 점을 역설하며, 환대의 윤리는 현재의 세계에서 평화적 관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긴급하고도 중요하게 요청되는 윤리라는 점을 강조한다. “좌절된 자들이 소통의 장으로 들어올 용기를 갖도록, 소통의 방식으로 뜻을 전달할 수 있음을 경험하게 하도록, 소통을 통해 오히려 의사를 더 잘 전달할 수 있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 지점에서 바로 환대의 윤리가 절실히 필요하다.” 장춘익은 분석과 논증의 힘을 믿었지만 그 결과를 현실화하는 데 공감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근대성의 위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계몽’을 향한
사회철학자 장춘익의 깊이 있는 사유

『근대성과 계몽: 모더니티의 미래』는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근대성과 합리성’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실천적·규범적 함의를 발휘하는 근대성과 도구적 합리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실천적 합리성의 성격을 탐색한다. 여기서는 헤겔의 철학을 참조하여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바람직한 사회에 대한 근대적 이상을 밝히고 있다. 그 이상은 바로 보편적 원리에 입각해 사회성원들의 공동 삶이 규제되고, 그 안에서 사회성원들은 최대의 자유를 누리며, 동시에 사회가 자신들의 자유롭고 안정적 삶의 현실적 기반이 된다는 자각에 입각해 그 사회에 대하여 공동체적 유대감을 느끼는 사회이다.
2부 ‘위기의 근대성’은 현대사회가 맞닥뜨린 여러 문제를 사회이론적 기반 위에서 철학적으로 성찰한다. 자율적 주체와 이성적 사회를 추구하는 이론적·실천적 노력으로서 ‘사회철학’이 의지하고 있는 자율적 주체라는 이념이 “사회적 관계에 대한 설명틀로서나 규범적 평가의 기준으로서 의심스럽게 된” 상황을 ‘사회철학의 위기’로 규정하고, 이런 위기의 시대에 사회철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한다.
3부에는 ‘새로운 계몽’이란 표제 아래 주로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진단과 더불어 대안을 모색하는 글들을 담았다. 현대산업사회의 기술지배가 사회의 통합적 기능을 위축시키는 상황에 맞서서 인문과학과 대학교육이 담당해야 할 과제들을 성찰하고, 지구화된 시대에 국가의 역할을 탐구한다. “배타적 주권국가로서의 근대국가는 낡은 틀이 되었지만, 보편주의적 원칙이 정치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사회제도를 통해 실질적으로 구현되는 이념형으로서의 근대국가는 여전히 유효하며”,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가의 성격 변화도 국가 역할의 감소라기보다는 형태 변화의 과정으로 저자는 진단한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국내 독자를 만나는 논문은 「평화, 세계시민권, 그리고 환대의 윤리: 칸트의 평화구상에 대한 한 해석」이다. 이 글은 칸트의 환대 개념을 “이방인과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하고자 하는 자세”로 독창적으로 재해석한다. 그것은 이방인과의 상호작용에서 상호이해를 위한 부담을 함께 지려는 태도인데, 이런 환대의 윤리가 테러리즘의 시대인 현재에 더욱 긴급하게 요청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분배적 정의와 복지」 또한 지면에 발표되지 않은 귀한 글이다. 분배 정의를 둘러싼 복잡한 논의를, 한편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마르크스를 거쳐 현대의 자유주의(롤즈, 노직, 드워킨), 운(運)평등주의와 공동체주의에 이르는 이론사적 측면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각 이론이 평등의 이념을 해석하고 있는 철학적 구조의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비교하고 분석한다.
이 책은 사회비판이론과 실천을 매개하고 통합하려는 집요한 산물이다. 동시에 지난 시대를 지배했던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을 초월하는 ‘새로운 계몽’을 향한 탐색의 기록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사회철학자이자 지식인으로서 저자가 늘 지향했던 소통과 연대의 정신, 독일철학의 다양한 성과를 도입하여 현대사회가 마주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분투하는 한 철학자의 사려 깊은 고뇌를 만나게 될 것이다.


◎ 추천사

이 책은 사회비판이론과 실천을 매개하고 통합하려는 집요한 노력의 산물이다. 동시에 지난 시대를 지배했던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을 넘어선 ‘새로운 계몽’을 향한 탐색의 기록이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과 루만의 체계이론 모두를 섭렵한 장춘익이 이 책에서 그려내는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확장하고 구체화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미시마 겐이치 三島憲一 (오사카대학교 비교문명학과 명예교수,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 국제자문위원)

평생 한 철학자만을 섬기는 것과는 거리가 먼 장춘익은 근대 이후 독일철학의 다양한 성과를 도입하여 현대사회가 마주한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모색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자신이 논의하는 문제의 핵심, 그에 답하는 일의 어려움, 또 유효한 대답들 간 균형을 찾고자 분투하는 한 철학자를 만난다. 그는 분석과 논증의 힘을 믿었지만, 그 결과를 현실화하는 데 공감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점을 나와 독자에게 일깨워주는 그가 한없이 그립다.
주동률(한림대학교 철학과 교수, 전 한국윤리학회 회장)

사회철학자인 장춘익 교수는 독일 비판이론의 전통을 잇는 하버마스의 이론과 서구 체계이론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루만의 이론을 체계적이고 균형 있게 평가하고 있다. 이 책은 철학자로서 원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두 독일 사회이론가를 소개하고 있어서 현대 사회이론에 관심을 갖는 모든 이들에게 독일 사회이론의 길라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신광영(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석좌교수, 『한국 사회 불평등 연구』 저자)

20세기 서유럽 사회철학의 흐름을 경쟁적으로 주도했던 하버마스와 루만의 대작을 우리말로 옮겼다는 것만으로도 장춘익 교수의 학문적 기여는 정말 크다. 하지만 이 두 대가의 저작을 포함하여 근현대 독일철학사가 낳은 위대한 원전의 ‘철학적 문제의식들’과 ‘핵심개념들’로 우리의 현재 삶을 묻고 성찰한 것이야말로 그의 진정한 학문적 기여일 것이다. 그의 이러한 창의적 성찰에 힘입어 우리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홍윤기(동국대학교 철학과 교수, 전 사회와철학연구회 회장)

◎ 본문 중에서

공통에 대하여 차이를, 보편적인 것에 대하여 특수한 것을 강조하는 것이 철학의 구호가 된 오늘날 헤겔의 역사철학이 사람들에게 여전히 감동을 줄지, 또 헤겔의 역사철학이 가장 발달된 것으로 제시하는 사회형태가 과연 사회발전의 완전한 척도를 제공하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직도 가장 중요한 사회발전의 척도인 것은 부정될 수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문제는 헤겔이 제시한 사회발전의 척도가 불완전하다기보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보편성에 입각한 법에 의해 통치되고 개인이 자유를 누리되, 그런 법을 자신의 자유와 권리의 원천으로 삼고 있는 사회형태에 근접한 나라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오늘날 더 이상 보편주의적 관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이 생겨났다고 주장되지만, 보편주의적 관점의 사회적 구현이 여전히 가장 시급한 과제인 것도 사실이다._46쪽

하이데거와 헤겔은 근대적 주체를 각기 다른 방향으로 초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이데거는 근대적 주체가 존재자를 객체화하기 이전의 존재관계에로 초월하려 한다면, 헤겔은 근대적 주체보다 상위의 주체인 이성에로 초월한다. 그러나 하이데거식의 탈주체(脫主?)도, 헤겔의 초주체(超主?)도 현대사회의 문제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다. 하이데거의 문제의식이 기술에 의한 세계의 황폐화라면, 그리고 헤겔의 문제의식이 이기적 개인들 사이의 적대적 관계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그런 문제의식은 오늘날 인간의 다양한 필요와 공동의 이익을 고려하며 자연을 최소한으로만 간섭하려는 포괄적인 민주주의적, 생태학적 시각으로부터 재설정되어야 할 것이다._74쪽

사회적 협동이 필요하다고 해서 물리적 강제력에 의해 사회질서를 확립하거나 전통적 도덕에 회귀하는 방식은, 만일 불신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일시적인 조치에 머물지 않는다면, 당분간의 효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신뢰의 기반을 허물어뜨릴 위험을 갖는다. 근대성의 조건하에서 지속적인 신뢰에 기반한 사회적 협동체제는 실천적 합리성과 기능적 합리성을 훼손하면서 성취될 수는 없다. 보편주의적 도덕교육과 복지를 통해 사회적 연대성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 공정한 언론과 시민운동 등을 통한 활발한 사회적 의사소통, 민주적 법치, 사회체계의 기능적 역량향상 등은 근대성의 조건하에서 신뢰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방향지표로 삼아야 할 사항들인 것으로 보인다._134쪽

동일한 유전적 형질을 갖는 인간을 복제하여 성장시키는 것은 금지하여야 한다. 이것은 장기를 사용하기 위한 경우뿐 아니라 후손을 갖기 위한 복제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복제인간의 특정한 소질이 그의 존재 이유가 되기 때문에 인간의 자기 목적성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런 지침은 우리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이 결국 그의 어떤 특정한 소질 때문이라는 주장에 의해 반박되지 않는다. 상대의 특정한 소질은 우리가 그와 관계를 맺는 이유이지만 그의 존재의 이유일 수는 없다. 이에 반해 특정한 유전적 형질을 갖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것이 선인을 만들거나 악인을 만들거나 간에, 특정한 소질 때문에 어떤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_164쪽

앞에서 나는 범지구화된 자본의 이윤 논리와 권력의 효율성 논리에 저항하는 집합적 실천을 가능케 할 연대성의 기반으로서 자연에 대한 책무 의식, 보편적 인권주의, 여성주의적 의식과 진전된 개성화 등을 들었다. 나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정치적 상상력은 저 의식들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식에 기초한 실천이 어떤 성과를 가져올지에 대해서 예측한다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다. 그러나 저 인식과 규범의식은 적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보 통신 기술에 의해 새로운 차원의 생산력과 교류의 가능성이 개화되는 이 시점에도 여전히 감소하지 않는 극단의 빈곤과 자연 파괴, 경제적 수탈, 억압, 성차별 등을 회피하지 않고 대면하게 만들며, 개선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도록 자극할 것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내가 저 인식과 의식들에서 보고자 했던 것은 일차적으로 성공의 전망이 아니라 비관하지 않을 근거였다._224~225쪽

나의 생각으로 현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일종의 사회계약 정신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저작권 사업자들은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을 바탕으로 정보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나 개인들과 지금처럼 기존의 법에 의존하여 대결만을 벌일 것이 아니다. 저작권자들만이 디지털 환경이 주는 이점의 독점적인 수혜자일 수는 없다. 오히려 그들과 한시적인 협정을 맺어 현재 정보공유 방식이 저작권에 미치는 효과를 공동으로 분석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저작권에 피해가 가지 않는 정보공유방식을 정착시켜나가기로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저작권자와 사용자의 이익을 함께 배려하면서 디지털 환경에 대처하는 자세라고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부분의 음반회사들이 냅스터사와 어떤 타협도 하려 하지 않는 것은 미래지향적인 태도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정보공유론자들도 저작권의 보호 없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지식과 정보가 축적될 수는 없을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타인에게 정보와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많은 사람에게 큰 기쁨이지만 일반적으로 강제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근대사회에서 산업생산과 상품경제의 발달이 소유권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요구하였고 노동과 공정한 교환에 근거한 물적 소유권이 정당화되었듯이, 오늘날 디지털 환경은 저작권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_252쪽

폭력은 사라질 수 있는 것일까? 단답형으로 말하자면, 그럴 수 없다. 인간이 신체적 존재인 한에서, 적어도 ‘주관적인’ 최종해결책으로서 폭력은 완전히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폭력을 줄이려고 하는 시도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폭력 극복의 실존적 불가능성을 핑계로 폭력을 미화하고자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내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반폭력주의가 좁은 안전지대를 만드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나에게는 특히 안전지대 밖의 폭력은 ‘그들’의 일이고, 폭력이야말로 ‘그들’과 ‘우리’를 가르는 징표라고 보는 태도가 문제로 여겨진다. 오늘날 폭력은, 개인적 차원에서나 집단적 차원에서나, ‘그들’의 삶의 조건을 ‘그들’의 탓으로 돌리는 가장 좋은 이유가 되고 있다. 폭력적 개인은 도울 필요가 없는 존재이고, 폭력적 집단은 응징을 받아야 하는 집단으로 여겨진다. 폭력은 배제된 자들을 배제된 영역에 묶어두는 마법의 고리가 된 것이다. 그런데 만일 배제된 자들이 폭력성 때문에 배제된 측면보다 배제되었기 때문에 폭력에 노출되는 측면이 더 크다면, 폭력을 줄이기 위한 노력의 방향은 분명하다. 배제를 아주 배제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그것이다._273쪽

경쟁적 대중민주주의와 복지국가는 시민들에게 수혜자의 위치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시민들은 세계차원에서 어떤일이 일어나든, 자신들이 누리는 수혜의 폭이 줄어들지만 않으면 된다. 자신들의 복지수준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의 세계질서가 된다. 이런 시민들에게, 저개발국으로부터의 이방인은 아주 쉽게 수혜의 경쟁자로 축소되어 이해되고, 그런 이방인들의 유래지인 저개발국은 문제의 온상 정도로 여겨진다. 이방인과의 소통이 확대되기는커녕, 오히려 소원화 경향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칸트를 따라, 인류의 도덕적 학습능력에 희망을 건다. 또 그럴 조짐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나는 잘사는 나라의 시민들이 인색한 표정을 거두고 의사소통의 문제에 관한 한 그들이 오히려 만회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길 바란다._350쪽

저자소개

저자 소개

이름: 장춘익(張春翼)
약력: 철학, 사회학, 정치학자

서울대학교와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대학교에서 철학, 사회학, 정치학을 수학하였다. 1992년 여름 『자율적인 주체와 이성적인 사회. 헤겔, 마르크스, 하버마스의 이론과 실천』(Selbstreflexiv-selbstbestimmende Subjektivitat und durchsichtig-vernunftige Gesellschaft: Theorie und Praxis bei Hegel, Marx und Habermas, Peter Lang, 1994)으로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이후 한림대학교 철학과에 부임하여 서양근대철학과 사회정치철학을 강의하였다. 1990년대에 하버마스의 사회이론에 대해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2006)을 번역하여 국내의 진보적 학술 담론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편으로는 루만의 체계이론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지배, 커뮤니케이션, 근대국가, 신뢰, 생태, 젠더와 같은 현대사회의 중요한 문제들로 철학적 연구를 확장하였다. 루만에 대한 다수의 논문들 외에도 루만의 『사회의 사회』(2012) 번역은 이 시기의 중요한 업적이다. 2010년대 후반에 이르면서 장춘익은 다시 비판적 사회이론에 집중하면서, 자유주의이론과 사회주의 전통의 이론들을 통합하고자 노력한다. 그의 이러한 30년의 치열한 철학적 사유는 『장춘익의 사회철학』 전 2권(2022)으로 집대성되었다. 그 외 『하버마스의 사상』(1996 공저), 『젠더연구』(2002 공역), 『파편화한 전쟁』(2017 공역) 등이 있다.

목차소개

목차

간행위원회 머리말 4

1부 근대성과 합리성
1장 헤겔: 이성의 계시록으로서의 세계 18
2장 하이데거의 헤겔, 헤겔로부터 본 하이데거 48
3장 실천적 합리성은 도구적 합리성과 다른 독자적인 지위를 갖는가 76
4장 신뢰와 합리성 106

2부 위기의 근대성
5장 사회철학의 위기, 위기의 사회철학 136
6장 생명과학기술의 문화적 충격 156
7장 생태철학: 과학과 실천 사이의 지적 상상력 166
8장 연결과 연대: 정보사회에서 실천의 문제 191
9장 디지털 환경은 ‘공정이용’을 무효화하는가: 디지털 환경에서의 저작권 226
10장 근대와 폭력, 혹은 우리는 얼마나 비폭력적인가 253

3부 새로운 계몽
11장 인문과학의 위기와 가능성 276
12장 기술지배와 가치, 그리고 대학교육 290
13장 근대국가이론과 국가의 해체 316
14장 평화, 세계시민권, 그리고 환대의 윤리: 칸트의 평화구상에 대한 한 해석 335
15장 분배적 정의와 복지 351
16장 형식적 평등, 실질적 평등, 도덕적 평등: 약한 평등주의의 강한 옹호, 강한 평등주의의 약한 옹호를 위하여 391

참고 문헌 445
용어 색인 459
논문 출처 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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