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에서’ 유독 동물은 학대받을까?
한국 정부는 동물보호법을 계속해서 개정하고 있다. 하지만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경제 성장, 복지 향상 등으로 선진국 여부를 판단하지만 우리는 진정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만한가. 독일은 동물복지당을 만들어 말 못하는 동물들의 대변인 역할까지 하고 있고, 미국은 일찍이 흑인과 여성 등 소수자의 인권과 함께 ‘동물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동물 복지가 한국 같은 수준에 머물러서는 결코 국제 사회에서 선진국으로 대접받을 수 없다.
이 책은 동물보호가 정희남과 저자가 동행하며 경험한 한국 반려동물의 학대 상황을 기록한 글이다. 필자가 10여 년간 한국의 동물 학대를 보면서 절박하게 느낀 것은 ‘개식용이 동물 복지의 큰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동물보호법을 개정해도 소용이 없는 이유는 개식용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 학대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개식용’이 금지되지 않는 한 동물 보호는 허황되고 거짓된 외침일 뿐이다.
개식용 금지 움직임은 서양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아시아에서도 대만, 홍콩, 필리핀 등 국가에서 국회의원들이 발 벗고 나서 개식용 금지를 법으로 제정했다. 그러나 한국은 어떤가. 수많은 정치인들과 오피니언 리더들은 오히려 ‘개는 전통 음식’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국민들의 ‘정서 음식’이자 ‘전통 음식’이라서 지켜야 한다는 말인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개고기는 중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사대주의 폐단의 하나이다. 중국은 예로부터 개고기를 먹어왔으며, 문헌에도 역사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을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교묘하게 이용했다. 국제 사회에 ‘조선인은 개를 먹는 야만인이기 때문에, 일본이 문화적으로 열등한 그들을 교육해야 한다’고 홍보한 것이다.
사대주의와 일제 식민지의 잔재, 무엇보다 ‘야만인의 상징’이었던 개식용. 하지만 한국은 ‘전통 음식’이라면서 이를 지키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월드컵 등, 한국에서 국제 행사가 개최될 때마다 세계인들에게서 개고기 문제가 불거지자, 2003년 한국 정부는 ‘꼼수’를 썼다. 소위 ‘개고기’ 취급을 당하는 누렁이나 백구를 식용견으로, 일반 애완견을 반려견으로 분류해놓고, 식용견은 먹어도 된다고 법제화한 것이다. 결국 동물에 대한 소수 국민들의 폭력을 정부가 ‘허용’해준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어떤가. 누렁이도 애완견으로 키우는 집이 있는 반면 지금도 보신탕집 앞마당에서, 혹은 구석진 곳에서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되고 있는 애완견들도 많다. ‘개식용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와 잣대를 가진 동물법이 없기 때문’이다.
국제 사회에서 선진국, 문화인으로 대접받기 위해 우리는 경제성장뿐 아니라 매너를 익히고 외국어를 배우며 ‘국제 표준’이 되기 위해 애써왔다. 이러한 것들이 어느 정도 갖춰진 지금, ‘생명 존중 의식’을 갖추지 못한다면 국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더 이상 없다. 개고기로 인한 국가적 명예를 회복하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고통을 구제해야 한다. 가장 빠른 길은, 지도자들의 생명 존중 의식이 높아지는 일이다.
개를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주변과 이웃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동물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생각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만 해도 개를 반려 가족으로 두고 사는 이들이 1,000만 명 이상이다.
개식용 퇴출은 어떠한 논리나 동물 사랑에 앞서 개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이웃과 이웃나라에 대한 우리의 성숙한 배려와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