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귀한 서울의 한 달동네에서 태어났다. 주기적으로 물에 잠기는 안양천변의 저지대에서 유년을 보냈다. 전라도 빈농의 자식들인 가족은 수도권의 빈촌들을 물처럼 흘러 다녔다. 포클레인의 무쇠 팔, 무너지는 블록 담, 잦은 이사와 전학이 원체험이며, 요즘도 그런 풍경을 볼 때면 불길한 향수에 젖는다. 어설프게 읽은 도스토옙스키와 노태우 정권의 북방외교에 들떠서 노어노문과에 입학했다. 입학원서를 낸 지 한 달 만에 소련이 붕괴하고 모스크바에 쿠데타군의 탱크가 어슬렁거렸다. 가격자율화 조치 이후 물가가 한 해에 스무 배씩 오른다는 큰 나라의 소식을 들으며 삶과 상품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대학 다섯 학기 동안 러시아어 격변화를 다 외우지 못한 채 군대를 갔고, 복학한 뒤부터 톨스토이를 열심히 읽었다. 졸업 후 몇 개의 직장을 거쳐 한 시사주간지 편집팀에 입사했다. 인간은 사실에 집중해야 하며, 세상을 비난하기 전에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그곳에서 배웠다. 삼십 대 후반, 갑자기 무언가 쓰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