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H(Enneagram Based Spiritual Healing) 프로그램은 에니어그램에 기반한 영적 치유와 더불어 몸과 마음의 치유와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EBSH프로그램에서 에니어그램이란 우주에 사랑과 생명의 힘을 부여하여 다스리는 하느님의 아홉 시선에 담긴 말씀, 생명의 빛을 의미합니다. 수태되는 순간 나의 몸을 사랑과 생명의 힘으로 바라보는 하느님의 시선에 담긴 말씀, 생명의 빛은 나의 몸을 살아 움직이게 해 주는 영성이 되어 나의 얼굴 안에서 심어지게 됩니다. 나는 나의 영성을 닮은 얼굴과 성품, 그리고 나의 영성을 꽃피워낼 수 있는 재능도 함께 가지고 태어납니다. 나의 영성이 심어진 나의 얼굴은 하느님의 아홉 시선 중 하나의 시선에 담긴 말씀, 생명의 빛으로부터 온 하느님의 한 조각 얼굴로서 있는 그대로는 완벽하고 훌륭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참 좋았다>라는 성서 말씀처럼 우리 역시 각 개인이 가진 얼굴에 따라 나는 귀하고 훌륭하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한 조각 얼굴을 가지고 태어났을 뿐 하느님의 온전한 얼굴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의 얼굴은 하느님의 다른 얼굴들과 조화롭게 이어질 수 있을 때야 완벽해지며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재능은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고 자신의 힘으로 선악을 분별하고자 자기중심적 거친 힘, 육체적 심리적 생명으로 분리되어 태어난 우리의 영성과 재능은 분리되어 태어난 육체적 심리적 생명 안에서 작용합니다. 선악 분별을 위한 자기중심적 거친 힘, 육체적 심리적 생명은 주어진 영성의 기운에 따른 기질(氣質)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재능으로부터 온 생각과 말과 행동은 주어진 기질대로 살아남기 위한 무의식적 본능적 생존 욕구에 따른 집착과 충동, 강박 안에서 드러납니다.
그렇게 자신만을 위하여 집착으로 가져간 우리의 재능은 다른 이의 재능과 부딪히게 되고 부딪혀서 힘들수록 얼어붙게 되어 결점이 되고 약점이 되고 맙니다. 세상은 우리의 재능을 조화롭게 써서 다 함께 하느님의 완벽한 얼굴을 만들어 가기보다 집착과 집착이, 결점과 결점이 부딪히는 힘든 곳으로 변해 왔습니다. 개인과 개인 사이, 나라와 나라 사이, 가장 사랑을 주고받아야 할 부모와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을 주신 이로부터 받은 우리의 집착과 재능은 같은 연속 선상의 다른 얼굴들입니다. 우리들의 강한 집착, 부정적인 것들 안에 생명의 선물, 긍정적인 재능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들 부모에게는 아이들의 강한 집착, 결점과 약점 안에 숨어있는 생명의 선물인 재능을 살펴보고 키워주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기질에 따른 가치대로 아이를 키워내고 싶은 부모의 무의식적 본능적 생존 욕구에 가린 집착과 충동의 눈에는 아이의 결점과 약점 안에 숨어있는 생명의 선물과 재능이 보이지 않습니다. 부모들의 마음은 결점과 약점 안에 숨은 재능을 찾아내어 키워주기보다는 아예 결점과 약점의 싹을 잘라 없애 보려 합니다. 그러나 불가능합니다. 아이의 결점과 약점을 없애 버리게 되면 아이의 타고난 생명의 선물과 재능 역시 없어지게 됩니다. 위험한 것은 그렇게 심하게 아이를 억압할 경우 아이의 몸과 마음을 움직여 살아가게 해 주는 힘과 생명력을 꺾는 것이어서 아이의 삶 자체를 파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부모 속을 썩이는 일이 없던 엄친아의 자살 소식과 함께 고개를 들지 못하고 다니는 한 어머니를 본 적이 있습니다. 폭력적이지도 않고 얌전해 보이는 그 얼굴이 어떻게 아이를 자살로 몰아갔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목숨이 붙어 있는 생명에게 생존 본능만큼 질긴 건 없을 겁니다. 아이가 목숨을 끊어야 했을 때는 죽기가 더 쉽겠다고 생각될 만큼 살아가기가 힘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는 잘 모릅니다. 생존을 위한 무의식적 집착과 충동 안에서 자신의 기질에 따른 가치대로 아이를 키워내고 싶은 욕심에 가린 우리는 천금 같은 자식이 그처럼 앓고 있어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이들 역시 자신의 기질에 따른 자신의 가치를 살아가고 싶은 독립된 얼굴을 가진 인격체로 태어납니다. 국화로 태어난 꽃은 국화로 피어나고 싶고, 장미로 태어난 꽃은 장미로 피어나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라나는 어린싹을 모질게 꺾고 비틀어 자신의 의도대로 형을 잡아가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다 결국은 옥상에서 뛰어내립니다. 자연스러운 자신의 모습대로 커 갈 수 없는 아이들의 아픔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몸을 살아 움직이도록 해 자신의 영성에 따른 가치 추구와 실행을 통해서 숨 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자치에 따른 자아표출 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적절한 자아표출이 허락될 때에야 자연스러운 숨을 쉬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천편일률적인 교육 시스템 속에 던져져 양육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 혹은 집단의 요구에 끌려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무한경쟁 시대의 희생양이 되어 간다는 느낌입니다.
최근에도 카이스트 학생의 연이은 자살 소식과 함께 카이스트 대자보에는 "대외적으로는 개성 있고 창의적인 인재 육성을 표방하지만, 우리를 컨베이어 벨트 위에 줄 세워 놓고 틀에 억지로 몸을 끼워 맞추도록 강요한다.”라는 절규의 글이 게시되었습니다.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고 합니다. 자살뿐만이 아니지요. 학교 폭력 등 청소년 범죄도 그 수법이 도가 넘었습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듯이 아이들이 그토록 험한 폭력을 자행하게 되는 것은 분명히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심리학에서 문제아는 그 공동체 구성원들의 문제를 대신 앓고 있는 희생양의 의미입니다. 학교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나 폭력을 당하는 아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하는 아이들 모두 양상이 다를 뿐 이 사회의 문제를 대신 짊어지고 앓고 있다는 것이지요.
부모 혹은 집단의 요구에 의해 자연스러운 자아표출이 억압될 때 자연스러운 숨을 쉴 수 없는 아이들의 정서는 폭력적으로 될 수밖에 없으며, 부모 혹은 집단의 가치에 따라 주어야 한다는 강박과 자신의 가치가 상충할 때 아이들은 피 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또한 이해받지 못하고 거부당한 탓에 공감 능력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사이코패스로 자라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그처럼 무지할 수 있을 것일까요? 우리가 일상 안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하는 이지, 감정, 의지의 심적(心的) 작용을 일상 의식이라고 말한다면 에니어그램의 스승 구르지예프는 우리의 일상 의식을 인식의 감옥 안에서 잠자는 의식이라고 표현합니다. 인식의 감옥 안에서 잠자는 의식이란 다른 가치로부터 온 생각과 말과 행동을 자신의 가치에 따라 각각 다른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의식체계를 말합니다. 우리들 각 개인은 각각 다른 가치체계라는 거울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가치체계라는 거울에 상대방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비추어보고 저건 맞아, 저건 틀렸어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의 가치에 따라 섣불리 판단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던진 말이 자식에게, 남편에게, 이웃에게 얼마나 큰 철퇴가 되어 꽂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일상 안에서 저지르고 있는 죄는 모두 그러한 인식의 감옥 안의 잠자는 의식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인식의 감옥 안에 갇혀 자신의 창으로만 보고 느끼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 일상의식으로는 백주에 부모가, 누이가 어느 모서리에서 신음하며 죽어가고 있어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탓에 공감 능력을 상실한 채 감각 없이 먹고 마실 수 있는 우리는 어쩌면 집단 사이코패스를 앓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의 생명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개성화가 허락되는 사회, 다양한 개성들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다 함께 낙원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사회적 변화를 위하여 우리들 잠자는 의식이 깨어나야 합니다. 이 책을 통하여 부부관계와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가 개선되고 이웃 관계가 개선되어 여리고 고운 새싹들이 맑고 푸른 공기를 마시며 맘껏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