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권>
1926년 여름.
조선총독부 법무국장의 금지옥엽. 백작가의 사랑스러운 고명딸.
하루하라 미나는 처음으로 경성 땅을 밟았다.
아버지가 준비한 선물, 그녀의 근사한 남편감을 만나기 위해.
“하야시 슌세입니다.”
경성 대부호의 상속자. 매국 대신의 장손이자 자작가의 후계자.
임준세.
“그쪽은 이 결혼 왜 하고 싶어요?”
“총독부에서 근무하고 싶습니다.”
“……너무 솔직하시네.”
그녀의 눈 속에서 그는 뚜렷하게 웃고 있었다.
서글서글, 언죽번죽, 뻔뻔하게 잘도 웃는다.
밸도 없는 사내 같으니.
“그렇게 출세하고 싶어요?”
“안 됩니까?”
결단코 함께 필 수 없는 꽃이 있다.
태생적으로 섞이지 못할 사람이 있다.
그러니 미나 또한 이 철칙을 꼭 기억해야 한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하루하라 양.”
순진하게도 그런 상대를 마음으로 대했다가는,
정녕 걷잡을 수 없이 우스워지고 말 테니까.
<3, 4권>
이 생의 진실은 언제부터 사라졌을까.
“복수가, 나쁜 건가.”
오래전부터 그의 생은 황무지였다.
불타고 갈라져 아무도 살 수 없는 땅이었다.
꽃은커녕 잡초 한 포기 돋아나지 않는 땅.
“준세. 예쁜 이름이네요.”
그러니 다 부질없는 일이다.
예기치 못한 즐거움을 잠시 누렸다 한들.
시간이 흐르면 다시 마르고 갈라져 고통만 남게 될 것이다.
“좋아해.”
준세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 이 모두가 현실이 아닌 것 같다.
그를 둘러싼 이 모든 세상이. 눈앞의 거대한 어둠과 흐릿한 빛이.
“당신만 무사하면 돼.”
나를 용서하지 마.
절대 용서하지 마.
“약속해 줄 수 있지?”
아마 나는 끝까지, 너를 울게 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