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내포하지 않은 관계에는
늘 횡포가 도사릴 수 있다
그는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언제나 ‘아버지’를 꼽는다. 아무리 바빠도 딸의 말 한마디에 어디서든 한달음에 달려오고 딸이 관심 갖는 것이 있으면 그에 알맞은 자극을 주려 노력하던 최고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그렇게 일찍 가실 줄 몰랐다. 그가 변호사가 되던 해, 아버지는 거짓말같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아버지로 인해 “때로는 지긋지긋하지만 가끔은 큰 행복을 주는 내 사람, 가족, 친구 그리고 나 자신마저도 언제 존재했었냐는 듯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혼 변호사인 그를 찾아오는 사람은 대부분 ‘우리가 언제든 이별할 수 있는 사이’란 당연한 진리를 까맣게 잊고 산다. 그는 이들을 보며, 모든 관계는 이별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때 관계에는 횡포가 도사릴 수 있음을 깨닫는다. 남편 혹은 아내의 희생에 무관심하고 배려를 잊은 이들, 친구가 먼저 연락해 주고 만나자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이들, 매번 집안 대소사를 나서서 챙기는 형제자매에게 고마워할 줄 모르는 이들 모두 자기도 모르는 사이 ‘횡포’를 저지르고 있는 것일 수도.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관계란 누군가의 노력 없이는 자연적으로 소멸한다. 이 사실을 잊고 살던 이들은 상대가 너무 힘들어 관계를 정리하려 하면 그제야 때늦은 후회를 한다. “진작 잘할걸.”
그동안 혼자 노력했다면,
이제 바통은 상대에게 넘기세요
그 반대편에는 더 많이 애쓰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에게 “나 하나만 참으면 될 줄 알았어요”라고 조심스레 털어놓는 이런 사람들은 정말 견디다 못해 이별을 선택한 경우다. 이들 중에는 그동안 상대에게 최선을 다했으니 됐다며 개운하게 돌아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관계의 끝자락을 붙잡고 상대가 변화할 가능성은 없을지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 마지막 남은 미련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그는 ‘상대에게 노력의 바통을 넘겨보라’고 조심스레 제안한다.
그동안 할 만큼 했다 싶다면, 그때부터 쏟는 노력은 자신에게 독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 독은 자존감을 갉아먹고 상대에 대한 원망을 부풀린다.
이제, 그동안 힘들었다고, 혼자 애쓰는 일은 그만하고 싶다고 말해야 한다. 그 말을 듣고 꿈쩍도 하지 않는 상대라면 그가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거리를 두고 그와의 사이를 다시 고민해 보는 게 맞다. 하지만 나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상대라면 분명 깜짝 놀라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볼 것이다.
이런 조언을 듣고서, 실제로 상대에게 힘든 마음을 솔직히 털어놨던 이들은 후련한 표정으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진작 말할걸.”
수많은 계절을 함께 보내고도
여전히 우리는 ‘서로 알아가는 사이’
이별을 상상할 줄 알게 되면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피어난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일하느라 바쁜 아내를 걱정한 남편은 맛집에서 음식을 사오고, 늦게 오는 남편을 염려한 아내는 퇴근하자마자 저녁상을 차린다. 둘 다 상대를 위해 한 일이지만, 받는 마음이 탐탁지 않다. 자기 시야에 갇혀 있는 우리는 내 식대로의 배려밖에 할 줄 모르고, 상대를 향해 끊임없이 오해를 쌓아간다.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행복하려면 우선 각자 행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내가 언제 웃는지 언제 슬픔을 느끼는지 찬찬히 관찰하며 나를 더 알아가야 한다. 특히, 자꾸만 관계가 삐걱거릴 때에는 상대보다 나를 먼저 들여다보며 내가 왜 괴로운지 고민해야 한다. 문제의 원인을 내게서 찾자는 게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잘 알아보고 나와의 관계를 잘 가꿔보자는 것이다.
그다음 할 일은 내가 아끼는 상대를 같은 방식으로 알아가는 것이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말하는 방식이 어떤지, 언제 화를 내는지. 사람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존재이기에, 이런 ‘알아가는 과정’은 평생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가 ‘1만 시간의 법칙’이 사람 공부에도 해당된다고 말하는 까닭이다.
자꾸 서걱대는 관계로 힘들 때, 혼자만 상처받고 괴로워한다는 생각이 들 때, 그렇다고 그 사람을 포기하긴 싫을 때. 살면서 누구나 이런 때를 맞는다. 그럴 때 그의 힘 있고 다정한 조언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가만한 위로가 온몸에 느껴진다. 마음을 두드리는 상냥한 표지와 진심이 느껴지는 단정한 문장을 음미하는 것도 큰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