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모르는 사이
아이들은 인터넷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는 인터넷에 길들여진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의 삶에 밀접하게 닿아 있는 인터넷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뉴스를 보면 인터넷으로 인한 범죄나 중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미 인터넷은 아이들에게 가장 친숙한 매체로 자리 잡았다. 요즘 아이들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인터넷을 도피처로 삼는다. 게임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다양한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다른 유저와 교류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간다.
『방과 후 사냥꾼』의 주인공 지오 역시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컴퓨터 게임을 도피처로 삼는다. 지오는 선생님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주변의 시선과 엄마의 억압을 참고 견뎌야 했다. 스트레스를 게임으로 해소하는 지오는 자신의 내면과 세계를 두 개로 나눠 현실에서는 모범적이고 온순한 아이 강지오, 게임 속에서는 무자비한 마황이 되어 살아간다. 선생님인 엄마와 친구들에게 공격을 받아 상처받은 지오는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숨긴다. 마치 사냥당하지 않으려는 듯 게임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한다.
너구리와 사냥꾼,
두 세계는 공존할 수 있을까
『방과 후 사냥꾼』은 복잡한 현실 세계의 억압과 관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은 초등학생 지오의 이야기이다. 지오는 2학년 때 엄마가 담임을 맡은 이후로 불편한 일이 계속 생긴다. 선생님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어지는 주변의 시선과 기대에 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엄마에게 고자질했다는 오해를 받아 친구들 사이에서 배신자가 되기도 한다. 외톨이가 된 지오는 이때부터 자신만의 비밀을 만들고 게임을 하기 시작한다. 지오에게 게임은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도피처이자 안식처이다. 그리하여 현실에서는 완벽한 모범생 강지오이지만 게임 속에서는 잔인한 게이머 마황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커뮤니티에 현실에서 진짜 사냥을 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카제’의 게시 글이 올라온다. 지오는 현실과 게임 속 세상 두 세계로 나뉜 자신을 하나로 합칠 수 있다는 생각에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사냥당하지 않으려면 직접 사냥꾼이 되어야 한다. 지오는 곧바로 가상공간에서 해왔던 사냥을 현실에서 수행하고자 한다. 진정한 사냥꾼이 되려는 지오는 우연히 다친 너구리를 발견하고 너구리를 사냥감으로 정한다.
“어쩌면 지오는 우리가 아는 아이가 아닐지도 몰라”
거울처럼 부모를 비추는 아이의 삶
『방과 후 사냥꾼』에 등장하는 게임 속 사냥 장면은 주인공 지오 마음속 파괴 욕구를 보여 준다. 지오가 무엇보다 가장 파괴하고 싶은 것은 자신을 답답하게 만드는 억압이다. 지오는 비싼 한약을 먹는 척하고 변기에 몽땅 버리는 등 앞에선 온순한 척하면서 뒤에서 엄마를 속이고 만족감을 얻는다.
“이번에도 제대로 잘 속였구나. 연기 천재 강지오, 역시 넌 최고야.” - 본문 중에서
엄마의 말에 복종하지 않음으로써 억압된 자신의 지위와 억압하는 엄마의 지위를 반전시키고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다. 지오가 온순하고 똑바른 아이인 줄 알았던 부모는 충격에 휩싸인다.
“널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전혀 모르고 있었구나.” - 본문 중에서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다. 아이를 제어하고 억압하면 할수록 아이의 진짜 모습에서 멀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어른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이보다 우위에 있다. 자연스럽게 권력을 거머쥔 어른들은 아이들 위에서 군림하여 감독하고 교육한다. 어른이 아이를 강압적으로 대하면 대할수록 아이는 어른의 눈치를 보며 자신을 숨기고 행동을 고쳐간다. 아이들을 제어하면 부모가 아는 아이의 모습은 부모가 보고 싶은 모습일 뿐이다.
『방과 후 사냥꾼』은 현실에서 상처와 억압을 받은 아이 지오가 현실과 가상 공간의 사이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자신을 감추려 했던 지오는 현실 세계의 사냥감인 살아 있는 ‘생명,’ 너구리를 통해 사냥감이나 사냥꾼, 현실과 가상의 분리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을 드러내고 진정한 ‘나’를 찾게 된다. 불안정하고 여린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인터넷 세상보다 부모를 의지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이들의 행동을 제어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한다면 네모난 모니터 속 세상에 갇혀 억압과 자극에 익숙해지는 아이들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