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헨리는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에서 내과 의사인 아버지와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어머니의 3남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1865년 미국 남북전쟁이 남부의 패배로 끝나자 아버지의 병원 운영이 점차 악화되었고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어머니로부터 오 헨리는 문학적 재능뿐 아니라 폐결핵까지 물려받았고, 폐결핵이 발병한 그는 1882년에 의사의 권유에 따라 텍사스로 이주해 생활하던 중 25살이 되던 1887년 애설 에스테스를 만나 결혼했다.
이후 1893년 아내의 내조로 「롤링 스톤」이라는 여덟 쪽짜리 주간 유머 잡지를 창간했지만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한 데다 1897년 아내가 폐결핵으로 숨을 거두자 재정 악화를 메우기 위해 일하던 은행에서 횡령을 저지른다. 이 일로 1898년 재판에서 5년 형을 선고받은 오 헨리는 연방 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그가 ‘오 헨리’라는 필명으로 유명해진 것은 바로 수감 생활 도중이던 30대 후반이다. 수감 생활 중 집필에 몰두한 그는 전국적으로 발행되는 잡지에 모두 열네 편의 단편을 게재했고, 출소 후 정식으로 필명을 사용하며 1903년부터 3년 동안 233편의 단편을 발표하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사치와 낭비벽, 음주로 인해 창작 에너지가 고갈되고 건강과 재정이 악화되던 그는 1910년 6월 5일 간경화 말기와 당뇨병 합병증으로 뉴욕의 한 병원에서 48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