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현장에서 문화 예술적 공간으로
2022년 5월 10일 청와대가 국민에게 전면 개방됐다. 이전까지 청와대는 대통령이 거주하면서 일을 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의미가 달라졌다.
몇백 년 전의 과거에는 왕이 기거하는 궁궐이 그 나라 정치, 문화, 역사의 중심이었다. 현대에 와서는 기능이 다양하게 분산됐지만, 과거의 궁궐과 가장 비슷한 공간을 꼽으라면 청와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국가 운영의 핵심 공간이며 현대사의 굴곡이 켜켜이 쌓인 역사의 현장이 바로 청와대다. 하지만 이제 대통령이 떠나고 집무실의 역할이 사라지면서 청와대는 또 한 번 변화의 시간을 맞았다.
청와대는 고려시대 때 처음 역사에 등장했다. 당시 수도 밖의 별궁 터가 지금의 청와대 자리다. 이후 경복궁의 후원이 되면서 조선의 건국과 일제의 침략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 관저가 들어서는 치욕을 겪기도 했다. 청와대라는 이름은 1960년에 붙여졌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통령 관저와 춘추관 등이 신축되고, 비로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때부터 쭉 정부 기관 역할을 하며 현대 정치사의 희로애락을 몸소 겪은 청와대가 이제 국민 앞에 오롯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정치적 시각을 걷어 내고 청와대를 바라보면, 우리의 전통이 현대적인 실용성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가장 잘 보여 주는 문화 예술적 공간이 그곳에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이미 한참 전에 청와대의 문화 예술적 가치를 알아보고 탐구를 시작했던 한 사진기자의 성실한 기록물이다.
청와대 출입기자가 보고 느끼고 공부한 모든 것
2006년에 처음 청와대 출입기자가 된 저자는 보도용으로 청와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청와대가 점점 익숙해지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건물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을 꾸민 요소 하나하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지고, 평범한 장식품이라고 생각했던 그림이 누구의 작품인지 알고 싶어졌다.
단정한 푸른 기와를 얹은 청와대 본관의 전경이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서 그 모습이 친근해지기는 했지만,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아니었기에 여전히 청와대의 많은 부분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저자 또한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청와대 곳곳에 호기심이 생겼다. 지붕에는 왜 하필 청기와를 올렸을까? 그 이름은 누가 붙였을까? 지붕 위에 올라앉은 괴상한 모양의 형상은 무엇일까? 건물 내부는 왜 이렇게 꾸몄을까? 가구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된 것일까?
청와대는 현대의 궁궐이자 문화재의 보고다. 하지만 그 외피는 고궁에 비하면 소박하기 그지없다. 그러면서도 하늘빛 청기와, 주춧돌, 잡상, 해태, 드므, 지붕, 그림, 가구, 건축, 정원 등 곳곳에 우리 문화의 정취가 듬뿍 배어 있다. 저자는 ‘단아하다’는 표현이 이처럼 어울리는 공간이 또 있을까 싶었다. 전통 양식과 문화를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곳곳에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눈에 띈다. 단순히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데만 집중하지 않고 실용성을 아주 중요한 가치로 두고 내부를 구성한 점도 색달랐다.
저자는 청와대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그것의 유래를 찾아 공부하면서 점점 더 청와대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청와대의 과거를 들여다보고 현재를 바라볼 수 있는 탁월한 길잡이이자 안내서가 탄생했다.
알아 두면 흥미로운 청와대 TMI
이 책은 청와대의 다양한 문화유산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풀어내는 재미로 충만하다. 저자가 직접 청와대 안팎을 누비며 담아낸 수백 장의 사진은 보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이 생긴다. 눈에 띄는 건물과 유명한 작품뿐만 아니라 사사로운 구조물이나 장식품까지 일일이 사진으로 담고 그 의미를 추적했다는 점이 특히 흥미롭다.
상상의 동물인 해태는 왕의 위엄을 나타내거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로 알려져 있다. 그런 해태상이 있는 곳은 과거에 말에서 내리는 장소이기도 했는데, 그 뜻을 이어받아 현대에 와서는 외국 정상을 태운 차가 도착하면 해태상 앞에서 내렸다고 한다. 또한 청와대 안에는 물을 떠 놓은 커다란 물동이인 ‘드므’라는 것이 있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마주했다면 그저 수초를 띄워 놓은 그릇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물속에 자신을 비춰 보고 반성하라는 의미로 존재했던 것이라고 하니 그 모습이 새삼스럽다.
본관 2층 접견실에는 정조대왕이 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수원으로 행차하는 모습을 그린 <능행도>가 있다. 그런데 그 그림 안에 누렁이 7마리가 숨어 있다고 한다. 출입기자들이 누렁이를 찾기 위해 그림을 빤히 바라보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큰 재미를 준다. 저자는 무려 10여 년에 걸쳐 7마리의 누렁이를 모두 찾았다.
그 밖에도 청와대의 일상적인 모습을 엿보는 즐거움이 의외로 쏠쏠하다. 청와대 안에 기자들도 이용할 수 있는 식당과 목욕탕이 있다는 사실은 그곳이 단순한 문화유산이 아니라 공무의 목적 아래 많은 사람이 치열하게 일상을 살아온 생활 현장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매일매일 청와대를 드나들던 기자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으로 곳곳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기울이던 관리인들, 안전과 보안을 위해 시종일관 긴장을 놓지 않던 경호관들의 일상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이 주는 뜻밖의 감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