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 프랑스 왕녀(여왕 마고)(Marguerite de Valois by Alexandre Dumas)(1845)는 샤를 9세(Charles IX of France)(1550~1574)의 집권 시기 발발한 프랑스 종교 전쟁(French Wars of Religion)(1562~1598), 일명 위그노 전쟁(Huguenots Wars)을 배경으로 하는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역사소설(historical fiction)입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앙리 2세(Henry II)(1519~155)의 딸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 프랑스 왕녀(Marguerite de Valois)(1553~1615), 일명 여왕 마고(Queen Margot)가 연인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자신의 어머니 카트린 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edici)(1519~1589)와 오빠 샤를 9세(Charles IX)(1550~1574)와 대립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과연 그녀는 자신의 연인과 결혼할 수 있을까요? 운명의 신은 과연 그녀에게 어떠한 삶을 허락할 것인가?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과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문학여행을! B
▶ 어려서부터 똑똑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그녀는 기즈 가문의 앙리 1세 드 기즈 공작(Henri Ier de Guise)(1550~1588)과 사랑에 빠졌으나, 계승권이 기즈 가문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어머니와 자신의 오빠 샤를 9세(Charles IX)(1550~1574)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개신교에 대한 화해의 제스처로 나바르 여왕 호아나 3세 나파로아코아(Joana III.a Nafarroakoa)(1528~1572)의 아들 앙리 4세(Henri IV)(1553~1610)와 정략결혼, 그의 첫 번째 부인이 되었습니다.
▶ 영화 여왕 마고(La Reine Margot)(1994)의 모티브가 된 라 몰르(Joseph Boniface de La M?le)(1526~1574)와의 스캔들 : 그러나 가톨릭과 위그노인(Huguenot) 간의 불화는 왕실간의 결혼 따위로 무마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결국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St. Bartholomew's Day Massacre)(1572)이라 불리는 사건이 터지고 맙니다! 당시 혼란한 상황에서 여왕 마고가 구한 라 몰르(Joseph Boniface de La M?le)(1526~1574)와의 스캔들은 영화 여왕 마고(La Reine Margot)(1994)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앙리 마고 역을 자벨 야스미나 아자니(Isabelle Yasmina Adjani)(1955~), 이자벨 아자니가 맡았습니다. 실제 역사에서 여왕의 침실에서 구조된 인물은 라 몰르가 아닌, 테이안(M. de Teian)이란 인물입니다.
번외적으로 라 몰르는 샤를 9세에 대한 암살 혐의로 사형을 선고, 파리 그레브 광장(Place de Gr?ve)에서 참수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1616)의 4대 비극 - 헨리 6세(King Henry VI) 제4장의 소재가 되었고, 작품에서 마고는 잘린 옛 연인의 머리를 가져갑니다;;
▶ 여왕 마고는 정략결혼으로 만난 남편과의 사이에서 후사를 낳지 못했고 이 때문인지 (서로) 자유롭게 연인을 만났습니다. 개신교도인 남편의 왕위 계승을 막기 위해 반역을 일으킬 정도로 자유롭게(?!) 살았으며, 이로 인해 (고작?!) 이혼을 당했을지언정 프랑스의 공주이자 왕비라는 지위를 평생 유지, 파리에서 호화스럽게 살았습니다. 이혼 후 전남편의 두 번째 아내 마리 드 메디시스(Maria de' Medici)(1575~1642)나 그들의 자식들과 사이가 좋았다네요. 적잖은 남자관계에도 불구하고 단 한명의 자식조차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불임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발루아 왕조(Dynastie des Valois)(1372~1589)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부르봉 왕조(Maison de Bourbon)(1589~1792ㅡ1814~1830)가 시작되었습니다.
▶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프랑스 혁명(French Revolution) 시리즈, 마리 앙투아네트 로맨스(The Marie Antoinette Romances) 시리즈, 의사의 회고록(The Memoirs of a Physician) 시리즈 : 붉은 집의 기사(The Knight of the Red House)(1845), 왕비의 목걸이(The Queen's Necklace)(1849), 바스티유 습격; 혹은 농부 피투(Taking the Bastille; Or, Pitou the Peasant)(1853), 마술사 발사모; 또는 의사의 회고록(Balsamo, the Magician; or, The Memoirs of a Physician)(1891), 최면술사의 희생자(The Mesmerist's Victim)(1894), 샤니 백작부인; 또는 루이 16세의 처형(The Countess of Charny; or, The Execution of King Louis XVI)(1900)
▶ CHAPTER I. MONSIEUR DE GUISE'S LATIN. On Monday, the 18th of August, 1572, there was a splendid festival at the Louvre. The ordinarily gloomy windows of the ancient royal residence were brilliantly lighted, and the squares and streets adjacent, usually so solitary after Saint Germain l'Auxerrois had struck the hour of nine, were crowded with people, although it was past midnight. In spite of the royal festival, and perhaps even because of the royal festival, there was something threatening in the appearance of the people, for no doubt was felt that this imposing ceremony which called them there as spectators, was only the prelude to another in which they would participate a week later as invited guests and amuse themselves with all their hearts.
▷ 제1장. 무슈 드 기즈(MONSIEUR DE GUISE)의 라틴어. 1572년 8월 18일 월요일, 루브르 박물관에서 화려한 축제가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어두웠던 고대 왕실의 창문은 환하게 밝혀져 있었고, 생 제르맹 로세로아가 9시를 가리킨 후 평소에는 그리도 한적했던 광장과 거리는 자정이 넘었지만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왕의 축제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아마도 왕의 축제 때문에 사람들의 모습에는 위협적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관중으로 불러들이는 이 위풍당당한 의식이 다른 하나의 서곡에 불과하다는 것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후 초대 손님으로 참여하여 온 마음을 다해 즐겁게 할 것입니다.
▶ CHAPTER LXVI. EPILOGUE. One year had elapsed since the death of Charles IX. and the accession of his successor to the throne. King Henry III., happily reigning by the grace of God and his mother Catharine, was attending a fine procession given in honor of Notre Dame de Cl?ry. He had gone on foot with the queen, his wife, and all the court. King Henry III. could well afford this little pastime, for no serious business occupied him for the moment. The King of Navarre was in Navarre, where he had so long desired to be, and where he was said to be very much taken up with a beautiful girl of the blood of the Montmorencies whom he called La Fosseuse. Marguerite was with him, sad and gloomy, finding in the beautiful mountains not distraction but a softening of the two greatest griefs of life,?absence and death.
▷ 제66장. 발문. 샤를 9세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계자의 왕위 계승. 신의 은총과 그의 어머니 캐서린의 은총으로 행복하게 다스리던 헨리 3세 왕은 클레리 노트르담(Notre Dame de Cl?ry)을 기리는 훌륭한 행렬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왕비와 그의 아내와 모든 궁정과 함께 걸어서 갔습니다. 헨리 3세. 당분간은 진지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 작은 오락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나바라의 왕은 그가 그토록 원했던 나바라에 있었고, 그곳에서 그는 라 포수우즈(La Fosseuse)라고 불렀던 몽모랑시(Montmorencies) 혈통의 아름다운 소녀와 매우 많이 사로잡혔다고 합니다. 마르그리트는 그와 함께 슬프고 우울했으며 아름다운 산에서 주의가 산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가장 큰 두 가지 슬픔인 부재와 죽음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