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고전683 알렉상드르 뒤마의 45명의 근위병Ⅰ(English Classics683 The Forty-Five GuardsmenⅠ by Alexandre Dumas)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 | 테마여행신문 TTN Theme Travel News Korea | 2022년 06월 30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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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 45명의 근위병(The Forty-Five Guardsmen by Alexandre Dumas)(1847)은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역사소설(historical novel)로 오귀스트 마쿠엣(Auguste Maquet)(1813~1888)과 합작한 공저로 프랑스 원제는 Les Quarante-cinq. 프랑스 종교 전쟁 - 위그노 전쟁(French Wars of Religion)(1562~1598)을 배경으로 하는 발로이스 가문 삼부작(House of Valois Trilogy)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으로 셀 수도 없는 전쟁과 전투, 모략과 암살이 난무하는 활극(活劇)입니다.

제목은 장 루이 드 노가레 드 라 발레트((Jean Louis de Nogaret de La Valette)(1554~1642), 일명 에페르농 공작(Duke of ?pernon)이 세 헨리의 전쟁(the War of the Three Henrys)(1587~1589)으로부터 앙리 3세(Henry III of France)(1551~1589)를 보호하기 위해 모집한 45명의 하급귀족 근위병을 의미합니다. 에페르농 공작은 친 가톨릭 파로써 앙리 3세를 지지하였고, 그가 암살된 후에도 앙리 4세의 암살을 도모하고, 위그노의 박해와 탄압에 가담하는 등 자신의 신념을 지켰습니다. 번외적으로 오드리 햅번(Audrey Hepburn)(1929~1993)의 먼 조상이기도 합니다.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과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문학여행을! B

▶ 45명의 근위병(The Forty-Five Guardsmen)(1847)은 실제 프랑스의 역사적인 사건과 실존 인물에 대한 묘사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 역사에 대한 교재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루이스 드 클레르 몽(Louis de Clermont)(1549~1579)을 배신한 앙리 드 조이우스(Henri de Joyeuse)(1563~1608),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St. Bartholomew's Day massacre)(1572), 앙리 4세의 꺄오흐 포위 공격(The siege of Cahors)(1580), 안트베르펜 공격(Siege of Antwerp)(1584~1585)과 앙주 공작 프랑수아(Francis, Duke of Anjou)(1555~1584)의 죽음, ‘과묵한 윌리엄’ 빌럼 1세(Willem Ⅰ, William of Orange)(1553~1584)의 암살…….

▶ 세 헨리의 전쟁(the War of the Three Henrys)(1587~1589) : 위그노 전쟁(French Wars of Religion)(1562~1598)의 일부인 세 명의 헨리 전쟁(the War of the Three Henrys)(1587~1589)은 가톨릭 동맹(Catholic League)과 스페인 필립 2세(Philip II of Spain)(1527~1598)의 지원을 받은 앙리 1세 드 기즈 공작(Henry I, Duke of Guise)(1550~1588), 왕당파가 지지한 앙리 3세(Henry III of France)(1551~1589), 프랑스 왕위 계승자(heir presumptive to the French throne)이자 위그노(Huguenots)의 지도자 앙리 4세(Henry IV of France)(1553~1610)가 각자의 상황과 이해관계에 따라 대립한 사건입니다. 결론적으로 앙리 4세가 최후까지 살아남았고 프랑스의 왕위(French kings)(1589~1610)에 올랐으나 그 또한 가톨릭교도에게 암살당하였습니다.

▶ 위그노 전쟁(French Wars of Religion)(1562~1598)을 배경으로 하는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발로이스 가문 삼부작(House of Valois Trilogy) :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 프랑스 왕녀(여왕 마고)(Marguerite de Valois by Alexandre Dumas)(1845), 광대 치코(Chicot the Jester by Alexandre Dumas)(1845), 45명의 근위병(The Forty-Five Guardsmen by Alexandre Dumas)(1847).

▶ CHAPTER I. THE PORTE ST. ANTOINE. On the 26th of October, 1585, the barriers of the Porte St. Antoine were, contrary to custom, still closed at half-past ten in the morning. A quarter of an hour after, a guard of twenty Swiss, the favorite troops of Henri III., then king, passed through these barriers, which were again closed behind them. Once through, they arranged themselves along the hedges, which, outside the barrier, bordered each side of the road.

▷ 제1장. 세인트 앙투안 문(THE PORTE ST. ANTOINE). 1585년 10월 26일, 세인트 앙투안 문(Porte St. Antoine)의 장벽은 관습과 달리 아침 10시 반에 여전히 닫혀 있습니다. 15분 후 당시 왕이었던 앙리 3세가 가장 아끼던 부대인 20명의 스위스인 경비병이 이 장벽을 통과했고, 그 장벽은 다시 닫혔습니다. 일단 통과한 후 그들은 울타리 바깥쪽에 있는 울타리를 따라 자리를 잡았습니다.

▶ CHAPTER XIV. THE SHADE OF CHICOT. The king, as we have said, was never deceived as to the character of his friends; he knew perfectly well that D'Epernon was working for his own advantage, but as he expected to have had to give and receive nothing in return, whereas he had got forty-five guards, he had thought it a good idea. Besides, it was a novelty, which was a thing that a poor king of France could not always get, and especially Henri III., who, when he had gone through his processions, counted his dogs, and uttered his usual number of sighs, had nothing left to do. Therefore he became more and more pleased with the idea as he returned to his room.

▷ 제14장 치코의 그늘. 우리가 말했듯이 왕은 친구의 성격에 대해 결코 속지 않았습니다. 그는 에페르농(D'Epernon)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45명의 경비병이 있는 동안 아무 것도 주고받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프랑스의 가난한 왕, 특히 앙리 3세는 행렬을 지날 때 개를 세고 평소처럼 한숨을 쉬며 말할 수 없는 것은 참신한 것이었습니다.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방으로 돌아오면서 점점 더 그 생각에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 CHAPTER XLIX. THE POOR OF HENRI OF NAVARRE. "Yes; but since then, sire, we have had peace; and excuse me, sire, you should have profited by it, and, instead of making love, have negotiated. It is less amusing, I know, but more profitable. I speak, sire, as much for my king as for you. If Henri of France had a strong ally in Henri of Navarre, he would be stronger than any one; and if the Protestants and Catholics of France and Navarre would unite in a common political interest, they would make the rest of the world tremble.“

▷ 제49장. 불쌍한 나바르(NAVARRE)의 앙리. "예, 하지만 그 이후로 폐하,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실례합니다, 폐하, 당신은 그것으로 이익을 얻었어야 했고 사랑을 하는 대신 협상을 했습니다. 그것은 덜 재미있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더 유익합니다. 나는 만약 프랑스의 앙리가 나바라의 앙리와 강한 동맹을 맺었다면 그는 누구보다 강했을 것이고, 프랑스와 나바르의 개신교와 가톨릭이 하나의 공통된 정치적 관심, 그들은 나머지 세계를 떨게 만들 것입니다."

저자소개

▶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1802~1870)

▶ 복수극의 완성자,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1802~1870) : 두마스 다비 데 라 파일테리(Dumas Davy de la Pailyterie), 일명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는 프랑스군의 장군으로 활약하는 토마스 알렉산드르 뒤마스(Thomas-Alexandre Dumas Davy de la Pailleterie)와 여관집 딸 마리 루이제 엘리자베스 라부렛(Marie-Louise Elisabeth Labouret Dumas)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할머니는 출신이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계 케러비언 혼혈(Afro-Caribbean people)로, 뒤마 또한 흑인 쿼터(1/4)입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벨기에, 러시아,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활동하는 동안 곱슬머리와 어두운 피부 덕분에 평생을 인종 차별에 시달렸습니다.

▶ 그의 아버지는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현재의 아이티(Haiti)에서 태어났으나, 프랑스 군사학교에서 교육받은 후 31세의 나이로 장군으로 진급할 정도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였습니다. 이는 프랑스 군 최초의 아프리카-안틸레스 출신 군인(the first soldier of Afro-Antilles)이란 대기록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의 나이 불과 4세 때 사망하였고, 그의 가족은 빈곤함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1789~1799) 당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휘하의 장군으로 활약한 아버지 토마스 알렉산드르 뒤마스 장군(General Thomas-Alexandre Dumas)이란 후광 덕분에, 상류층과 어렵지 않게 교류할 수 있었고, 성인이 된 후 파리에서 극작가로 등단할 수 있게 됩니다.

▶ 뒤마는 처음으로 출간한 희곡 헨리 3세와 그의 궁정(Henry III and His Courts)(1829)부터 인기몰이에 성공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생계를 위한 필경사(筆耕士)를 때려치우고, 전업 작가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뒤마는 수많은 여인들(40여명)과 사랑을 나누고(그의 사생아는 ‘최소’ 4명으로 추정됩니다.), (훗날 음식과 관련한 책을 집필할 정도로) 진귀한 음식에 열광하였으며, 파리 근교에 자신의 작품명을 딴 성(몽테 크리스토 성)을 세우는 등 평생 스캔들과 사치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돈을 벌수록 더더욱 돈이 필요했고, 이 때문에 평생 근면성실(?!)한 집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가 평생 출간한 책, 연재, 희곡 등의 총 분량은 무려 10만 페이지에 달합니다만, 국내 번역본이 출간된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 알렉상드르 뒤마 페르(Alexandre Dumas p?re)의 페르(p?re)는 아버지(dad)란 뜻으로 그의 사생아 아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Alexandre Dumas fils)와 구분하기 위해 붙인 것입니다. 피스(fils) 또한 프랑스어로 아들(son)이란 뜻.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춘희(La dame aux cam?lias(1848)를 비롯한 희곡을 다수 집필한 극작가로 활동하였으며, 그의 원작 희곡을 바탕으로 주세페 베르디(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는 3막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1853)를 작곡하였습니다.

▶ “There is neither happiness nor misery in the world; there is only the comparison of one state with another, nothing more. He who has felt the deepest grief is best able to experience supreme happiness. We must have felt what it is to die, Morrel, that we may appreciate the enjoyments of life. "세상에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한 국가와 다른 국가를 비교할 뿐이지 그 이상은 없습니다. 가장 깊은 슬픔을 느낀 사람은 최고의 행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는 것이 무엇인지 느꼈을 것입니다, 모렐, 우리는 삶의 즐거움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 레지옹 도뇌르 훈장(ordre national de la L?gion d’honneur)(1837) : 뒤마는 1837년 프랑스의 정치?경제?문화 등의 발전에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훈장 - 레지옹 도뇌르(ordre national de la L?gion d’honneur)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레지옹 도뇌르(ordre national de la L?gion d’honneur)는 나폴레옹 1세가 1802년 새롭게 제정한 것으로, 뒤마가 수상한 것은 가장 낮은 단계의 슈발리에(Chevalier) 등급입니다. 뒤마가 자신의 아버지의 활약을 썩 좋아할 수만은 없었던 나폴레옹 1세를 경멸하였는데, 그의 사후이기는 하지만 그가 제정한 훈장을 받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해지네요. 뒤마는 자신의 작품에서 줄곧 나폴레옹 1세를 부정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뒤마의 훈장 수상은 당연히 그의 대표작 삼총사(The Three Musketers)(1844)나 몽테 크리스토 백작(The Count of Monte Cristo)(1844) 덕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보다 훨씬 빠른 1837년입니다. 즉 당대 프랑스 문학계에서 뒤마는 소설이 아닌 극작가로써 이미 훈장을 받을 정도로 당대 최고의 인기와 권위를 인정받았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 클럽 데스 하시신스(Club des Hashischins)(1844~1849) : 뒤마는 그의 대표작 몽테 크리스토 백작(The Count of Monte Cristo)(1844)에서 하시시(hashish)를 열 번 이상 언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묘사 또한 해보지 않고서는 하기 어려울 정도로 디테일합니다. 뒤마는 실제로 파리의 호텔 H?tel de Lauzun 클럽 데스 하시신스(Club des Hashischins)에서 당대의 문호, 정치인 등과 함께 하시시(hashish)를 즐겼습니다.

▶ 프랑스 역사상 판테온(Panth?on)에 안장된 6번째 문인(2002) :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는 1870년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시신은 뇌빌르-레-디에쁘(Neuville-l?s-Dieppe)에 최초로 매장된 후 자신이 태어난 고향 빌러스-코테르테츠(Villers-Cotter?ts)으로 이장되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 탄생 200주년을 맞아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호로 인정받아 파리의 판테온(Panth?on)으로 이장되었습니다. 이는 프랑스 역사상 판테온(Panth?on)에 안장된 6번째 문인이란 대기록으로, 이장식은 방송을 통해 프랑스 전역에 방영되었습니다. 뒤마의 유언을 따른 빌러스-코테르테츠(Villers-Cotter?ts) 마을 주민들이 반대하였으나, 뭐……. 자크 르네 시라크(Jacques Ren? Chirac)(1932년 11월 29일 ~ 2019년 9월 26일) 프랑스 대통령은 거부하기엔 너무나 거물이지요.

▶ 프랑스2(France 2) 위대한 프랑스인(The Greatest Frenchman) 68위(2005) : 2005년 프랑스2(France 2)는 르 플러스 그랑 프랑수아 데투아레템스(Le Plus Grand Francais de toussemps, The Great French man of the Time)를 통해, 프랑스 국민들에게 위대한 프랑스인(The Greatest Frenchman)(2005)을 조사하였습니다. 1위는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대통령으로, 뒤마는 68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 " Live, then, and be happy, beloved children of my heart, and never forget, that until the day God will deign to reveal the future to man, all human wisdom is contained in these two words, 'Wait and Hope.” "그러면, 살아라, 그리고 내 마음에서 사랑받는 아이들이 되어라, 그리고 결코 잊지 말라, 신이 인간에게 미래를 밝히도록 설계할 그날까지, 모든 인간의 지혜는 이 두 단어, '기다려라'에 담겨 있습니다.”

목차소개

-목차(Index)-
프롤로그(Prologue).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 999선을 읽어야 하는 7가지 이유
▶ 10가지 키워드로 읽는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1802~1870)
01. 복수극의 완성자,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1802~1870)
02. 레지옹 도뇌르 훈장(ordre national de la L?gion d’honneur)(1837)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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