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명의 근위병(The Forty-Five Guardsmen by Alexandre Dumas)(1847)은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역사소설(historical novel)로 오귀스트 마쿠엣(Auguste Maquet)(1813~1888)과 합작한 공저로 프랑스 원제는 Les Quarante-cinq. 프랑스 종교 전쟁 - 위그노 전쟁(French Wars of Religion)(1562~1598)을 배경으로 하는 발로이스 가문 삼부작(House of Valois Trilogy)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으로 셀 수도 없는 전쟁과 전투, 모략과 암살이 난무하는 활극(活劇)입니다.
제목은 장 루이 드 노가레 드 라 발레트((Jean Louis de Nogaret de La Valette)(1554~1642), 일명 에페르농 공작(Duke of ?pernon)이 세 헨리의 전쟁(the War of the Three Henrys)(1587~1589)으로부터 앙리 3세(Henry III of France)(1551~1589)를 보호하기 위해 모집한 45명의 하급귀족 근위병을 의미합니다. 에페르농 공작은 친 가톨릭 파로써 앙리 3세를 지지하였고, 그가 암살된 후에도 앙리 4세의 암살을 도모하고, 위그노의 박해와 탄압에 가담하는 등 자신의 신념을 지켰습니다. 번외적으로 오드리 햅번(Audrey Hepburn)(1929~1993)의 먼 조상이기도 합니다.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과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문학여행을! B
▶ 45명의 근위병(The Forty-Five Guardsmen)(1847)은 실제 프랑스의 역사적인 사건과 실존 인물에 대한 묘사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 역사에 대한 교재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루이스 드 클레르 몽(Louis de Clermont)(1549~1579)을 배신한 앙리 드 조이우스(Henri de Joyeuse)(1563~1608),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St. Bartholomew's Day massacre)(1572), 앙리 4세의 꺄오흐 포위 공격(The siege of Cahors)(1580), 안트베르펜 공격(Siege of Antwerp)(1584~1585)과 앙주 공작 프랑수아(Francis, Duke of Anjou)(1555~1584)의 죽음, ‘과묵한 윌리엄’ 빌럼 1세(Willem Ⅰ, William of Orange)(1553~1584)의 암살…….
▶ 세 헨리의 전쟁(the War of the Three Henrys)(1587~1589) : 위그노 전쟁(French Wars of Religion)(1562~1598)의 일부인 세 명의 헨리 전쟁(the War of the Three Henrys)(1587~1589)은 가톨릭 동맹(Catholic League)과 스페인 필립 2세(Philip II of Spain)(1527~1598)의 지원을 받은 앙리 1세 드 기즈 공작(Henry I, Duke of Guise)(1550~1588), 왕당파가 지지한 앙리 3세(Henry III of France)(1551~1589), 프랑스 왕위 계승자(heir presumptive to the French throne)이자 위그노(Huguenots)의 지도자 앙리 4세(Henry IV of France)(1553~1610)가 각자의 상황과 이해관계에 따라 대립한 사건입니다. 결론적으로 앙리 4세가 최후까지 살아남았고 프랑스의 왕위(French kings)(1589~1610)에 올랐으나 그 또한 가톨릭교도에게 암살당하였습니다.
▶ 위그노 전쟁(French Wars of Religion)(1562~1598)을 배경으로 하는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발로이스 가문 삼부작(House of Valois Trilogy) :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 프랑스 왕녀(여왕 마고)(Marguerite de Valois by Alexandre Dumas)(1845), 광대 치코(Chicot the Jester by Alexandre Dumas)(1845), 45명의 근위병(The Forty-Five Guardsmen by Alexandre Dumas)(1847).
▶ CHAPTER LI. CHICOT'S ASTONISHMENT AT FINDING HIMSELF SO POPULAR IN NERAC. Chicot, having taken his resolution, began to prepare his little packet. "How much time will it take me," thought he, as he did so, "to carry to the king the news of what I have seen and fear? Two days to arrive at a city whence the governor can send couriers; Cahors, for example, of which Henri of Navarre thinks so much. Once there, I can rest, for after all a man must rest some time. Come, then, Chicot, speed and sang froid. You thought you had accomplished your mission, and you are but half-way through it.“
▷ 제51장. 네학(NERAC)에서 자신이 그렇게 인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치코(CHICOT)의 놀라움. 결심을 한 치코는 작은 소포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보고 두려워한 소식을 왕께 전하는 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총독이 전령을 보낼 수 있는 도시에 도착하는 데 이틀이 걸렸습니다. 꺄오흐(Cahors), 예를 들어, 나바르의 앙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단 거기에 가면 나는 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사람은 잠시 쉬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 치코, 속도를 내고 신나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임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했고 당신은 아직 절반에 불과합니다.“
▶ CHAPTER XC. HIS HIGHNESS MONSEIGNEUR LE DUC DE GUISE. On Sunday the 10th of June, toward eleven o'clock in the day, the whole court were assembled in the apartment leading to the cabinet in which, since his meeting with Diana de Meridor, the Duc d'Anjou was dying by slow but sure degrees. Neither the science of the physicians, nor his mother's despair, nor the prayers which the king had desired to be offered up, had been successful in averting the fatal termination. Miron, on the morning of this same 10th of June, assured the king that all chance of recovery was hopeless, and that Francois d'Anjou would not outlive the day. The king pretended to display extreme grief, and turning toward those who were present, said, "This will fill my enemies full of hope.“
▷ 제90장. 그의 르 뒤크 드 기즈 전하(His Highness Monseigneur Le Duc De Guise). 6월 10일 일요일 낮 11시경, 모든 궁정은 내각으로 이어지는 아파트에 모였습니다. 그곳에서 그가 메리도르의 다이아나(Diana de Meridor)를 만난 이후로 앙주(D'Anjou)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학위. 의사의 학문도, 어머니의 절망도, 왕이 바치려던 기도도 치명적인 해를 피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미론은 같은 6월 10일 아침에 왕에게 모든 회복 가능성이 가망이 없으며 프랑수아 당주는 그날보다 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왕을 안심시켰습니다. 왕은 극도의 슬픔을 나타내는 척하며 참석한 사람들을 향해 "이것이 내 적들을 희망으로 가득 채울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