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고전689 알렉상드르 뒤마의 여성 전쟁Ⅱ(English Classics689 The War of Women, Volume 2 by Alexandre Dumas)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 | 테마여행신문 TTN Theme Travel News Korea | 2022년 06월 30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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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 여성 전쟁(The War of Women by Alexandre Dumas)(1845)은 17세기 중반 프랑스 내전에 휘말린 카놀 남작(Baron des Canolles)이 등장하는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역사소설(historical novel)입니다. 카놀 남작(Baron des Canolles)은 눈앞에 닥친 내전에도 불구하고, 이면의 정치에는 큰 관심이 없는 순진한 개스콘 출신의 군인(Gascon soldier)입니다. 그러나 루이 14세(Louis XIV)(1638~1715)의 모후 안 도트리슈(Anne d'Autriche)(1601~1666)를 지지하는 나농 드 라티그(Nanon de Lartigues)와 이에 대항하는 콩데 공주(Claire Cl?mence de Maill?, Princess de Cond?)(1628~1694)의 지지자 캉브 후작부인(Victomtesse de Cambes)에 대한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제목 그대로 여성 전쟁(The War of Women)에 휘말리고야 마는데……. 과연 거대한 해일과 같은 여성 전쟁(The War of Women by Alexandre Dumas)(1845)에 빠져든 그의 행보는 어디를 향할 것인가?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과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문학여행을! B

▶ 귀족의 최후의 저항, 프론드의 난(the Fronde)(1648~1653) : 프랑스 부르봉 왕조에 대항해 귀족 세력이 일으킨 내란으로 1648년과 1649년 두 차례 발발하였습니다. 루이 14세(Louis XIV)(1638~1715)가 불과 5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모후 안 도트리슈(Anne d'Autriche)(1601~1666)가 섭정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로마가톨릭교회 추기경 쥘 마자랭(Jules Mazarin)(1602~1661)을 재상으로 임용하였으나, 이에 반발한 봉기세력에 의해 왕가가 파리 외곽으로 피난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부르봉 왕조 위기의 순간! 루이 2세 드 콩데 친왕(Louis II de Bourbon, prince de Cond?)(1621~1686)이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하는데 성공합니다만, 그가 마자랭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선’을 넘자,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모후와 마자랭이 역으로 그를 체포합니다. 이에 분노한 콩데 친왕은 반왕당파 귀족과 함께 다시 한 번 봉기하였으나, 이 또한 진압되면서 ‘프롱드의 난’은 완전히 평정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프랑스의 귀족세력이 실권을 잃고, 부르봉 절대왕정이 지배력을 확보한 중요한 분기점으로 프론드(Fronde)는 투석기, 새총이란 의미입니다. 왕가를 지킨 공로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으로 망명한 콩데 공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 INTRODUCTORY NOTE. In "Twenty Years After" Dumas dealt with the earlier stages of the War of the Fronde,?the arrest of the three counsellors of the Parliament of Paris, Charton, Blancmesnil, and Broussel, the "day of barricades," of which the Abb? de Gondy, coadjutor to the Archbishop of Paris, afterwards Cardinal de Retz, claims to have been the author, and the flight of the queen regent, with the cardinal and the young king, to Saint-Germain. In the present volumes he reverts to the same extraordinary conflict at a later period, after several turns of the political kaleidoscope had taken place, and nearly all the prominent personages in the kingdom had changed sides again and again.

▷ 소개(INTRODUCTORY NOTE). "20년 후"에서 뒤마는 프론드의 난 초기 단계, 즉 파리 의회의 세 참모인 샤르통(Charton), 블랑메닐(Blancmesnil), 브루셀(Broussel)의 체포를 다룬 "바리케이드의 날(day of barricades)"을 다루었습니다. 파리 대주교의 부보좌관이자 후에 드 레츠 추기경(Cardinal de Retz)이 된 드 공디(Abb? de Gondy)는 저자이며 추기경과 어린 왕과 함께 여왕 섭정이 생제르맹으로 도주했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책에서 그는 정치적인 만화경이 여러 번 바뀌고 왕국의 거의 모든 저명한 인물이 계속해서 편을 바꾼 후의 같은 이례적인 갈등으로 되돌아갑니다.

▶ THE VICOMTESSE DE CAMBES. I. Madame de Tourville knew her arch antagonist so well that she had persistently opposed his admission to the council, upon the ground that the war was a war of women, in which men were to be used only to do the fighting. But Madame la Princesse declared that as Lenet was saddled upon her by her husband, she could not exclude him from the deliberative chamber, where, after all, his presence would amount to nothing, as it was agreed beforehand that he might talk all he chose, but that they would not listen to him.

▷ 캄베의 자작(VICOMTESSE DE CAMBES). 제1장. 마담 드 투르빌(Madame de Tourville)은 자신의 적대자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은 여성의 전쟁이며 남성은 전투에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그의 의회 입회를 끈질기게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마담 라 프린세스는 르네가 남편에 의해 그녀에게 안장되어 있기 때문에 그를 심의실에서 배제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 THE ABBEY OF PEYSSAC. I. A word of explanation becomes necessary at this point, after which we will resume the thread of our narrative. Indeed, it is high time for us to return to Nanon de Lartigues, who, at the sight of poor ill-fated Richon expiring on the market-place at Libourne, uttered a shriek and fell in a swoon.

▷ 페이삭(PEYSAC) 수도원. 제1장. 이 시점에서 한 마디의 설명이 필요하게 되며, 그 후에 우리 서사의 스레드를 재개할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나농 드 라티그(Nanon de Lartigues)에게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그는 불운한 리숑(Richon)이 리본(Libourne)의 시장에서 만료되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습니다.

▶ EPILOGUE. I. THE ABBESS OF SAINTE-RADEGONDE DE PEYSSAC. A month had passed away since the events we have described. One Sunday evening, after vespers, the Abbess of Sainte-Radegonde de Peyssac came forth last from the church at the end of the convent garden, now and then turning her tear-reddened eyes toward a dark thicket of yews and fir-trees, with such an expression of longing and regret that one would have said that her heart was in that spot and seeking to detain her there.

▷ 에필로그. 제1장. 생트 라드공드 드 페이삭(SAINTE-RADEGONDE DE PEYSSAC) 수도원. 우리가 설명한 사건 이후 한 달이 지났습니다. 어느 일요일 저녁 예배 후에 생트 라데공드 드 페이삭(Sainte-Radegonde de Peyssac) 수녀님은 수녀원 정원 끝에 있는 교회에서 마지막으로 나오셨습니다. 그녀의 마음이 그 자리에 있다고 말하고 그녀를 거기에 가두려 했을 것 같은 그리움과 후회의 표현.

저자소개

▶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1802~1870)

▶ 복수극의 완성자,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1802~1870) : 두마스 다비 데 라 파일테리(Dumas Davy de la Pailyterie), 일명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는 프랑스군의 장군으로 활약하는 토마스 알렉산드르 뒤마스(Thomas-Alexandre Dumas Davy de la Pailleterie)와 여관집 딸 마리 루이제 엘리자베스 라부렛(Marie-Louise Elisabeth Labouret Dumas)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할머니는 출신이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계 케러비언 혼혈(Afro-Caribbean people)로, 뒤마 또한 흑인 쿼터(1/4)입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벨기에, 러시아,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활동하는 동안 곱슬머리와 어두운 피부 덕분에 평생을 인종 차별에 시달렸습니다.

▶ 그의 아버지는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현재의 아이티(Haiti)에서 태어났으나, 프랑스 군사학교에서 교육받은 후 31세의 나이로 장군으로 진급할 정도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였습니다. 이는 프랑스 군 최초의 아프리카-안틸레스 출신 군인(the first soldier of Afro-Antilles)이란 대기록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의 나이 불과 4세 때 사망하였고, 그의 가족은 빈곤함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1789~1799) 당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휘하의 장군으로 활약한 아버지 토마스 알렉산드르 뒤마스 장군(General Thomas-Alexandre Dumas)이란 후광 덕분에, 상류층과 어렵지 않게 교류할 수 있었고, 성인이 된 후 파리에서 극작가로 등단할 수 있게 됩니다.

▶ 뒤마는 처음으로 출간한 희곡 헨리 3세와 그의 궁정(Henry III and His Courts)(1829)부터 인기몰이에 성공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생계를 위한 필경사(筆耕士)를 때려치우고, 전업 작가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뒤마는 수많은 여인들(40여명)과 사랑을 나누고(그의 사생아는 ‘최소’ 4명으로 추정됩니다.), (훗날 음식과 관련한 책을 집필할 정도로) 진귀한 음식에 열광하였으며, 파리 근교에 자신의 작품명을 딴 성(몽테 크리스토 성)을 세우는 등 평생 스캔들과 사치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돈을 벌수록 더더욱 돈이 필요했고, 이 때문에 평생 근면성실(?!)한 집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가 평생 출간한 책, 연재, 희곡 등의 총 분량은 무려 10만 페이지에 달합니다만, 국내 번역본이 출간된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 알렉상드르 뒤마 페르(Alexandre Dumas p?re)의 페르(p?re)는 아버지(dad)란 뜻으로 그의 사생아 아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Alexandre Dumas fils)와 구분하기 위해 붙인 것입니다. 피스(fils) 또한 프랑스어로 아들(son)이란 뜻.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춘희(La dame aux cam?lias(1848)를 비롯한 희곡을 다수 집필한 극작가로 활동하였으며, 그의 원작 희곡을 바탕으로 주세페 베르디(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는 3막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1853)를 작곡하였습니다.

▶ “There is neither happiness nor misery in the world; there is only the comparison of one state with another, nothing more. He who has felt the deepest grief is best able to experience supreme happiness. We must have felt what it is to die, Morrel, that we may appreciate the enjoyments of life. "세상에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한 국가와 다른 국가를 비교할 뿐이지 그 이상은 없습니다. 가장 깊은 슬픔을 느낀 사람은 최고의 행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는 것이 무엇인지 느꼈을 것입니다, 모렐, 우리는 삶의 즐거움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 레지옹 도뇌르 훈장(ordre national de la L?gion d’honneur)(1837) : 뒤마는 1837년 프랑스의 정치?경제?문화 등의 발전에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훈장 - 레지옹 도뇌르(ordre national de la L?gion d’honneur)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레지옹 도뇌르(ordre national de la L?gion d’honneur)는 나폴레옹 1세가 1802년 새롭게 제정한 것으로, 뒤마가 수상한 것은 가장 낮은 단계의 슈발리에(Chevalier) 등급입니다. 뒤마가 자신의 아버지의 활약을 썩 좋아할 수만은 없었던 나폴레옹 1세를 경멸하였는데, 그의 사후이기는 하지만 그가 제정한 훈장을 받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해지네요. 뒤마는 자신의 작품에서 줄곧 나폴레옹 1세를 부정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뒤마의 훈장 수상은 당연히 그의 대표작 삼총사(The Three Musketers)(1844)나 몽테 크리스토 백작(The Count of Monte Cristo)(1844) 덕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보다 훨씬 빠른 1837년입니다. 즉 당대 프랑스 문학계에서 뒤마는 소설이 아닌 극작가로써 이미 훈장을 받을 정도로 당대 최고의 인기와 권위를 인정받았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 클럽 데스 하시신스(Club des Hashischins)(1844~1849) : 뒤마는 그의 대표작 몽테 크리스토 백작(The Count of Monte Cristo)(1844)에서 하시시(hashish)를 열 번 이상 언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묘사 또한 해보지 않고서는 하기 어려울 정도로 디테일합니다. 뒤마는 실제로 파리의 호텔 H?tel de Lauzun 클럽 데스 하시신스(Club des Hashischins)에서 당대의 문호, 정치인 등과 함께 하시시(hashish)를 즐겼습니다.

▶ 프랑스 역사상 판테온(Panth?on)에 안장된 6번째 문인(2002) :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는 1870년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시신은 뇌빌르-레-디에쁘(Neuville-l?s-Dieppe)에 최초로 매장된 후 자신이 태어난 고향 빌러스-코테르테츠(Villers-Cotter?ts)으로 이장되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 탄생 200주년을 맞아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호로 인정받아 파리의 판테온(Panth?on)으로 이장되었습니다. 이는 프랑스 역사상 판테온(Panth?on)에 안장된 6번째 문인이란 대기록으로, 이장식은 방송을 통해 프랑스 전역에 방영되었습니다. 뒤마의 유언을 따른 빌러스-코테르테츠(Villers-Cotter?ts) 마을 주민들이 반대하였으나, 뭐……. 자크 르네 시라크(Jacques Ren? Chirac)(1932년 11월 29일 ~ 2019년 9월 26일) 프랑스 대통령은 거부하기엔 너무나 거물이지요.

▶ 프랑스2(France 2) 위대한 프랑스인(The Greatest Frenchman) 68위(2005) : 2005년 프랑스2(France 2)는 르 플러스 그랑 프랑수아 데투아레템스(Le Plus Grand Francais de toussemps, The Great French man of the Time)를 통해, 프랑스 국민들에게 위대한 프랑스인(The Greatest Frenchman)(2005)을 조사하였습니다. 1위는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대통령으로, 뒤마는 68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 " Live, then, and be happy, beloved children of my heart, and never forget, that until the day God will deign to reveal the future to man, all human wisdom is contained in these two words, 'Wait and Hope.” "그러면, 살아라, 그리고 내 마음에서 사랑받는 아이들이 되어라, 그리고 결코 잊지 말라, 신이 인간에게 미래를 밝히도록 설계할 그날까지, 모든 인간의 지혜는 이 두 단어, '기다려라'에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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