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소개
노르웨이 비평문학상 수상, 노르웨이 논픽션 부문 최초 북유럽이사회문학상 노미네이트!
《뉴욕타임스》 《퍼블리셔스 위클리》 《가디언》 《인디펜던트》 《커커스 리뷰》가 극찬한
자전적 에세이 걸작! 김원영 변호사 강력 추천!
노르웨이 자전적 에세이의 새로운 지평을 연 얀 그루에의 문학 세계를 응축한 역작
“매력적이고 파격적이고 강력하다! 그의 천재성은 정교하게 설계된 언어에서 드러난다!” ― 뉴욕타임스
『우리의 사이와 차이』는 오슬로대학교 언어학 교수인 얀 그루에의 자전적 에세이로 여러 언론 매체에서 ‘최고의 논픽션’으로 선정할 만큼 수많은 찬사를 받은 화제의 책이다. 노르웨이 논픽션 부문으로는 최초로 북유럽이사회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되며, “노르웨이 자전적 에세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라는 평을 받았다. 2018 노르웨이 비평문학상 수상, 2021 《뉴욕타임스》《퍼블리셔스 위클리》 선정 최고의 논픽션, 노르웨이의 최대 독자를 보유한 매체 《다그블라데》가 추천한 문학계 최고 걸작, 《모르겐블라데》가 선정한 올해의 최우수 도서 등 이 책을 수식하는 찬사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저자 얀 그루에는 세 살 때 척수근육위축증이라는 난치성 유전질환을 진단받았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리미널 페이즈(Liminal Phase), 즉 “서로 다른 두 세계 사이의 지점으로, 통과의례 중 가장 상처받기 쉽고 취약한 부분”의 시기를 되돌아보며, 노르웨이에서 부모님과 여동생과 함께 보낸 유년 시절의 기억, 버클리·상트페테르부르크·암스테르담에서 다년간 진행했던 연구 활동들, 대학교수로서의 삶, 이다(Ida)의 연인이자 남편으로의 삶, 나아가 아버지로서의 현재의 삶에 이르기까지의 기억을 복기하며, 현재의 삶과 병치시키는 형태로 과거를 서술한다.
얀 그루에는 과거의 한 단편을 현재의 틈새에서 불러와 교차하는 방식으로, 기억과 글 속에서는 실재하지만 낯설어진 지 오래인, 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를 끌어낸다. 저자는 이러한 형태의 기록을 두고 ‘합리화’이자 ‘재구성’, ‘기억에서 비롯된 빛과 그림자의 놀이’라고 표현한다. 이 책에 해제를 붙인 김원영 변호사는 이 점에 주목해 다음과 같이 해설했다. “나와 얀의 아마도 중요한 차이를 말한다면, 과거를 마주하는 방식일 것이다. 나는 지금에 나를 고정하고 시점을 뒤로 돌려 내가 통과한 과거를 본다. 어떻게 장애인인 나는 지금까지 살아남아 이렇게 존재하는 걸까?”
반면 얀 그루에는 과거라는 속성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 언급하며, 현재의 순간이 우리를 에워싸는 이상 완벽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그는 “과거에 이미 이렇게 될 것이라 스스로 인지했다고 믿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표현하며, 그 자신만의 견고한 세계를 다지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정의했던 의학적, 유전적, 임상적 언어를 되짚는다. 신체적 한계로 인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연약한 삶을 살아야 했지만, ‘견고한 실체’가 되기 위해 저자는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저자의 표현대로 슬픔은 그에게서만큼은 “좋든 싫든 일어나지 않은 과거의 일들에 관한 것”이 되었다.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세상에 확실한 요구를 하고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써 나간 글은 철학, 영화,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고, 조앤 디디온에서부터 미셸 푸코, 어빙 고프먼, 로즈마리 갈런드-톰슨에 이르는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성찰을 본인만의 언어로 구축해 갔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이 책이 매력적이고 강력하며 파격적이기까지 한데 “그의 이러한 천재성은 정교하게 설계된 언어에서 드러난다”라고 평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저자는 고뇌하는 인간의 내면을 언어학자의 시각에서 독창적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우리의 사이와 차이』는 저자의 열한 번째 저작으로, ‘학문적이지만 시적이고, 예민하지만 인내심 있고, 창의적이지만 대단히 분석적’이라는 기존의 찬사를 응축한 듯 그의 문학적 정수를 독창적으로 보여 준다.
★ 2018 노르웨이 비평문학상 수상
★ 2019 노르웨이 논픽션 부문 최초 북유럽이사회문학상 노미네이트
★ 2021 퍼블리셔스 위클리 선정 최고의 논픽션
★ 2021 뉴욕타임스가 극찬한 자전적 에세이 걸작
◎ 출판사 서평
세상에서 나로 살아가는 일이란 무엇인가?
‘세상을 되찾기 위해’ 자신만의 ‘비밀의 역사’를 만들어 내는 고요한 묵상의 기록
“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부류에 속한 존재였다.
하나는 이상한 동물, 또 다른 하나는 낯선 하이브리드 생명체였다.“
얀 그루에는 세 살 때 선천성 근육 질환인 척수근육위축증 진단을 받았다. 이 병은 신체의 근육이 잘못된 방향으로 수축해 가는 진행성 질환으로, 저자는 매일 밤 발바닥 밑에 단단한 금속의 밑창을 고정시키고 정강이는 버팀목을 대고 가죽끈으로 둘둘 말아, 뒤틀리는 등과 다리를 고정한 채 잠들어야 했다. 임상 사례에 비춰 보면, 점점 근육이 소실되어서 스무 살이 되면 더는 두 발로 걸을 수 없고 서른 살이 되면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어릴 적 저자를 알고 지냈던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면, 열이면 열 아직도 살아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표하는 대신 잠깐의 피할 수 없는 침묵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좋아 보인다, 건강해 보인다”라는 말에 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고, 여전히 휠체어를 사용하고 가끔은 두 발로 걸을 때도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장애로 인해 남다른 시선을 받고 자랄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의료 기록 더미를 들추어 보며, 행복하고 근심 없이 배움에 열망했던 모습과 주변의 아이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경험했던 적대적 충동감, 불쾌감, 반감을 동시에 끄집어낸다. 인식의 형태, 임상적 시선을 지닌 눈빛이 항상 그의 주변에 존재하는 걸 느꼈고, ‘하나의 존재’로서가 아니라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하나의 신체’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늘 그를 따라다녔다. 부모님은 그런 그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 “너는 우리에게 언제나 ‘얀’일 뿐이란다.”
저자는 부모님이 물려준 의료 기록의 더미에서 차갑고 객관적인 언어로 표현된 과거의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고 재구성한다. “짙은 금발과 갈색 눈동자를 지닌 3세 소년. 소년은 신경근질환의 임상적 징후를 보이며, 이는 신체의 전 근육 부위에 영향을 미치는 근병증이라고 생각됨.” 그는 이렇게 하나의 임상적 사례로서 표현되고 보여졌다.
임상적 시선에 기댄 저자 자신의 몸에 관한 해석은 무수한 일상 속에서 흉터와 상처를 돌보는 이야기로 변주해 가고, 미셸 푸코와 로즈마리 갈런드-톰슨이 말하는 ‘시선의 대상’이 되는 존재에 대한 역설을 자신의 삶에 빗대어 보기도 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러야만 했던 경험이 쌓인 몸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시선과 권력은 오랜 역사를 공유한다. 로즈마리 갈런드-톰슨은 철학자 미셸 푸코의 뒤를 이어 기관적 시선, 임상적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의 대상이 된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관해 글을 썼다. (중략) 나의 유기체적 신체와 내가 움직이기 위해 사용하는 기계 사이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누군가가 나의 휠체어에 부딪치면 나의 맥박수는 자동적으로 빨라진다. 그것은 나의 본능적인 반응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자유로운 상상과 다듬어지지 않은 실험적 사고 속에서도 냉정한 현실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_63쪽
‘유기체적 신체와 기계 사이의 경계’
그리고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
『우리의 사이와 차이』의 원제목은 “나는 당신과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Jeg lever et liv som ligner deres)”이다. 얀 그루에는 문장 중간중간 “나의 삶은 당신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나의 삶은 다른 이들의 삶과 다르다”라고 역설하기도 한다. 이 두 문장은 표면적으로는 상반된 뜻을 나타내지만, 의미의 본질은 같다.
전자는 ‘꿰뚫어 보듯 날카로우면서도 무심하고 단조로운 이 시선’으로부터 온전한 평범함을 누릴 수 없는 저자의 항변에서 비롯된 문장이고, 후자는 이 세상에는 서로 완벽하게 동일한 질병이 존재하지 않듯, 각 개인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나는 나만의 삶을 살고 있다”는 신념의 목소리가 반영된 문장이다.
저자는 유년 시절 잔디밭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며, 언덕 위에서 놀고 있는 친구들에게 가고 싶었지만 다다를 수 없었던 그 공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나는 그들과 나 사이에 깊은 심연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략) 내가 다다를 수 없는 공간, 내가 접할 수 없는 경험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경계와 경계의 지표를 상징하는 로마 시대의 신 테르미누스와 지속적인 접촉을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 못한 채, 섹스와 음주, 도취 등에 관해 막연한 상상을 했으며, 그 무엇보다도 감추어진 것, 속박되지 않은 것, 비밀스러운 것, 통제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관해 꿈을 꾸었다.”
기억 속의 분위기는 수치심, 분노, 그늘로 점철되어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저자는 과거의 자신을 기억하고, 과거의 자신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고자 끊임없이 시도한다. 계단이 높게 느껴질 때마다, 문이 좁게 느껴질 때마다, 모퉁이가 필요 이상으로 날카롭다고 생각할 때마다, 작은 감정의 메아리가 부딪쳐 올 때 여전히 테르미누스와 함께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과거의 기억을 재구성하기 위해 기록해 나간다. 그리고 스스로가 어떤 ‘우리’에 속해 있는지 바라보기 위해. 언어의 한계와 신체의 한계를 넘어선 자유를 꿈꾸기 위해.
얀 그루에의 성찰은 곧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역사를 담아낸다
“정상에서 벗어나는 방식은 셀 수 없이 많다”
저자는 지금도 여전히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장소나 건물에 들어설 때, 수치심이 자신 안에서 고개를 들곤 한다고 고백한다. “정상에서 벗어나는 방식은 셀 수 없이 많다”라고 인지하고, ‘무리를 귀찮게 한다는 생각’에 수치심으로 얼굴이 상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생물학적 반응임을 알면서도 그렇다. 이에 저자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사회 구조, 그리고 자신의 신체적 장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개념어(테라 인코그니타, 헤테로토피아)를 가져와 그 한계를 끌어안는다.
“나의 어깨는 부서졌다. 이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재킷을 입는다”와 같은 문장은 저자가 지향하는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 미지의 세상)’를 반영한다. 저자는 타인(물리치료사)이 자신의 몸에 대해 아는 것보다 많이 알지 못하므로 오랫동안 진행해 온 물리치료를 포기하며 “적어도 내가 스스로 결정한 방식대로 살 수 있었다”라고 회고한다. 이는 매일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면서 탐험하는 ‘희망의 삶’인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현실 속에 존재하지만, 마치 현실 너머 다른 세계’를 의미하는 미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라는 개념을 가져와 이렇게 말한다. “삶은 달라질 수 있었다. 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다”라고. 저자는 늘 과거에 일어나지 않았던 일,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 때문에 괴로움에 시달려 왔지만, 김원영 변호사가 해제에서 언급했듯이 마침내 저자는 “다른 방식으로 분류되고 규정된 삶을 사는 더 열악한 존재들, 예를 들면 마크 오브라이언의 삶을 자신의 일부로 통합할 수” 있었다. 그것은 “과거에 내 몸에 새겨진 흔적을 발굴하고, 인정하며, 현재를 끌어안는” 방식이고 나아가 “애초에 나를 규정했던 범주를 ‘존재하지 않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어느 초저녁 별빛 아래서 이다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은, 유년 시절의 잔디밭에서의 수치심을 겪었던 경험과는 ‘겹을 달리하는 깊이’와 ‘확장성’이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했고, 나는 넘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매일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지”라고 부연한 부분에서는 끊임없이 세상의 조건과 신체의 한계를 조율해 가며 헤테로토피아를 탐험하고자 했던 저자의 열망과 따뜻함이 반영되어 있다. 이는 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한 편의 걸출한 문학작품으로 읽히는 연유이자, 단지 얀 그루에의 역사뿐만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역사가 될 수 있는 까닭이다.
“경험은 부정의 여지가 없다. 경험은 회고와 성찰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와는 전혀 다른 실체를 지닌 것으로, 조각난 단어를 연결시켜 주며, 깊이 뿌리를 내린 식물과도 같아서 뽑아 올리면 아픔을 느끼게 된다. 내 몸도 마찬가지다. (중략) 경험은 내 안에서 자리를 잡고, 퇴적물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투명하지 않다. 나는 견고한 실체다.”_225쪽
◎ 추천·해제(일부 발췌)
현재와 과거 사이, 나와 너의 차이
굴복과 극복이 아닌 다른 선택지
? 김원영
얀을 한때 규정했던 척수근육위축증이든 얀보다 1년 뒤에 나를 규정했던 골형성부전증(뼈가 쉽게 부러지는 유전성 질환)이든, 그 밖에 어떤 이름으로 우리를 규정하고 명명하는 범주이든 간에 각 범주의 ‘표본’은 두 가지 길을 간다. 범주적 한계 앞에 온전히 굴복하거나 한계를 극복한 예외 사례가 되거나. 굴복과 극복은 표면상 상반되어 보이지만 모두 임상적 시선에, 다수의 기대에, 권력의 통제 안에서 언제나 예정된 길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렇기에 우리 존재와 삶이 특정한 기준에 의해 분류된 ‘표본’에 그치지 않는 길은 굴복과 극복이 아닌 다른 선택지에 있을 텐데, 이 책의 독자라면 그 길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계 지어진 과거와 그 한계를 지나온 현재 사이를 가로지르며, 현재의 힘으로 과거를 다시 쓰기. 과거에 내 몸에 새겨진 흔적을 발굴하고, 인정하며, 현재를 끌어안기. 그렇게 애초에 나를 규정했던 범주를 ‘존재하지 않게’ 만들기. 실제로 얀은 척수성근육위축증이 아니었던 것 같다는 연락을 받지만 이미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특정 질환인지 아닌지 여부에 따라 과거?현재?미래를 규정당하는 존재가 아 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룰루 밀러가 쓴 유명한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주제와 제목을 빌려 올 수 있다. “척수성근육위축증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 이상 그 질병은, 그 질병이 특정하게 규정하는 삶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는 부당하게 정의된 자신의 몸을, 이를테면 자신의 발목을, 다른 방식으로 분류되고 규정된 삶을 사는 더 열악한 존재들, 예를 들면 마크 오브라이언의 삶을 자신의 일부로 통합할 수 있다.
나는 얀 그루에의 말을 따옴표 없이 직접인용을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의기양양해 지지는 않았다). 아래의 문장은 얀 그루에와 나 사이에 얼마나 큰 공통점이 있는지를 보여 준다. 동시에 우리가 서로에게 결코 표본이 될 수 없는 거대한 차이가 있음을 말해 준다.
내겐 수많은 흉터와 상처가 있다. 나의 발목은 이전과 같지 않다. 현재 나의 왼발 상태는 오른발보다 훨씬 좋다. 매년 돌아오는 겨울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 무거워진다. 경험은 내 안에서 자리를 잡고, 퇴적물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투명하지 않다. 나는 견고한 실체다.(225쪽)
◎ 추천의 글
“이 놀라운 작품은 놓칠 수 없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
“타인과 다른 신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서술한 우아한 명상이지만, 이 글은 나이 든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 기억, 학계에서의 삶, 그리고 사랑에 관한 기록이다.”
― 벌처(Vulture), 《뉴욕(New York Magazine)》
“인간의 본질에 대한 흡인력 있고 통찰력 있는 성찰!”
― 《커커스 리뷰(Kirkus Review)》
“노르웨이 비평문학상을 수상한 이 책은 조용하고도 멋진 회고록이다.”
―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
“매우 절제된 문장은 눈부시게 지적이며 자기성찰적이다. ‘세상에서 나로 살아가는 일’이란 무엇인지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한 문장도 덜어 낼 것 없이 모든 문장은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영리하고 감동적이며 독창적이다! 낡은 언어와 익숙한 생각들을 닦아 내고 ‘세상을 되찾기 위해’ 자신만의 ‘비밀의 역사’를 만들어 내는 고요한 묵상의 기록이다.”
― 니치 게러드(Nicci Gerrard), 《가디언(The Guardian)》
“조용히 빛나는 책! 책을 쥔 두 손이 천천히 따뜻해지는…… 예술적 경험!”
― 드와이트 가너(Dwight Garner),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매력적이고 파격적이고 강력하다! 그의 천재성은 정교하게 설계된 언어에서 드러난다!”
― 마이클 J. 폭스(Michael J. Fox),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그루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은 우연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루에는 이러한 삶의 모습을 지혜롭고도 아름답게 그려 내며 자전적인 삶의 기록을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문학계의 최고 걸작으로 추천한다!” ― 《다그블라데(Dagbladet)》
“이 책은 작가 개인의 삶을 다룰 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다루고 있다. 누군가가 내게 노르웨이 논픽션 중 가장 호감이 가는 책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주저 없이 이 책을 꼽을 것이다.” ― 《보르트 란드(V?rt Land)》
“얀 그루에는 논픽션이라는 장르에 문학적 요소를 가미해, 비장애인과는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신중하고도 현명하게 그려 냈다.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작가의 독창적인 관찰력과 수준 높은 사고를 엿볼 수 있다.” ― 《닥사비센(Dagsavisen)》
“논픽션은 주변의 친지와 가족을 공개하고 모욕을 주다시피 하는 문학의 동의어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의 새 책이 출간되었을 때 그 작품성에 관해 저마다 기대를 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모든 이의 기대를 훌쩍 넘어서는 작품성을 지니고 있다.” ― 《모르겐블라데(Morgenbladet)》, 올해의 최우수 도서 선정
“이 책은 신체의 한계라는 전제 조건과 자아 정체성을 고찰하는 작품으로서, 작가의 적확하고 유려하나 전혀 현학적이지 않은 언어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 《다그 오 티드(Dag og Tid)》
“유려한 언어, 깊은 지식, 광범위한 사고력. 이것은 그루에의 역사인 동시에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강렬하고 중요한 책!” ― 《로메리케스 블라드(Romerikes Blad)》
◎ 본문에서
추상적인 관념과 오래된 문헌은 우리가 그것을 몸으로 흡수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언어는 신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 속의 우리가 누구인지, 또 세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33~34쪽)
나는 옷을 입기 시작한다. 양말을 신을 때는 특수하게 제작한 양말 집게를 사용한다. 그것은 플라스틱과 끈으로 제작된 물건으로 알렉산데르가 생후 4개월째 되던 날부터 유독 관심을 많이 보인 것이기도 하다. 아이는 그것을 들고 행복하게 두 팔을 휘저으며 심지어는 입에 넣어 먹으려고도 했다. 나는 구두주걱을 이용해 신발을 신는다. 알렉산데르는 구두주걱도 좋아했다. 나는 한쪽 끝에 고리가 달린 집게 손을 이용해 지퍼를 올리고 알렉산데르를 떠올린다. 아이는 이 모든 물건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고 항상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싶어 했다. 이제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아이의 느낌, 아이와의 관계성이라는 의미가 더해졌기 때문이다.(52쪽)
이 세상에는 서로 완벽하게 동일한 질병이 존재하지 않는다. 진단은 운명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운명이라 믿는 것은 매우 쉽다. 그렇게 믿어 버리는 것이 세세하게 따져 가며 살펴보는 것보다 훨씬 쉽지 않은가. 그렇다면 분리되어서는 안 될 것들을 분리하고, 전혀 다른 것들과 혼동을 일으키기도 하는 이 시선, 꿰뚫어 보듯 날카로우면서도 무심하고 단조로운 이 시선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내게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응시하는 사람들처럼 온전한 평범함을 누릴 수 없다.(62쪽)
나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이다는 휠체어 옆에 서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이다를 나의 연인이 아니라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생각한 것이다. 나의 일상적 행위를 돕기 위해 고용된 사람. 그 순간부터 악몽은 내 것이 아니라 이다의 것이 되었다.
록펠러에 장애인활동지원사 자격으로 왔던 사람은 그 누구도 자신의 이름으로 소개되지 않았다. 그들은 적어도 한 번 이상 “이분은 저의 팔과 다리입니다”라는 말로 소개되었다. 그것은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유머러스하게 의도한 정치적 주장이다. ‘아닙니다!’ 이다는 이렇게 소리치고 싶어 했다. ‘당신은 이미 팔과 다리가 있습니다! 당신 옆에 서 있는 분은 사람입니다. 나 또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나의 애인입니다!’(73쪽)
휠체어 사용자가 된다는 것은 내가 아닌 타인이 되는 것을 강요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좁은 길을 지날 때나 묵직한 대문을 지날 때면 협상을 하거나 밀어붙여야 한다. 의도치 않게 나 자신이 방해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교장 선생님(이 학교나 저 학교나 할 것 없이)은 학교 건물에 자동문을 설치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고려할 사항이 아니라고 했다.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도록 다른 학생들이 문을 열어 주고 붙잡아 주면 된다고 했다. 타인에게 도움을 베푸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도 했던가? 도덕적 경험에 끊임없이 노출되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도덕적 교훈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104쪽)
임상적 시선은 거울 속과 매끈한 표면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내 몸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을 바라본다. 그것은 의료진들의 눈에 보이는 바로 그 부분이다. 야윈 두 다리, 뒤틀린 발을 제자리에 잡아 두는 기괴한 형태의 신발, 굽은 두 팔. 나는 그 또한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임상적 언어는 내가 살아 있는 한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나는 그것을 회의에서 쓸 수도 있고, 무릎을 꿇고 쓸 수도 있지만, 결코 지울 수는 없다. 나는 적응을 해야 한다. 그 언어의 본질과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내 삶의 역사를 지울 수는 없듯 그것을 내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다.(137쪽)
나는 내 몸에서, 상처 입고 뒤틀린 내 발목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이 몸을 벗어난다면 나는 존재할 수 없다. 흔적 없는 몸, 그것은 다른 삶을 살았던 몸일 것이다.
그런 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몸은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그림자를 내게 드리운다. 나는 겨울이 되면 눈을 감고 스키를 타는 상상을 한다. 매일 아침 조깅을 하는 상상도 해 본다. 출국 한 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 외국 여행을 하는 상상을 할 때도 있다. 슈트 케이스를 들고 대문 밖으로 뛰어나가 택시를 탄 후,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 게이트를 향해 발을 옮긴다. 사전에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기에 공항에서 택시를 잡고 운전기사에게 내가 가 본 적이 없는 새롭고 낯선 장소로 가 달라고 부탁한다. 눈을 뜬다.(156쪽)
세상 속에서 나와 같은 존재로 살다 보면 계획을 세우는 일이 어느새 일종의 반사작용 또는 자동화된 습관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하다못해 물 한 컵을 마시는 일일지 라도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 관해 세세히 살펴보거나 미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 어디로 갈 것인지, 문 앞에 계단이 있는지, 화장실은 어디에 있는지 미리 확인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사작용은 반복을 통해 나의 성격으로 자리를 잡게 됐고, 나는 매사에 주저하거나 망설이는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163쪽)
모든 것은 내게 달려 있었다. 항상 그랬다. 수동성 또한 사회적으로 눈에 보이는 태도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행동의 제약이 많지만, 그 때문에 수동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잠시 살았던 것은 이것을 깨닫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곳에서 미소 짓는 것을 배웠고, 내 목소리를 잘 사용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나는 내 삶을 직접 연출하는 것을 배웠다.(201쪽)
수하물 검색대를 통과한 후, 이다는 다시 나를 홀로 내 버려 두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내가 홀로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전동 휠체어에 앉아 있을 때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수동 휠체어에 앉아 있을 때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다를 큰 소리로 부르는 순간, 살짝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내 목소리를 들은 이다가 당황하고 난처해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커다란 비눗방울을 바늘로 터뜨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그 비눗방울 속에서는 다른 여느 연인들처럼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느 연인들과는 같을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일 뿐.(209쪽)
나는 수술실에 함께 들어갈 수 없었다. 내게 맞는 의료용 보호복은 있었으나 휠체어를 덮을 만한 보호 덮개는 없었기 때문이다. 수술실에 허락된 사람은 마리였다. 나와 이다의 첫아들을 가장 먼저 보고 안았던 사람도 마리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든 이다가 혼자 있지 않도록 마리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했던 것도 우리였다. 우리는 믿었고, 희망을 가졌고, 계획을 세웠다.(2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