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평>
60년대 우리 사회는 수천 년 전래해온 농경문화 사회에서 산업화, 도시화로 넘어오던 과도기였다. 이농 대열이 줄을 이었고, 목포발 서울행 야간 보통열차는 이농자 가족의 이삿짐 보퉁이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미래는 가능성을 예견하며 열려 있었고, 그들 가슴은 열정으로 부풀어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 박수형과 그를 둘러싼 "작은 어른" 일당의 성장기야말로 현대사의 축소판처럼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현실과 이상은 하나의 접점에서 모아지지 않듯, 그들은 불완전한 경험으로 60년대를 좌충우돌하지만, 그 시대는 미래로 전진하는 열린 공간이기도 했다. 2000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내가 달렸던" 60년대는 비록 반세기가 지났어도 오늘 다시 곱씹어야 할 학습 공간임을 이 성장소설은 일깨워준다.
- 김원일(소설가)
누구나 상처와 함께 자란다
이 천년 대의 십대들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이야기
미래를 생각할 때, 이루고 싶은 것보다는 편안히 살 수 있는 직업을 생각하고, 가족과 또래 집단으로부터 소외와 따돌림을 경험하는 현대의 청소년들, 그들에게 있어 지난 시대의 유년들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이 있을까. 막연히 촌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만이 과거의 특징이 아니다. 과거는 현재가 걸어온 길이다.
이 글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어른이 되면서 포기하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한 소년의 성장과 우리 사회의 지난 6~70년대를 통해 한 소년의 성장과 한 사회가 성장하는 모습을 함께 그려내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 10대는, 그리고 우리 사회에 있어 6~70년대는 외형적으로 무럭무럭 자라난 ‘청소년기’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힘과 열정의 시간은 마치 폭풍처럼 강렬하면서도 그것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그 시간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바로 이 점이 이 소설이 가진 장점이다. 성장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사람과 사회 모두의 성장과 그 이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지지 않는다, 화해하지 않는다, 나는 달린다
- 한 소년이 어른이 되어가는 방법
소년 박수형은 목포에서 살다가 아버지를 따라 전남 함평군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는 함평이라는 공간에서 그곳 사람들과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우선 제 또래의 친구들 속에서 알력 다툼을 시작하는데 ‘토박이’ 짱인 종수와 혼혈아 토미가 바로 그 상대들이다. 물리적인 다툼을 넘어 ‘부하’ 아이들을 관리하고 통솔하는 효과적인 방법 등 심리적인 싸움도 전개된다. 수형, 종수 그리고 토미는 유독 ‘대장’, ‘힘’에 집착한다. 이는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박정희 대통령이 통치하던 `60년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들이 보고 들은 것은 군인과 탱크 그리고 군부를 욕하지만 통치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아버지와 어머니들이다.
주인공 수형에게는 모두 네 명의 누나들이 있다. 그들은 결혼과 학업, 가족 내에서의 여자가 가지는 역할로 힘들어 하며 아버지와 다투고 어머니의 이해를 받는다. 이는 지난 시대 우리 어머니와 누이들이 겪어야 했던 사회적 갈등이다. 어머니가 그런 모습을 대표하는데 아버지의 좌천을 따라 함평으로 내려가고 그곳 생활에 불만과 불안을 몸소 느끼면서도 어떻게든 아버지를 보필하며 가정을 이끌어가기 위해 고투한다.
이에 비해 아버지는 가족들의 입장에서 무책임한 면이 있다. 함평으로 내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산고깃집’이라는 곳을 들락거리며 그곳 여주인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가족에게 내려야 하는 결정에 있어 다소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가부장으로서 가지는 큰 책임에 비해 그가 가진 실제적 능력이 모자람에서 연유한다. 이 또한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네 아버지의 전형일 것이다.
박수형의 또래 집단에 대한 알력 다툼은 끝내 누구의 승패나 화해도 아닌 ‘성장’으로서 그 끝을 맞이한다. 이것은 성장소설이 가지는 일반적인 주제이자 이 소설의 주제이기도 하다. ‘토박이’ 짱인 종수는 집 떠난 엄마가 돌아와 가족과 함께 함평을 떠나고, 토미 또한 한 사람의 어른으로 제 갈 길을 찾는다. 성장은 어떤 결론이 아닌 과정이다. 삶에는 성공과 실패가 있지만, 성장이라는 과정 없이는 이 둘 모두 있을 수 없다. 박수형과 종수, 토미는 타툼이 있은 후에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지만 이미 그들에게서 다툼이나 시기의 느낌은 읽을 수 없다. 열병처럼 그들을 스쳐간 기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