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펴내며
· 인트로intro
제1장. 19세기 말 영국, 조선을 만나다
그때 그 시절 영국은, 영국인은
동양을 향한 ‘그들’ 호기심의 출발 | 개항, 조선의 문이 열리다 | 서양인의 눈에 비친 조선과 조선인
조선은 호랑이의 나라
호랑이를 바라보는 너무 다른 시선 | 조선인에게 호랑이란? | 그 많던 호랑이는 모두 어디로 | 민족 정신의 상징에서 정복과 전시의 대상으로
영국인 컬렉션에 등장한 ‘코리아’ 도자기
1876년, 영국인의 수집품이 된 조선의 도자기, 하지만…… | ‘코리아’ 도자기로 둔갑한 싸구려 일본 도자기
고려청자를 향한 그들 취향의 내력
조선에서 샀으니 조선 것일 거라는 착각 | 무덤에서 꺼낸 고려청자가 영국인들에게 | 고려청자 수집 열풍의 시작점은?
제2장. 조선과 영국, 그리고 일본의 삼각 관계
박람회를 둘러싼 영국과 일본의 속사정
근대와 제국주의 과시의 현장, 박람회 | 서양의 일원이 되고 싶은 일본의 염원 | 일영박람회, 일본의 시의적절한 이벤트
일영박람회장에 등장한 ‘코리아’
조선을 식민지로 세계에 등장시키다 | 구경꾼이 되고 싶었으나 구경거리가 된 일본 | ‘한국에서의 일본의 업적’으로 채운 한국관
같은 시기, 조선에 등장한 이왕가 박물관
이왕가박물관 설립에 관한 일본의 속내 | 다시 바라보는 일영박람회 전시품의 숨은 뜻
서구 세계로 건너간 일본 상류층의 취향
서양인들에게 전해진 도쿄의 전시 도록 | 도록으로 만나는 1909년 ‘고려소’ 전시 이모저모 | 다도 문화의 부활과 고려청자 수집 열풍의 상관 관계
제3장. 직접 가자, 바다 건너 ‘코리아’로
영국인, 조선으로 여행을 떠나다
호기심의 세상, 영국 밖으로! | 철도의 개통, 코리아를 더욱 가깝게
조선에 온 영국인들의 쇼핑 목록
영수증 한 장으로 만나는 그때 그 시절 | 한국을 찾은 ‘그들’끼리 만들어낸 정보의 네트워크
경성의 딜러들
경성의 거리에서 쇼핑하는 서양인 | 서양인 컬렉터가 가장 먼저 찾는 곳, 카바노프 상점 | 서양 컬렉터들의 주요 공급원, 테일러 상회 | 신송, 서양인을 상대한 한국인 딜러 | 이들의 주요 거점이 정동인 까닭은?
국경을 넘나든 딜러들의 판촉 활동
출판물로 스스로를 홍보하다 | 해외 관광 안내 자료에 등장하기 시작한 ‘코리아’ | 관광 안내, 관광 엽서에 실린 이미지의 의미 | 딜러들이 만들어간 한국 컬렉션의 가치
조선 가구에 스며든 서양인 취향
서양인들 눈에 비친 한국의 전통가구 | 서양인들 사이에 인기 품목으로 떠오르다 | 가구 판매 극대화를 위한 딜러들의 전략 | 전통가구와 화양가구의 양립 | 서양인을 향한 맞춤형 수출 가구
제4장. 고려청자에서 조선백자로, 취향 변화의 속사정
조선 도자기, 취향과 시장의 변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급등하는 고려청자 값 | 새로운 대상, 조선백자의 부상 | 그러나 이미 시작되었던, 조선백자를 향한 관심
따로 또 같이, 국내외에서 사랑받은 조선백자
조선민족미술관, 그리고 야나기 무네요시 | 서로 다른 이유로 사랑한 조선백자 | 조선 취향의 등장, 조선시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 조선백자, 예술가들의 세계로 들어가다
영국인의 조선백자 컬렉션
일찌감치 시작한 조선백자 수집 | 영국박물관 한국 컬렉션의 시작 | 한국, 일본과는 조금 달랐던 영국의 컬렉터들 | 버나드 리치, 스튜디오 포터리, 조선백자를 사랑받게 한 유용한 촉매자
제5장. 백 년 전 바다를 건넌 달항아리 한 점
반닫이에 실려 영국에 도착한 장아찌 항아리
버나드 리치, 조선을 만나다 | 고려청자에서 조선백자로
장아찌 항아리, 달항아리로
영국에 도착한 그후, 루시 리에게로 | 루시 리의 스튜디오에 머문 달항아리 | 한 장의 사진, 달항아리를 세계의 관심 속으로 | 루시 리, 그녀가 떠난 뒤 달항아리는 | 그리고 마침내, 21세기 한국 미술의 아이콘이 되다
· 책을 마치며
부록 주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서로 다른 문화의 만남, 문화란 모름지기 서로 흐르는 것,
영국에서 근대 조선으로, ‘그쪽’에서 ‘이쪽’으로 건너온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이쪽’에서 ‘그쪽’으로 건너간 흔적을 통해
새롭게 다시 보는 영국과 근대 조선의 만남의 순간들
그리고 조선의 호랑이……
백여 년 전, 일제강점기로 요약되는 그 시대 근대 조선은 서양 여러 나라와 무수히 많은 접점이 만들어졌다. 이들과 우리의 최초의 만남은 어디에서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앞다퉈 이루어진 서양 여러 나라와의 통상조약 무렵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여러 나라와 연이어 이어진 통상 조약으로 인해 흥선 대원군의 쇄국 정책으로 인해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고 바닷길을 통해 서양의 온갖 문물들이 근대 조선의 세상으로 건너왔다. ‘그쪽’에서 ‘이쪽’으로 전해지는 다양한 문물들은 우리의 일상과 사고를 변화시켜 이전에 없던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했다.
시기적 특성이 그러한 만큼 그동안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근대 조선에 유입된 서양 문물에 관한 것, 즉 ‘그쪽’ 세계에서 ‘이쪽’ 세계로 건너온 것들을 둘러싼 이야기였다. 그리고 주로 ‘그쪽’은 주로 미국이 대상이었다. 그런데, 과연 그쪽에서 이쪽으로만, 미국에서만 흘러온 것이 다일까. 서로 다른 문화권이 만날 때는 힘이 있는 쪽에서 없는 쪽으로 흘러오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까닭에 그 방향으로 시선이 쏠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양과 영향력의 범위의 우위를 따지지만 않는다면 상호작동하는 지점이 반드시 존재하게 마련이다. 서양의 세상과 조선의 접점에도 이런 일반적인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되었고, 미국만이 아닌 영국과의 관계에서도 그러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가 눈여겨보았던 일방의 방향이 아닌, 이쪽에서 저쪽으로 향하는 서양과 조선의 접점, 나아가 영국과 조선의 접점은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으로 시작이 되었을까.
이 책은 바로 그런 점에 주목하여 오늘날 영국에 남아 있는 여러 경로의 자료, 즉 매우 다양하고 포괄적이면서 동시에 매우 구체적인 조선에 관한 흔적과 자취를 통해 당시 영국인들이 조선을 만나게 된 경위, 이들의 눈에 비친 조선의 풍경, 나아가 이들에 형성된 조선에 관한 이미지까지를 아우르고 있다. 나아가 시대적 배경의 이해를 위해 시누아즈리, 자포니즘, 황화론 등 서양으로 전해진 동양 문화의 흔적과 의미, 그리고 영국인들의 일상 속에 드러난 현상까지를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그런 이해를 전제로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그쪽에서 이쪽으로 건너온 문화적 흐름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그 시대를 바라보도록 안내하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이 가진 각별함의 하나로 꼽을 만하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조선의 호랑이를 둘러싼 제국주의자들의 태도다. 전통적으로 친근한 이미지, 또는 수호신의 이미지로 여겨졌던 조선의 호랑이는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수탈과 침략, 정복의 상징으로 대상화되었는데, 저자는 이를 동물원과 영국 황제의 호랑이 사냥, 나아가 일제에 의해 집행된 해수구제정책, 호랑이 가죽 수출 현황을 통해 있는 그대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써내려간 역사적 사실이 당시 조선의 현실과 맞물려 읽는 이로 하여금 당대의 시대적 정서를 고스란히 공유하게 만드는 것 또한 이 책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이다.
이른바 ‘K-컬처’라는 이름으로, 전방위로 주목 받는 한국의 문화,
그러나 백 년 전, 영국에서 바라본 조선의 모습은?
그들 사이에 만들어진 조선의 이미지,
생각보다 일찍 시작된 조선을 향한 그들의 관심에 대한 탐구의 총합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사이, 이름하여 ‘K-컬처’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문화 예술이 전방위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흐름은 한국 안에 있는 우리보다 나라 밖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더 강렬한 경험을 갖게 한다. 우리보다 선진국이라고 여겨지던 서양의 대중들이 한국의 다양한 문화 예술을 향유하고 일상의 즐거움으로 선뜻 받아들이는 모습은 미디어를 통해 보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과연 실제인가 싶을 만큼 비현실적인 풍경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풍경은 우리에게 익숙해진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며,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그들이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여긴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 서양의 많은 여행가나 학자들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책을 집필했으며, 관광 홍보용 자료에도 이미 조선은 가볼 만한 여행지로 자주 등장하고 있었다. 또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영국인 수집가들은 직접 한국을 찾아 골동상을 다니며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와 가구 등을 비롯한 다양한 유물들을 사들였으며, 나아가 영국의 주요 박물관에서는 조선에 거주하는 자국인들을 통하거나, 직접 큐레이터들이 한국을 찾아 여러 점의 유물을 구입해 박물관에 소장하거나 수집가들로부터 기증을 받기도 했다.
물론 한국에 관한 당대의 문헌과 자료들이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며, 이 가운데는 한국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비롯한 엉뚱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나아가 다분히 일본 편향적인 정보는 물론 일본을 통해 제공된 정보만을 바탕으로 서술된 것들도 상당수다. 이 책은 이러한 당대의 오류와 인식의 미흡함, 정치적 편향성 등의 현황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보여줌으로써 동양의 한 나라를 바라보는 서양 지식인들의 시선을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게 한다.
저자는 또한 영국인 수집가와 박물관 큐레이터들이 조선에서 구입한 물품의 영수증부터 쇼핑 목록, 경매 도록까지 그들이 남겨둔 수많은 자료를 통해 영국으로 건너간 조선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책에 담아냈고, 영국과 한국 나아가 일본의 여러 수집가와 골동상들의 활동 반경까지 샅샅이 살펴 한국의 유물이 어떤 맥락으로 그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는가의 경위를 소상히 밝혀냈다. 여기에 더해 경성에서 서양인 수집가들을 상대하던 서양인 골동상들의 다양한 활동상, 한국인 골동상과 일본인 골동상 등의 활약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지난 10여 년 동안 저자가 달항아리 한 점으로 시작한 물음표를 좇아 오랜 시간 영국 아카이브의 목록으로 존재하던 수많은 자료들을 섭렵하여 일군, 그야말로 탐구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백 년 전 영국, 조선, 그리고 삼각 관계를 이룬 또 하나의 꼭지점 일본……
시공간을 초월하여 넘나든 그때 그 시절,
자유자재로 활용한 거시와 미시의 줌인 줌 아웃
당시 조선을 향한 새로운 시선의 획득!
백 년 전 영국과 조선의 만남의 현장과 자취를 찾는 일은 곧 이제 막 서양을 향해 문을 열기 시작한 근대 조선의 시공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 영국은 물론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은 힙하고 세련된 문화 예술의 전진 기지로 여겨지지기도 하지만, 그때는 낯설고 이질적인 먼 나라의 세상이었다. 게다가 영국과 조선의 만남에는 또다른 꼭지점, 일본이 마치 삼각 관계의 한 축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아시아를 벗어나 서양의 세력과 동등한 존재로 스스로를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하던 일본은 서양의 여러 나라와의 관계 구축에 매우 공을 들였다. 그러나 이 무렵 부각되던 황화론의 영향으로 유럽과 러시아 여러 나라에서는 일본을 향한 경계가 점차 고조되고 있었다. 유럽의 다른 나라와는 조금 다른 미묘한 입장을 취하고 있던 영국은 일본이 서방 세계와 가까워지는 데 교두보로 삼을 만한 나라였다. 때마침 개최하게 된 1910년 일영박람회는 일본이 영국을 발판 삼아 세계에 스스로를 알릴 절호의 기회였다. 그리고 그 무렵 근대 조선은 전달자 일본을 통해 영국 대중과의 본격적인 접점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 펼쳐지는 조선을 향한 영국의 관심은 어쩔 수 없이 시대적, 국제적 관계 지형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이를 전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양국의 만남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음은 자명했다.
이 책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날줄로 두고, 구체적인 양국 간의 만남의 현장을 씨줄로 삼아 영국과 조선, 나아가 서양과 동양의 접점의 풍경을 종합적이면서 동시에 세부적으로 조망한다.
이런 과정에서 일본인들의 고려청자 애호의 근원, 야나기 무네요시로 상징되는 조선 예술을 바라보는 또다른 일본인들의 인식 배경, 일본으로부터 영국으로 건너가는 조선 예술을 둘러싼 오해와 억측의 양상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 또한 이 책의 특징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1851년 개최한 세계 최초의 박람회인 영국 수정궁 박람회장으로 우리를 안내하기도 하고, 일영박람회장에서 조선이 서양인들의 눈앞에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는지를 세세하게 살피기도 하며 서양 제국주의자들과 나란히 구경꾼이 되고 싶었으나 스스로도 구경거리가 되었던 일본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 조선에서 문을 연 이왕가박물관과 미술관, 조선총독부박물관, 야나기 무네요시의 활약으로 문을 연 조선민족미술관, 일본민예관의 성격과 의미까지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봄으로써 단순히 한국과 일본 양국의 범주 안에서 바라보던 당대 조선의 문화사를 전 세계적인 맥락 속에 자리하게 한다. 이로써 독자들은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만 바라보던 당대 조선의 모습을 조금 더 확장된 세계 속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일본이라는 필터를 통해 전달된 조선의 이미지가 서양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에 관한 새로운 시선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싸구려 왜사기가 조선 도자기로 둔갑한 사연,
구경꾼이 되고 싶었으나 구경거리가 되었던 일본,
도쿄에서 열린 조선 도자기 전시 도록이 영국으로 건너간 의미,
고려청자값의 폭등과 조선백자 애호의 상관 관계……
물건이면 물건, 사람이면 사람, 장소면 장소, 공간이면 공간,
국경과 대상을 종횡무진 누비며 일궈낸 그때 그 시절!
이 책이 들여다보는 것은 더 있다. 제국주의자들의 권력 게임의 또다른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일본을 바라보는 유럽인들의 시선, 그런 시선 속에 등장한 황화론, 철도와 증기선의 보급으로 일어난 세계 여행의 붐, 이를 매개로 한국을 찾은 영국인들의 다종다양한 여행 동기 등 다루는 이야기는 넓고도 깊고, 다양하고도 흥미롭다.
아울러 그렇게 직접 조선 땅을 밟은 서양인들은 누구인지, 이들이 어떤 물건을 어디에서 얼마에 구입하여 자국으로 어떻게 가지고 갔는지를 샅샅이 훑어냄으로써 시대적 맥락을 읽는 큰 흐름 속에 구체적인 정보를 아울러 독자로 하여금 전 세계를 조망함과 동시에 마치 그들과 함께 경성 정동의 거리를 걸으며 골동상을 다니고, 물건들을 직접 보는 것 같은 생생함을 전하기도 한다.
이러한 생생함과 아울러 그 당시 일본의 싸구려 왜사기가 한국의 유물로 둔갑했다는 것, 중국의 영향을 받은 초기 청자들이 고려청자로 오인되어 영국의 골동상과 큐레이터들의 혼란을 야기했다는 것, 이러한 오해와 혼란으로 한국 도자기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형성되기도 했다는 것, 일본인 골동상들을 통해 입수한 한국 도자기의 품질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이들이 한국에 직접 방문하여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점차 제대로 된 평가를 받게 되었다는 것, 고려청자 못지 않게 영국에서는 조선백자에 대해서도 일찌감치 관심을 가져왔다는 것 등 구석구석 감춰진 수많은 이야기들이 독자로 하여금 시대적 흐름에 깊이 몰입할 수 있게 한다.
달항아리의 마지막 행보로 마무리한 한 권의 책,
영국에서 영국과 한국의 만남의 순간에 주목한 연구자의 탁월한 성취,
영국 주요 박물관의 아카이브를 샅샅이 뒤져 찾아낸 탐구의 집성,
이 책의 마지막은 이 책의 시작점에 서 있는 달항아리의 영국에서의 족적에 관한 리포트로 꾸려졌다. 저자는 이를 위해 버나드 리치 이후 오랜 시간 달항아리를 간직해온 세계적인 도예가 루시 리와의 인연을 살피고, 영국박물관 한국관에 입성하기 전까지 달항아리를 사랑하고 아낀 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영국 도예가들 사이에 달항아리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또한 이런 과정을 통해 백 년 전 한국의 유물이 여러 겹의 인연이 겹쳐져 그들의 세계에서 새로운 문화적 영감의 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도 확인한다.
한국에서 건축을 전공했으나, 영국으로 건너가 골드스미스 런던 대학교에서 현대미술사를 공부하고 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디자인사를 공부한 저자는 오래전 달항아리와의 짧은 인연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고, 그것을 매개로 10여 년에 걸쳐 영국에서의 조선의 흔적을 찾아냈다. 이를 위해 영국의 주요 박물관에 이미 백 여 년 전부터 소장되어온 다양한 유물에 관한 수많은 문헌 자료를 살피고, 그것을 수집하고 박물관에 기증해온 이들의 기록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침내 한 권의 책을 한국 독자들 앞에 내놓았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그간 이 시기를 둘러싼 연구가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에만 주목하여 진행된 것과는 달리 당시 한국과 일본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유물 수집에 나선 영국 본진의 기록을 본격적으로 살핀 결과물이라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은 물론, 영국박물관의 큐레이터들이 어떤 의도와 경로로 조선의 유물을 접하고 이를 박물관에 소장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관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숱한 이야기를 건네준다는 것 또한 이 책의 성과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