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왜 다시 일베인가
1장 일베의 계보: 사이버공간의 간략한 문화사
1. 사이버 유머의 기원
2. 사이버 여론은 진보적이었나
3. 디시와 일베의 연결고리
2장 혐오의 수치화: 2011~2020 일베 데이터 분석
1. 일베는 망했다?
2. 일베를 채운 혐오의 말들
3장 일베적 혐오: 내부의 타자들
1. 일베가 타자를 호명하는 방법
2. 혐오의 정당화
3. 일베의 열광과 의례
4장 일베를 만나다: 각자도생의 ‘평범’을 꿈꾸는 이들
1. 불안과 공포
2. 응어리진 분노
3. 수치, 순응, 그리고 평범 내러티브
5장 여성혐오와 능력주의: 일베만의 문제는 없다
1. 장대호라는 일베의 이념형
2. 루리웹은 일베의 피안인가?
6장 결론: 차가운 열광의 확산과 일베적 정치의 탄생
1. 파기된 약속
2. 일베의 주류화
나가며| 혐오의 시대에 맞서기 위해
감사의 말
주
접어보기
“이 책을 ‘안전’하게 타자화된 일베라는 ‘작은’ 서클에 대한 이야기로 읽지 않길 바란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문제화된 집단’을 문제화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전개되고 있는 정치와 그에 따른 사회적 삶의 변형이기 때문이다.“
- 엄기호, 문화연구자(추천의 말에서)
논문 이후 8년,
그사이 일베의 영향력이 사라졌다면
이 책은 출간되지 않았을 것이다
2014년, 온라인에서는 한 논문이 화제였다. 사회학 석사학위 졸업논문으로 김학준이 쓴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이었다. 논문은 일베 게시물 전수를 분석한 양적 방법과 일베 이용자 10명을 심층 인터뷰하는 질적 방법을 아우르며 사회학적으로 일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제시했다. 일베를 악마 또는 괴물로 낙인찍으며 타자화하지도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일베’라며 보편화하지도 않는 균형을 유지하며, “가장 성공적으로 체제가 작동했을 때 산출되는 주체”가 바로 일베라는 서늘한 결론을 도출해낸 그 논문은 사회학 관점에서 일베와 같은 ‘문제적’ 온라인 커뮤니티를 연구하거나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참고가 되고 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나는 사이, 데이터 분석계에서 커리어를 쌓아가던 저자는 빅데이터 분석 기술의 발전을 지켜보고 정치적ㆍ사회적으로 급변하는 한국 사회를 관찰하며 일베를 다루었던 논문의 확장을 결심한다. “사이버공간 전반에 걸친 페미니즘의 부상과 백래시의 과정에서 이른바 ‘20대 남자’들이라는 새로운(혹은 오래된) 주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역차별’ 담론을 체화한 젊은 남성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는 와중에 2014년 연구 때부터 예상하기도 했던 다양한 모습들이 실제로 나타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승자 독식의 권력 수호와 혐오 또는 차별의 ‘자유’를 주장하며 그 근거로 ‘공정’과 ‘정의’를 끌어오는 이들의 논리는 2014년 연구를 통해 분석했던 일베의 논리와 매우 유사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커뮤니티 자체로서의 일베에게서 더 이상 과거의 ‘위광’을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문제는 일베가 ‘흥하고’ 아니고가 아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디시에서 발원하여 일베가 완성한 혐오의 내용과 표현 방식, 즉 농담의 탈을 쓴 혐오”가 널리 퍼졌으며 그것이 “‘정의’나 ‘능력’ 따위의 말과 버무려져 일베와 일베 아님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섞여버렸”다는 데 있다. 《보통 일베들의 시대》는 ‘고인드립’과 ‘폭식 집회’ 등으로 일베가 사회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시기에 일베를 연구했던 사회학 연구자가 오늘날 온라인에서 ‘혐오의 자유’를 말하는 이들의 기원으로서 다시 일베를 이야기하는 치밀한 보고서다.
일베에서 나타난 지독한 혐오의 놀이는
과연 ‘그들만의 것’인가?
도대체 일베는 무엇일까? 일베라는 현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현상인가? 저자는 이에 답하기 위해 가장 먼저 사이버 유머의 기원과 함께 딴지일보와 디시인사이드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베의 계보를 훑는다. 일베가 어디서 갑자기 뚝 떨어진 ‘괴물’이 아님을 이해할 때, 다시 말해 일베에서 벌어진 지독한 혐오의 놀이가 ‘그들만의 것’이 아님을 이해할 때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일베 또한 파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쓰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자 사이버공간에서 일종의 자본으로 기능하는 ‘웃음’을 논하고, 한국형 밈의 기원으로서 딴지일보식 패러디를 설명하며, 그것을 심화ㆍ발전시킨 곳으로 디시인사이드를 서술한다. 일베가 탄생한 직접적인 원인이 디시의 게시물 삭제 조치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199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사이 딴지-디시-일베로 이어지는 사이버공간의 간략한 문화사는 일베가 어떻게 사이버문화의 ‘전통’을 나름으로 ‘발전’시킨 커뮤니티인지를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혐오의 수치화: 2011~2020 일베 데이터 전수를 분석하다
일베의 계보를 훑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일베가 어떤 곳인지를 살펴볼 차례다. 일베는 누가 언제 접속하며, 이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에 열광하는가? 열광은 언제 가장 폭발적인가? 이를 알아보기 위해 저자는 일베에 첫 게시물이 올라온 2011년 5월 28일부터 2020년 12월 31일까지 총 81만 1,327건의 게시물 전수를 수집해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진행된 데이터 분석에 대한 논의는 데이터 전처리와 같은 기초적인 설명에서 시작해 시계열 분석과 텍스트 분석으로 나아가며 혐오를 수치화한다. 시계열 분석을 통해서는 월간 일베 게시물 생성량은 얼마나 되는지, 일베가 급격한 성장을 이룬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일일 게시물수가 폭발적으로 많았던 날들의 이유는 무엇인지, 일베의 게시물 생성량 패턴은 어떠한지 등을 보여줌으로써 일베의 겉모습을 선명하게 그려낸다.
텍스트 분석은 그 속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일베를 채운 혐오표현들은 전체 게시물에서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는가? 혐오의 대상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은 혐오표현이 게시되는가? 이에 대한 다른 이용자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어떤 혐오에 가장 열띠게 반응하는가? 9년간 일베를 채운 ‘말’들을 분석함으로써 저자는 일베의 ‘적’이 누구인지 또한 명료하게 식별해낸다.
내부의 타자를 향하는 일베적 혐오
그렇게 도출해낸 일베의 ‘적’은 호남과 여성, 그리고 진보좌파였다. 저자는 이러한 분석 결과를 근거로, “일베적 혐오는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존재로서 내부의 타자들을 향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일베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극우주의의 선상에 두는 것을 경계하며, 실제 일베에서 어떤 논의가 이루어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일베적 혐오가 어떻게 발화되고 정당화되며 일베 특유의 열광적 상태를 만들어내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실제 일베 게시물 14건을 사례로 서술되었다. 악셀 호네트가 논한 인정과 무시의 개념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게시물 분석은 일베가 타자를 호명하고 혐오를 정당화하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며 그것이 어떻게 일베 특유의 열광과 의례로 이어지는지를 풀어간다. 그중에서도 특히 일베 이용자들이 자신들의 혐오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개입되는 분노를 논하는 사례 6~10은 일베에서의 혐오가 어떻게 ‘놀이’를 넘어 격렬한 비난으로 나아가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신상 털기’ 등 실질적인 사이버 폭력으로도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데, 이는 사이버공간의 혐오문화가 예비하고 있는 사회적인 위협을 다시금 환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각자도생의 ‘평범’을 꿈꾸는 이들, 일베를 만나다
일베의 ‘적’을 식별하고, 그 ‘적’에 대한 혐오의 논리를 도출해낸 저자는 이제 실제 그러한 혐오표현을 구사하는 이들을 직접 만나러 나선다. 저자가 만난 10명의 일베 이용자는 다양한 배경을 지닌 2030 남성들이었다. 저자는 일베 이용자들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며 감정사회학적 이론에 기반한 해석을 제시한다.
저자가 만난 일베 이용자들은 크게 두 가지의 불안을 토로했다. 하나는 “그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위기에 따른 불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러한 경제적 위기와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는 친밀성의 영역이 붕괴되었다고 느끼는 데서 기인한 불안”이다. 하지만 이들의 불안은 저항 행위를 유발하는 분노로 외사화되지 못하고 내사화됨으로써 순응이라는 행위 전략의 선택으로 이어졌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불안에 기인한 공포,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들이 사회적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안으로 침잠함으로써 “적극적인 순응과 노력의 이름으로 자기계발(혹은 자기최면)에 몰두”하게 되는 상황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노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데, 그렇게 퇴출된 공적 분노가 모인 곳이 바로 일베이며, 적극적 순응을 택한 이들의 분노는 혐오로 일그러져 내부의 타자들을 향한다. 끊임없이 사회에 ‘혼란’을 조장하는 좌파/종북에 대한 혐오, 국가의 ‘정당한 법 집행’에 잠자코 ‘순응’하지 않고 감히 ‘폭동’을 일으킨 호남에 대한 혐오, ‘무식’하고 ‘허영’에만 찌들어서 친밀성의 약속을 거침없이 ‘배반’하는 여성에 대한 혐오는 그렇게 완성된다.
그렇다면 순응은 무엇으로 가능해지는가? 저자는 이들의 분노가 내사화되는 과정에서 ‘평범 내러티브’가 작동한다고 분석한다. 일베 이용자들은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평범함’의 범주로 수렴시키면서 삶의 특수성을 최대한 억압해 ‘준비된 사회인’이라는 목표로 재구성한다. 자신이 겪은 끔찍한 과거의 경험을 ‘이겨낸’ 경험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모든 고통을 평범함의 영역으로 재구조화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평범 내러티브가 자신의 고통만 억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나의 고통이 평범한데, 타인의 고통이라고 다르겠는가. 이제 고통은 ‘누구나’ 겪는 것이며 “따라서 특별히 말할 이유도, 들어야 할 이유도 없다. 평범 내러티브에서의 고통은 그게 무엇이든 그저 내면으로 침잠하여 스스로 삭이면 그만인 개인적 경험이 된다. …… 고통을 들어달라고 ‘징징’대는 것은 스스로가 약자임을 자임하는 꼴에 불과하며, 이는 곧 자기경영에 실패한 개인에게 책임이 있는 문제가 된다.”(258쪽)
여성혐오와 능력주의라는 공통분모
일베만의 문제는 없다
이 같은 각자도생의 윤리는 평범 내러티브와 함께 또 다른 정당화 기제인 능력주의를 만나 패자를 멸시하고 승자를 물신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베의 열광적인 혐오를 설명해주는 기제는 다름 아닌 “승자로서 패자를 멸시하는 감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것이 “어떤 말이나 행위를 ‘일베적’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직감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준다고 하면서도, 불현듯 이렇게 묻는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일베만의 고유한 멘털리티인가?
저자는 일베와 일베 아닌 것의 전형성이 어디서 분화하고 결합하는지를 알 수 있다면 혐오와 혐오 선동을 파훼하는 실마리 또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두 가지 이념형을 분석하고자 한다. 일베의 이념형으로는 2019년 한강 몸통시신 사건의 범인 장대호를, 일베 아닌 것의 이념형으로는 일베의 ‘숙적’으로 여겨진 온라인 커뮤니티 루리웹을 놓고 분석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일베 아닌 것의 이념형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던 저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일베를 분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데이터 분석과 게시물 분석을 거쳐 꼼꼼히 루리웹을 살핀 결과, 나름의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며 정치적으로 ‘진보 커뮤니티’를 자처했던 루리웹이, 그래서 어느 커뮤니티보다 앞장서서 일베의 ‘패륜성’을 고발하며 격렬하게 성토했던 그곳 또한 여성혐오와 능력주의로는 일베와 너무나도 유사했다.
혐오의 시대에 맞서기 위해
이 책의 목표는 명확하다. 일베적 혐오의 구조와 기원을 이해함으로써 현재 강고해 보이는 혐오 선동에 맞설 방법을 찾아내자는 것이다. 저자는 일베적 인식의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는 “공적인 것,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며, 그런 사회에는 “오직 개인, 그것도 아주 작은 사회에서 맥락 없이 합리적이기만 한 개인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일베에서의 혐오를 사실상 사회에 대한 극단의 냉소로 파악하는 저자는, 이들의 열광을 연대를 만들어내지 않는 ‘차가운 열광’으로 정의한다. 차가운 열광이란 “‘희생자’인 타자에게는 물론 동료이며 ‘가해자’인 ‘우리’에게조차 냉담한 열광이고, 일베라는 공간 자체는 공적이되 그 구성원들은 사적인 공간에, 즉 컴퓨터와 스마트폰 앞에 머물러 있기에 가능한 열광”이다. 혹자는 이러한 열광과 함께 표출된 일베의 혐오를 그들의 공감 불능성에서 찾지만, 저자가 보기에 일베의 공감 능력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들의 공감이 언제나 ‘승자’를 향한다는 것이다.
공적 영역에서 표출되지 못하고 안으로만 응어리진 분노는 사회의 뒷공간이 된 사이버공간에서 격렬하게 표출되었다.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채 평범 내러티브를 내면화하여 현실적인 순응을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일베의 멘털리티를 이루는 핵심이다. 따라서 일베의 혐오는 순응의 ‘의무’를 거부하는 모든 주체와 그들의 저항을 향한다. 여성, 호남, 좌파에 대한 일베의 혐오는 사실상 ‘순응하지 않음’에 대한 격렬한 분노다.
논문으로부터 8년 이후, 혐오 선동으로 지지자 결집을 도모하기에 이른 오늘날의 정치는 일베적 혐오가 ‘정당하다’는 확신을 주며 그에 기반한 ‘승리’의 경험을 축적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보통 일베들의 시대란 바로 그런 정치의 시대다. 이 강고해 보이는 혐오 선동을 파훼할 불쏘시개 중 하나로 기능하는 것이야말로 이 책의 가치일 것이다. 10여 년 전 일베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민낯을 다시, 똑바로 마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