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셰익스피어 랭커스터 4부작(Lancaster Tetralogy)의 종장(終章)! : 헨리 5세(Henry V by William Shakespeare)(1599)는 헨리 6세(Henry VI)(1591) 3부작(Trilogy)에 이어 리처드 3세(Richard III)(1452~1485), 에드워드 3세(1312~1377), 리처드 2세(Richard II)(1367~1400), 존 왕(King John)(1199~1216), 헨리 4세(Henry IV by William Shakespeare)(1596)에 이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1616)의 일곱 번째 역사극(歷史劇, Histories)’입니다. 셰익스피어 랭커스터 4부작(Lancaster Tetralogy)의 종장(終章)으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과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문학여행을! B
▶ 영국판 국뽕?! 아쟁쿠르 전투(Battle of Agincourt)(1415) : 헨리 5세(Henry V)(1599)는 백년 전쟁(Hundred Years' War)(1337~1453)의 시대, 왕좌에 오른 헨리 5세(Henry V)(1386~1422)가 아쟁쿠르 전투(Battle of Agincourt)(1415)를 비롯해 프랑스에서 전쟁을 치룬 시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전작에서 철부지였던 할 왕자(Prince Hal)가 어느덧 성숙한 군주로 성장해, 프랑스로 원정을 떠나 수적으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적군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는 당대 영국인들에게 국뽕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 영국 꼬맹아, 테니스나 쳐라 : 1부(ACT I)에서 샤를 6세(King Charles VI)(1368~1422)의 아들 도팽 샤를(The French Dauphin, Charles Ⅶ)(1403~1461)은 새롭게 취임한 헨리 5세를 조롱하기 위해 테니스공을 선물합니다. 이에 대한 헨리 5세의 답변도 걸작이지만, 프랑스의 외교적인 무례는 영국의 왕가와 귀족이 합십해 프랑스로 원정을 떠나기 위한 좋은 명분이 되었죠. 헨리 5세는 2막(ACT II)에서 자신을 암살하려는 케임브리지 백작(Earl of Cambridge)의 음모를 사전에 적발해 내는 현명함을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훗날의 원정에 대한 기대감을 선사합니다. 3막(ACT III)에서 영국 해협(English Channel)을 건넌 헨리 5세의 군세는 프랑스 항구 하플뢰르(French port of Harfleur)를 포위합니다. 격전 끝에 영국군은 샤를 6세로부터 그의 딸 발루아의 캐서린(Catherine of Valois)(1401~1437)과 함께 하플뢰르를 지참금으로 얻어내는데 성공하지만, 헨리 5세는 고작 공주와 지참금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바로 프랑스의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는 프랑스 왕위 계승자(the French throne) 자리였으니까!
▶ 헨리 5세의 출사표(出師表), 성 크리스핀의 날의 연설(St Crispin's Day Speech) : 헨리 5세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플뢰르를 굳이 정복하는 대신, 센 강(la Seine)을 따라 칼레(Calais)로, 칼레를 거쳐 수도 파리(Paris)로 진격하는 260여 km의 장대한 여정을 선택합니다. 아쟁쿠르(Agincourt)에서 헨리 5세는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아쟁쿠르 전투(Battle of Agincourt)(1415)를 앞두고 훗날 성 크리스핀의 날의 연설(St Crispin's Day Speech)이라 회자되는 명연설을 했다고 합니다. 연설의 원고는 남아 있지 않으나,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희곡’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투의 결과는 과연? 6천명에 불과한 영국군은 무려 5배에 달하는 3만여 명의 프랑스군을 대파하고, 1만 명 이상을 학살하였습니다.
▶ KING. This story shall the good man teach his son;
And Crispin Crispian shall ne’er go by,
From this day to the ending of the world,
But we in it shall be remembered,
We few, we happy few, we band of brothers.
For he today that sheds his blood with me
Shall be my brother; be he ne’er so vile,
This day shall gentle his condition;
And gentlemen in England now abed
Shall think themselves accurs’d they were not here,
And hold their manhoods cheap whiles any speaks
That fought with us upon Saint Crispin’s day.
▷ 헨리 5세. 이 이야기는 착한 사람이 그의 아들을 가르칠 것입니다.
크리스핀 크리스피안은 절대 지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부터 세상의 종말까지요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우리는 기억될 것입니다.
우리 적으니, 형제끼리 뭉치죠.
나와 함께 그의 피를 흘리는 오늘을 위하여요.
내 형제가 될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더럽지는 않겠지만,
이 날은 그의 상태를 부드럽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영국의 신사 분들은 이제 잠자리에 듭니다.
그들이 여기 있지 않았다고 스스로 생각하겠죠.
그리고 누가 말하는 동안 그들의 맨션을 낮게 잡으세요.
성 크리스핀의 날에 우리와 싸웠노라고.
▶ 프랑스 왕이 될 영국왕, 트로아 조약(the Treaty of Troyes)(1420) : 전투가 끝난 후 5년 후…. 마지막 5막(ACT V)에서 샤를 6세는 프랑스 트로아(Troyes)에서 자신의 사망 후 헨리 5세가 프랑스 왕위를 계승하겠다는 트로아 조약(the Treaty of Troyes)(1420)에 서명합니다. 2019년 개봉한 영화 더 킹: 헨리 5세(The King: Henry IV)(2019)는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을 바탕으로 헨리 5세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으로 티모시 샬라메(Timoth?e Chalamet)(1995~)가 헨리 5세役을 맡았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
▶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한 것! feat. 승리왕(le Victorieux) 샤를 7세(Charles VII)(1403~1461) : 실제 역사에서 프랑스는 부르고뉴파(The Burgundian)와 아르마냑파(The Armagnac)의 분쟁으로 혼란한 상황이였습니다. 헨리 5세는 외세를 빌리고자 하는 양 파벌은 물론 그들을 견제하고자 하는 샤를 6세의 처지와 군사적인 승리에 기반해 샤를 6세의 딸 발루아의 캐서린과 결혼함으로써 공식적인 프랑스 왕위 계승자(the French throne)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군사 뿐 아니라 외교와 정치에 탁월한 식견을 가지지 못했다면 이룰 수 없는 성취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질로 인한 갑작스러운 헨리 5세의 죽음(1413)으로 샤를 7세(샤를 도팽)는 회생의 빌미를 잡았습니다! 헨리 5세의 뒤를 이은 어린 헨리 6세(Henry VI)(1421~1471)가 그의 공백을 메우지 못한 틈을 타 트루아 조약을 생깠고, 숱한 위기를 겪긴 했으나 백년전쟁(the Hundred Years' War)(1337~1453)을 프랑스의 승리로 이끌며 승리왕(le Victorieux)의 칭호를 얻었습니다. 물론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성녀 잔 다르크(Jeanne d'Arc)(1412~1431)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만, 강한 자가 반드시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습니다.
▶ 장대한 셰익스피어 역사극의 하이라이트, 헨리야드(Henriad) : 헨리야드(Henriad)란 셰익스피어 학파에서 리처드 2세(Richard II by William Shakespeare)(1595)를 시작으로 그의 뒤를 이은 헨리 4세 1부(Henry IV Part 1)(1596), 헨리 4세 2부(Henry IV Part 2)(1597), 헨리 5세(Henry V)(1599)까지 총 4편의 역사극(歷史劇, Histories)을 통칭하는 표현입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장미 전쟁(Wars of the Roses)(1455~1485)과 관련한 네 편의 역사극 초기작을 첫 번째 헨리야드(first Henriad)로, 이후 4편을 두 번째 헨리야드(second Henriad)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헨리 5세(Henry V by William Shakespeare)(1599)는 두 번째 헨리야드(second Henriad)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 정조(正祖) 다음에 세종(世宗), 그리고 연산군(燕山君)?! : 셰익스피어는 20대 후반인 1591년 헨리 6세(Henry VI) 3부작을 시작으로 사망을 수년 앞둔 1612년 발표한 헨리 8세(Henry VIII)까지 영국의 국왕과 왕실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역사극(History Plays)을 집필하였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작품의 발표순서와 작품에 등장하는 국왕이 실제로 활동한 순서와 무관하다는 것!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속 국왕이 실제로 활동한 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과로의 숫자는 셰익스피어가 역사극을 발표한 순서). 존 왕(King John)(1199~1216)(5)→에드워드 3세(1312~1377)(3)→리처드 2세(Richard II)(1367~1400)(4)→헨리 4세(Henry IV)(1367~1413)(6)→헨리 5세(Henry V)(1386~1422)(7)→헨리 6세(Henry VI)(1421~1471)(1)→리처드 3세(Richard III)(1452~1485)(2)→헨리 8세(Henry VIII)(1491~1547)(8).
▶ KING HENRY. We are glad the Dauphin is so pleasant with us.
His present and your pains we thank you for.
When we have match’d our rackets to these balls,
We will, in France, by God’s grace, play a set
Shall strike his father’s crown into the hazard.
Tell him he hath made a match with such a wrangler
That all the courts of France will be disturb’d
With chaces. And we understand him well,
How he comes o’er us with our wilder days,
Not measuring what use we made of them.
We never valu’d this poor seat of England;
And therefore, living hence, did give ourself
To barbarous licence; as ’tis ever common
That men are merriest when they are from home.
But tell the Dauphin I will keep my state,
Be like a king, and show my sail of greatness
When I do rouse me in my throne of France.
▷ 헨리 5세. 도팽이 우리와 함께 있어서 기쁩니다.
그의 선물과 당신의 고통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이 공에 우리의 라켓을 맞추면,
우리는 프랑스에서 신의 은총으로 한 세트를 연주할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의 왕관을 위험에 빠뜨릴 것입니다.
그에게 그가 그런 싸움꾼과 한판 붙었다고 말하세요.
프랑스의 모든 법정이 혼란스러워질 것입니다.
체이스로요. 그리고 우리는 그를 잘 이해합니다.
황량한 나날을 어떻게 보내는지요.
우리가 그것들을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 측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린 이 불쌍한 영국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어요.
그러므로 여기서 사는 것은, 우리 자신을 주었습니다.
야만적인 면허증입니다. '라는 것은 언제나 흔한 일입니다.
남자들은 집에 있을 때 가장 즐겁습니다.
하지만 도팽에게 내가 이 상태를 유지하겠다고 말해줘요
왕처럼 되고, 나의 위대한 항해를 보여주십시오.
제가 프랑스 왕좌에 앉게 되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