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앨리스 브래들리 셸던. 부모님과 함께 아프리카와 인도를 여행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화가, 예술 비평가, 군 정보원, CIA 정보원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했고 전역 후에는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실험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을 끝마치던 1967년, 51세의 나이에 SF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그때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라는 필명을 만들었다(‘팁트리’는 식료품점에서 흔히 보이는 과일잼의 브랜드명이다). 군대나 CIA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원치 않은 주목을 받았던 그는 ‘여성 SF 작가’로서 받게 될 관심에서 벗어나고자 남성처럼 보이는 필명을 사용했다.
팁트리는 그 후 10년 동안 편집자와 동료 작가들에게 얼굴을 보이는 일 없이 작품과 편지로만 교류했다. 간혹 팁트리가 여성이라는 추측이 있었지만 동시대 소설가이자 편집자인 로버트 실버버그는 “팁트리의 글에는 지울 수 없이 남성적인 지점들이 있다. 남성이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썼을 거라고, 여성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을 썼을 거라고 생각할 수 없”듯 팁트리는 남성이라고 일축했다.
그리고 1977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61세의 여성 작가임이 밝혀지며 SF 소설계에 일대 파문이 일었다. 그가 ‘라쿠나 셸던’이라는 필명으로도 글을 썼다는 사실 또한 밝혀지며, 거센 후폭풍 속에 ‘팁트리 쇼크’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젊은 남성의 게임판이었던 SF계에서 팁트리는 더 이상 ‘작가’가 아닌 ‘나이 든 여성 작가’가 되었다.
팁트리는 이 사건을 전후로 어머니의 죽음, 남편의 알츠하이머병 발병, 의붓딸의 자살을 연이어 겪게 된다. 글쓰기를 포기하고 남아 있던 원고를 태우려고도 했다. 몇 년 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로 작품 활동을 재개했지만 예전처럼 활발히 활동하지는 못했다.
말년에 다다라, 그간 남편을 보살펴온 팁트리는 남편의 죽음이 가까워진 1987년 5월 19일에 남편을 총으로 쏘고, 자신도 삶을 마감했다. 1991년에 그의 공로를 기리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상’이 제정되어 해마다 젠더에 대한 이해를 넓힌 SF 및 판타지 문학을 대상으로 수여되고 있다. 이 상은 2019년, ‘아더와이즈상’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총 한 편의 시집과 두 편의 장편소설, 일흔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다른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 포함).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월드판타지상, 주피터상 등 다수의 주요 SF 문학상을 석권했다. 『집으로부터 일만 광년』은 1973년에 출간된 그의 첫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