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사에 유일무이한 기록을 남긴 환상적인 이야기꾼이자
‘표현의 자유’의 상징이 된 문제적 작가 살만 루슈디의 대표작
우리 시대의 가장 환상적인 이야기꾼 살만 루슈디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악마의 시』는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슬람교의 기원, 인도 봄베이와 런던의 풍경, 이민자의 삶을 환상적으로 구현해낸 걸작이다. 1988년 휫브레드 최우수 소설상을 받고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을 인정받는 한편, 신성모독 논란으로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 되었고, 작가를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역사적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출간된 지 삼십 년 넘도록 작가의 삶을 위협해온 『악마의 시』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새로이 선보인다. 살만 루슈디의 『분노』 번역으로 제2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고, 『한밤의 아이들』 『2년 8개월 28일 밤』 『조지프 앤턴』까지 살만 루슈디의 작품을 꾸준히 번역해온 김진준 번역가가 작가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담아 오래전 자신의 번역을 손봤다.
『악마의 시』 필화 사건 그리고 ‘표현의 자유’의 상징이 된 살만 루슈디
자유인들이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책의 세계를 위협해온 30여 년
1988년, 한 편의 소설이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인도 태생의 작가 살만 루슈디가 자신의 두번째 장편소설 『한밤의 아이들』로 “20세기 이후 문학의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평가에 더해 부커상을 수상한 후 5년 동안 공들여 쓴, 25만 단어로 이루어진 장편소설 『악마의 시』. 그해 휫브레드 최우수 소설상을 받고 다시금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나, 작품에 대한 독자와 평단의 평가가 채 무르익기도 전에 신성모독 논란이 거세게 일어 살만 루슈디의 네번째 장편소설은 이후로 문제적 작가의 논쟁적인 작품이 된다.
루슈디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며 <무함마드, 이슬람의 기원, 초기 칼리프 체제>라는 특별히 개설된 단독 강의를 통해 “세계적인 종교 하나를 탄생시킨 세상”에 대해 배운다. 모계사회 유목민 집단이 이제 막 정착생활을 시작했고, 정착해 살게 되자 개인의 자유보다 집단의 안위가 우선시되어 여러 규칙들이 생겨나며 부계사회로, 핵가족 형태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 과정을 살피며 루슈디는 새로운 것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등장했는지를 살펴보면 장차 그것이 낡았을 때 어떻게 변모할지 예측해볼 수 있음에 주목했고, 이를 소설의 유용한 소재로 봤다. 그로부터 20년 후 이 소재는 소설로 구현된다.
『악마의 시』는 전체 9부 구성으로 홀수 장에서는 등장인물인 살라딘 참차와 지브릴 파리슈타가 마주한 현실이, 짝수 장에서는 천사로 변신한 지브릴의 꿈이 교차되며,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슬람교의 기원과 인도 봄베이와 런던의 풍경을 환상적으로 구현해낸 걸작이다. 특히나 루슈디 스스로 가장 정치적이지 않은 작품이라 여길 만큼, 태어난 땅을 떠나온 이방인으로서 학창 시절부터(1964년 영국 시민권 획득) 줄곧 겪어온 차별과 폭력을 그려내고, 이민자의 삶과 정체성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룬 첫 작품이다. 하지만 소설 속 이슬람교를 연상케 하는 가상의 종교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경전에 기록된 예언자 말의 절대성에 의구심을 표하는 듯한 ‘악마의 시’ 관련 에피소드와 가상의 도시 자힐리아 내 유곽 ‘히잡’에서 일하는 열두 창부가 각기 예언자 아내들의 이름을 가명으로 쓰는 등의 일부 에피소드로 이슬람교의 거센 반발을 맞게 된다.
『악마의 시』는 루슈디의 고국 인도에서 가장 먼저 금서로 지정되어 수입 및 판매 금지 처분이 내려지는데, 1988년 9월 26일 영국에서 책이 출간되고 열흘 남짓한 시간 내 결정된 일이었다. 이어 1989년, 당시 이란-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정치적 위기에 몰린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는 내란을 잠재우기 위해 이 책을 “이슬람에 대한 모독”으로 규정해 작가를 처단하라는 종교법령(파트와)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루슈디는 살해 위협에 시달리며 1995년까지 영국 정부의 보호하에 도피생활을 하게 되고, 전 세계에서 이 책을 번역하고 출간하고 판매하는 출판인, 번역가, 서점이 테러를 당해 생명을 잃는 사건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에도 루슈디는 부단히 작품을 발표하고 유수의 문학상을 석권하며 “책의 세계는 자유인들이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곳”임을 역설하고 문학의 사회적 역할과 종교적 관용을 주장한다. 1998년 9월, 이란 대통령이 루슈디에게 내려진 사형선고를 철회하지만 오히려 이슬람 과격파 단체의 반발을 불러 거액의 살해 현상금이 내걸린다. 루슈디는 2000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해 2016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고, 장편소설 『키호테』(2019년 부커상 최종 후보), 에세이 『진실의 언어』(2021년)를 출간하는 등 작품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간다. 하지만 2022년 8월 12일, 뉴욕주 셔터쿼연구소에서 강연을 시작하려고 무대로 오르던 살만 루슈디에게 시아파 무슬림 청년이 달려들어 습격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만다. 루슈디가 아직까지도 삶을 위협받고 있으며,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역사적 인물임을 환기하는 사건이었다.
과거 1992년 루슈디는 쿠르트 투홀스키 상(박해에 저항한 작가들에게 수상한다) 수상자로 스톡홀름에서 스웨덴아카데미와 환담을 나눈 일이 있다. 파트와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아카데미에 항의하기 위해 회원 두 사람이 사퇴한 후였고, 스웨덴아카데미의 공식적인 지지는 그로부터도 오랜 시간이 흐른 2016년에야 이루어지지만, 그날 루슈디는 노벨상 수상자가 결정되는 그 방에 앉아 아카데미 회원들의 질문에 유일할 수밖에 없는 답을 말한다. “『악마의 시』를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는, 그리고 온갖 비난과 욕설의 이면에는 매우 중대한 질문 하나가 있다. 이야기에 대한 통제권을 누가 가져야 옳은가?―그 권리는 만인의 것이며 마땅히 만인의 것이어야 한다.”
20세기 문제작을 넘어 21세기 고전으로
『악마의 시』는 봄베이발 여객기가 런던 상공에서 폭발해 두 명의 배우, 지브릴 파리슈타와 살라딘 참차가 추락하며 시작된다. 에베레스트산에 맞먹는 까마득한 높이에서 낙하산도 없이 떨어지며 각기 후광을 두른 천사와 뿔이 돋고 털이 수북한 악마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이 두 사람이 런던에서 겪는 사건들이 소설의 홀수 장들에 펼쳐진다. 봄베이 영화계에서 온갖 신을 연기하며 스타로 군림하던 지브릴 파리슈타는 대천사로 변모해 런던 지도 한 권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버릴 수도 없는 과거라는 짐에 짓눌려 찌그러진 채 황량하고 곤궁한 미래만 멍하니 바라보는’ 이 도시를 구해보겠다고 덤빈다. 반면, 성공한 부자 아버지의 통제와 훼방 그리고 봄베이 특유의 무질서와 소음과 천박함을 혐오하던 소년 살라후딘 참차왈라에서, 평온과 절제의 도시 런던으로 유학 와 자신이 갈망하던 모습으로 이름까지(샐러드로 들리는 ‘살라딘’에 알랑쇠를 뜻하는 ‘참차’로) 바꾸고 목소리 배우로 성공해 영국인과 결혼까지 했으니 어엿한 영국 시민이라 자부해온 살라딘 참차는 비행기 사고 이후 염소의 모습으로 변모해 불법이민자로 몰려 가혹행위를 당하게 된다. 천사와 악마로 겉모습이 달라진 두 인물의 성격 변화에 맞물려 짝수 장들에서는 대천사 지브릴이 꿈과 현실을 넘나들고 시공간을 초월해 목격하거나 관여하게 되는 환상적인 사건들이 펼쳐진다. 지브릴은 신흥종교의 탄생과 성장에서부터 1979년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란 이슬람혁명의 현장까지를 두루 목도한다. 이처럼 홀수 장과 짝수 장이 교차하며 엮어낸 이야기들은 사고실험을 진행하듯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양단의 상황을 두루 검토해보게끔 독자를 이끈다. 천사와 악마, 선과 악, 꿈과 현실, 제국과 식민지, 영국과 인도, 강자와 약자, 사랑과 죽음, 정착과 뿌리 뽑힘 등 양단의 상황에서 과연 인간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살만 루슈디는 1991년 출간한 수필집 『가상의 조국』에서 세기의 문제작이 된 소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악마의 시』는 혼종성, 불순성, 뒤섞임 그리고 인류와 문화, 사상, 정치, 영화, 음악 등이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해 이루어낸 변모를 찬양하는 작품이다. 잡종성을 만끽하며 ‘순수성’ 절대주의를 우려한다.” 또한 이슬람이 아닌 ‘이주, 변모, 분열된 자아, 사랑과 죽음 그리고 런던과 봄베이’에 대한 이야기임을 강조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악마의 시』는 20세기의 문제작을 넘어 21세기의 고전으로 탈바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