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 그냥 빌어. 부탁이니까 그냥 빌어.”
이게 과연 제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맞을까?
정원은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긴 악몽을 꾸는 거라고,
“……미안해.”
하지만 현실이었다.
몸을 아무리 버둥거려도 모든 게 다 잔인하게도 그대로였다.
기쁨이 컸던 만큼 지독한 상처를 안겨 준 첫 번째 계절을 보낸 뒤에 찾아온 묘한 설레임.
“눈으로 먼저 찾고, 표정 보고 목소리 듣고. 그게 그냥 그렇게 되더라고요.
이런 거 쉽지 않은데…… 그냥 그렇게 됐어요, 내가.”
아, 서도혁 이 사람.
마음이 깊고 하나의 행동에도 온 진심이 담겨 있는 그런 사람이구나.
포근한 느낌에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정원은 결론이 뭐가 되었든 간에 이 사람과 해 보고 싶었다.
이를테면 저의 두 번째 계절을.
“이번 주말에 뭐 해요?”
“글쎄요. 뭐 할까요?”
유난히도 길었던 겨울에서 얼음이 녹고 꽃잎이 피어났다.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던 따뜻한 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