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0년 전, 누군가는 독립을 외치고
누군가는 조국을 버렸던 혁명과 배신의 20세기!
시대정신으로 읽는 20세기 한·중·일 사상사
◎ 도서 소개
불과 100년 전, 누군가는 독립을 외치고
누군가는 조국을 버렸던 혁명과 배신의 20세기!
시대정신으로 읽는 20세기 한·중·일 사상사
불과 100년 전 한국은 식민지였다. 격동의 20세기, 전 세계는 지배와 종속의 논리에 저항하거나 동조하며 ‘혁명과 배신의 시대’를 살아갔다. 제1, 2차 세계대전 전후 제국주의, 민족주의, 진화론 등 ‘근대’와 함께 밀려들어 온 거대 담론들은 동아시아의 사상적 지형을 뒤흔들었고, 인종주의를 동반한 유럽-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수탈은 사회진화론, 자유와 평등, 문명화라는 개념으로 포장되어, 누구든 침략과 전쟁의 주체 혹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고작 한 세기 전 20세기 동아시아 무대에서 한국, 중국, 일본 각국의 사상가, 정치가들은 무엇을 고민했을까? 이 책에서는 당대의 상징적인 인물 6인의 삶을 지성사적 관점에서 조망한다. 처참한 현실에서도 희망을 찾으려 했던 루쉰, 조소앙, 후세 다쓰지와 침략전쟁에 나서거나 동조하며 조국을 버린 왕징웨이, 이광수, 도조 히데키의 대조적인 삶을 비교해보며, 그들이 남긴 말과 글을 통해 20세기 동아시아가 걸어온 길을 짚어본다.
▶ 시리즈 소개
시대정신으로 읽는 지성사, ‘역사의 시그니처’
국내 최고 연구자들의 입체적 해설로 만나는 인문 앤솔러지
‘역사의 시그니처’는 기원전부터 현대까지 각 세기의 대표적 시대정신을 소개하는 인문 교양 시리즈입니다. 한 시대를 이끈 상징적인 인물들을 엄선해 그들이 남긴 말과 글을 소개하고 인류의 사상이 어떤 갈래로 이어져 왔는지 살펴봅니다.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시대별로 어떻게 충돌하고 융합되어 오늘의 21세기를 만들었는지 ‘역사의 시그니처’ 시리즈를 통해 만나보세요.
◎ 출판사 서평
제1, 2차 세계대전의 발발, 제국주의의 팽창과 몰락, 독립을 향한 열망
20세기는 왜 격동의 시대였는가
‘역사의 시그니처’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혁명과 배신의 시대』는 한국,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20세기 동아시아의 시대정신을 살펴본다. 한국 근현대사(일제강점기)를 오랜 시간 연구해온 역사학자인 정태헌 교수(고려대 한국사학과)는 한국 근대사를 세계사 속에 비춰보고 세계사적으로 대전환 또는 위기의 시대인 21세기에 우리가 가져야 할 질문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책을 집필했다.
『혁명과 배신의 시대』는 한·중·일의 상징적 인물 여섯 명을 선정해 그들의 삶을 지성사적 관점에서 조망한다. 여섯 명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책 제목처럼 혁명과 독립을 위해 싸운 조소앙(한국), 루쉰(중국), 후세 다쓰지(일본)와 개인의 안위를 위해 조국을 배신한 이광수(한국), 왕징웨이(중국), 도조 히데키(일본)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았다. 같은 시대임에도 이들의 삶은 왜 극명하게 갈린 것일까?
불과 100년 전 한국은 식민지였다. 서구 열강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략이 끝물에 접어든 20세기 초, 제국주의 대열에 편승한 일본은 조선을 지배했고, 중국 역시 아편전쟁 이후 열강의 지배를 받았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만큼, 20세기는 제국주의의 침략과 학살을 진화론, 문명화, 근대화라는 정치적 개념으로 포장하거나 합리화한 시대였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당시 엘리트라 불리던 각국의 청년들이 서구로부터 밀려들어 온 제국주의, 근대주의, 사회진화론 등의 ‘근대’ 이데올로기에 어떻게 반응했느냐에 따라 그들의 삶이 달라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20세기 한·중·일 지식인들의 고민,
‘근대화’라는 이름의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광수를 제외한 5인은 모두 1880년대생으로, 이들은 전통 학문과 근대 학문의 수혜를 동시에 받은 세대다. 조선과 청조의 엘리트 청년들이었던 조소앙과 이광수, 루쉰과 왕징웨이는 모두 비슷한 시기에 국비 유학생으로 뽑혀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과학, 철학 등 서구식 근대 학문을 처음 접하게 된다. 서구 제국주의, 이른바 웨스턴 임팩트는 이들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회진화론’이다.
세계사 차원에서 ‘근대’라는 것은 인종주의를 동반한 개념이다. 인간을 우등한 자와 열등한 자로 구분하는 우승열패,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사회진화론은 당대 지식인들의 의식을 잠식했고, 중국과 조선의 지식인들조차 이와 같은 식민지적 관성에 익숙해져 갔다. 사회진화론을 그대로 수용하고 추종할 것인가, 혹은 거부하고 투쟁할 것인가의 고민은 당대의 지식인들이 넘어야 할 큰 산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제국주의, 근대주의, 자유와 평등, 민(民)권, 평화 등의 주요 키워드를 중심으로 격동기 3국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설정함에 앞서 어떤 고민 과정을 거쳐왔는지를 자세히 살펴본다.
혁명할 것인가! vs. 배신할 것인가!
같은 시대임에도 다른 미래를 꿈꾼 6인의 삶
【중국】 잠든 중국인을 깨운 루쉰 vs. 친일의 상징 왕징웨이
루쉰은 ‘근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 세계와 중국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는 끝없는 고민 끝에 사회진화론 속에서 침략의 본질을 간파했다. 남을 침략하는 것이 부국강병이라는 근대주의적인 동물의 본성을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개개인의 문명화와 개성 해방을 강조했다. 그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도 잠들어 있는 중국인을 깨우기 위해서였다.
루쉰과 비슷한 나이의 왕징웨이는 루쉰과 같은 지적 고민의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다. 신해혁명의 영웅이었던 그가 친일파의 상징이 되기까지 그의 삶은 오로지 ‘권력’만을 위한 투쟁이었다. 왕징웨이 역시 나름대로 중국의 미래를 고민했지만, 유럽, 일본 등의 열강이 중국을 도와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에 기대어 친일 괴뢰정권의 수반 역할을 충실히 하다 생을 마감했다.
【한국】 민권에 눈을 뜬 조소앙 vs. 민족을 혐오한 이광수
조소앙은 이른 나이에 민권의 중요성을 제기한다. 도쿄 유학 시절부터 키워간 민권 의식을 바탕으로, 훗날에는 독립운동의 주체가 외부 세력이 아닌 ‘국민’이어야 한다는 기조의 「대동단결선언」의 초안도 작성했다. 이는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민권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는 큰 의의를 지닌다.
반면 이광수는 근대의 ‘힘’을 추종하며 일본이 도발한 침략전쟁의 나팔수로 나섰다. 이광수의 ‘민족개조론’과 ‘실력양성론’은 무지한 조선 민족을 혐오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시킨 엘리트 의식의 산물이다. 근대를 ‘힘’으로 인식한 그는, 힘 있는 나라에 귀속되는 것이 조선의 살길이라고 외치며 일본과의 내선일체를 주장했다. 그리고 해방 후 친일 행위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마지막까지 자신의 친일은 ‘민족을 위한 희생’이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일본】 조선의 독립을 변호한 후세 다쓰지 vs.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한편 일본에도 정반대의 삶을 산 인물들이 있다. 조선의 유학생들을 변호한 인권 변호사 후세 다쓰지는 일본인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일본이 식민 지배를 통해 조선을 발전시켰다’라는 침략의 알리바이를 믿지 않았다. 침략전쟁과 군국주의를 비판하고 민족과 국적을 넘어 보편적 인권과 평화를 추구했던, 그것을 평생 몸으로 실천했던 국제 평화주의자였다.
반대로 군인 도조 히데키는 30대 영관급 장교인 시절부터 침략전쟁의 야욕을 품고 오로지 권력만을 추구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병사들에게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죽으라”며 개죽음을 강요하고, 전 세계를 전쟁에 몰아넣은 만행을 저질렀지만 그의 시신은 현재 야스쿠니신사에 잠들어 있다. 오늘날 한일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라는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시대정신으로 읽는 지성사, 역사의 시그니처
국내 최고 연구자들의 입체적 해설로 만나는 인문 앤솔러지
이 책은 20세기 한·중·일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사상적 변화 과정을 흐름에 따라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들이 집필한 책이나 문헌 중 당시 시대상황이 잘 나타나 있는 50개 이상의 글도 함께 실려 있어 그 의미를 더 깊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제국주의, 사회진화론, 근대주의, 근대화론, 민권, 평화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주요 키워드들을 별도로 구분해놓았기 때문에 중요한 역사적 사건 등 맥락에 따라 20세기 동아시아를 파악해볼 수도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역사적 사료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루쉰의 『아Q정전』, 이광수의 『나의 고백』 등 유명한 문학작품은 물론이고, 조소앙이 도쿄 유학 시절 쓴 일기인 『동유약초』부터 그가 초안을 쓴 독립선언서 등의 자료를 통해 한국 독립운동사를 되짚어볼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왕징웨이의 대동아회의 연설문, 도조 히데키의 미발표 유서, 후세 다쓰지가 조선총독부와 법률 전쟁을 펼쳤을 때의 변호문 등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러 문헌도 눈여겨볼 만하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20세기 제국주의적 논리에서
21세기는 과연 자유로운가
인종주의는 특별히 본성이 사악한 무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발현된다. 하지만 그들 중 민족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있다면, 국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왕징웨이와 이광수, 도조 히데키는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사적인 권력에 눈이 멀어 자기 합리화에 바빴고,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일 때도 스스로 소화하려는 과정 없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했다. 이것이 루쉰과 조소앙, 후세 다쓰지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된 결정적 이유다.
오늘날 독일은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각인하고 제도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부담스러운 과거를 피하지 않고 마땅히 대면함으로써,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 사회는 대조적이다. 침략전쟁에 누구보다 열광했던 일본 사회는 패전 후 도조 히데키에게 책임을 몰았다. 이와 같은 ‘무책임의 체계’는 여전히 일본 사회에 배어 있다.
저자는 21세기가 과연 20세기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워졌는지를 묻는다. 고작 한 세기 전 약육강식의 논리로 무장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길 뻔했고, 해방 후에도 강국의 알력 앞에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음에도 우승열패나 적자생존 같은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 횡행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시대를 나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내 삶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도 시대 인식을 통한 고민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21세기에 20세기의 시대정신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 본문 중에서
루쉰은 누구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자신의 인생 진로를 급전환했다. 그의 성격과 성품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후 그의 삶과 사상은 ‘자득자결(自得自決)’ 한마디로 함축된다.
【제국주의 폭력을 직면한 후의 결심_19쪽】
서구 근대사상을 사회진화론이라는 스펙트럼을 통해 학습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대부분의 동아시아 지식인은 어느덧 약육강식, 우승열패, 적자생존 개념은 물론 제국주의 침략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관성에 젖어 들어갔다.
【사회진화론에서 짐승의 본성을 간파하다_24쪽】
왕징웨이는 이런 격변기에 쑨원의 측근으로서 정치운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신해혁명의 리더로서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을 지낸 쑨원과 함께 혁명의 길에 나섰고, 한때 혁명의 영웅으로도 불렸다. 하지만 장제스와 권력투쟁을 거듭하며 일본의 국민당 분열 책동에 놀아나면서 중국의 대표적인 한간(漢奸)이 됐다.
【만주족의 청나라를 뒤엎고 한족의 나라를 만들자_76쪽】
왕징웨이는 ‘화평’운동을 ‘자기희생’으로 합리화했다. 혁명가로서 자신의 지위와 명성을 희생해 전쟁의 도탄에서 중화 민족을 구한다는 논리였다. 이광수의 ‘민족 보전을 위한 희생론’과 비슷했다.
【장제스를 누르기 위해 일본과 밀약을 맺다_110쪽】
사회진화론은 조소앙에게 ‘녹림(綠林) 시대’, 즉 도적이 난무하는 시대를 정당화한 것에 불과했다. 그는 “강자가 약자를 삼킬 권리”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강자라고 약자를 삼킬 권리는 없다_149쪽】
이광수는 강한 지도자, 강한 민족, 강한 나라를 원하면서 ‘민족 지도자’를 자임했다. 그러나 스스로 만들어가는 피곤함보다 힘 있다고 생각된 나라에 귀속된 ‘하위 지도자’가 되는 길을 설정했다.
【조선인은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돼야 한다_243쪽】
후세 다쓰지는 패전 직후 (…) 관동대지진 학살의 진상을 밝히고 죄 없이 살해당한 조선인들에게 조의를 표했다. (…) 오늘과 같은 일본의 우경화를 우려하면서, 조선인 희생자를 위로한 것이다.
【무고한 학살에 면죄부는 없다_297~301쪽】
도조 히데키는 1941년 1월, 즉 태평양전쟁 도발 11개월 전 「전진훈」을 발포했다. (…) 황군의 병사는 “살아서 포로의 수모를 당”해서도, “죽어서도 죄나 재앙을 남”겨서도 안 되기에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죽어라_336~3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