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고전894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기사집(記事集) 1944(English Classics894 Collected Articles of Frederick Douglass by Frederick Douglass)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 | 테마여행신문 TTN Theme Travel News Korea | 2022년 11월 30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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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기사집(記事集)(Collected Articles of Frederick Douglass by Frederick Douglass)(1944)은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1818~1895)가 더 센추리 일러스트레이티드 매거진(The Century Illustrated Magazine)을 통해 발표한 나의 노예로부터의 탈출(My Escape from Slavery)(1881)과 아틀란틱 먼슬리(Atlantic Monthly)를 통해 공개된 재건(Reconstruction)(1866), 두 작품을 묶은 편집본으로 작가의 사후 50여년이 지난 1944년에 출간되었습니다.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과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문학여행을! B

▶ My Escape from Slavery. In the first narrative of my experience in slavery, written nearly forty years ago, and in various writings since, I have given the public what I considered very good reasons for withholding the manner of my escape. In substance these reasons were, first, that such publication at any time during the existence of slavery might be used by the master against the slave, and prevent the future escape of any who might adopt the same means that I did. The second reason was, if possible, still more binding to silence: the publication of details would certainly have put in peril the persons and property of those who assisted.

▷ 나의 노예로부터의 탈출. 거의 40년 전에 쓰인 노예 생활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와 그 이후의 다양한 글에서 나는 탈출 방식을 보류하는 데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대중에게 설명했습니다. 본질적으로 이러한 이유는 첫째, 노예가 존재하는 동안 언제든지 그러한 출판물이 주인에 의해 노예에 대항하여 사용될 수 있고, 내가 했던 것과 같은 수단을 채택할 수 있는 사람이 미래에 탈출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가능하다면 침묵에 더 구속력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세부 사항의 공개는 분명히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인적 사항과 재산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습니다.

▶ My free life began on the third of September, 1838. On the morning of the fourth of that month, after an anxious and most perilous but safe journey, I found myself in the big city of New York, a free man?one more added to the mighty throng which, like the confused waves of the troubled sea, surged to and fro between the lofty walls of Broadway. Though dazzled with the wonders which met me on every hand, my thoughts could not be much withdrawn from my strange situation. For the moment, the dreams of my youth and the hopes of my manhood were completely fulfilled.

▷ 나의 자유로운 삶은 1838년 9월 3일에 시작되었습니다. 그 달 4일 아침, 불안하고 가장 위험하지만 안전한 여행을 마친 후 저는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자유로운 사람인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요란한 바다의 혼란스러운 파도처럼 브로드웨이의 높은 벽 사이를 이리저리 몰아치는 거대한 군중에게. 사방에서 나를 만나는 경이로움에 눈이 부시긴 했지만, 내 생각은 내 이상한 상황에서 많이 철회될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내 젊음의 꿈과 내 청년의 희망이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

▶ The reader may be surprised at the impressions I had in some way conceived of the social and material condition of the people at the North. I had no proper idea of the wealth, refinement, enterprise, and high civilization of this section of the country. My “Columbian Orator,” almost my only book, had done nothing to enlighten me concerning Northern society. I had been taught that slavery was the bottom fact of all wealth. With this foundation idea, I came naturally to the conclusion that poverty must be the general condition of the people of the free States. In the country from which I came, a white man holding no slaves was usually an ignorant and poverty-stricken man, and men of this class were contemptuously called “poor white trash.” Hence I supposed that, since the non-slave-holders at the South were ignorant, poor, and degraded as a class, the non-slave-holders at the North must be in a similar condition.

▷ 독자들은 북부 주민들의 사회적, 물질적 상황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제가 느꼈던 인상에 놀랄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지역의 부, 세련됨, 진취성, 그리고 높은 문명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쓴 거의 유일한 책인 "컬럼비아 웅변가(Columbian Orator)"는 북부 사회에 대해 저를 깨우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노예제도가 모든 부의 근본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기초 아이디어를 가지고, 저는 자연스럽게 빈곤이 자유 국가 사람들의 일반적인 조건임에 틀림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제가 태어난 나라에서 노예를 갖지 않는 백인은 보통 무지하고 가난에 찌든 사람이었고, 이 계급의 남자들은 "가난한 백인 쓰레기(poor white trash)"라고 경멸적으로 불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부의 비노예주들이 계급적으로 무지하고 가난하고 품위가 떨어졌기 때문에 북부의 비노예주들도 비슷한 상태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The fifth day after my arrival, I put on the clothes of a common laborer, and went upon the wharves in search of work. On my way down Union street I saw a large pile of coal in front of the house of Rev. Ephraim Peabody, the Unitarian minister. I went to the kitchen door and asked the privilege of bringing in and putting away this coal. “What will you charge?” said the lady. “I will leave that to you, madam.” “You may put it away,” she said. I was not long in accomplishing the job, when the dear lady put into my hand two silver half-dollars. To understand the emotion which swelled my heart as I clasped this money, realizing that I had no master who could take it from me,?that it was mine?that my hands were my own, and could earn more of the precious coin,?one must have been in some sense himself a slave.

▷ 도착한 지 닷새째 되는 날, 저는 평범한 노동자의 옷을 입고, 일을 찾아 부두에 올라갔습니다. 유니언 거리를 내려가는 길에 유니테리언 목사 에브라임 피바디 목사의 집 앞에 석탄 더미가 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부엌문으로 가서 이 석탄을 가지고 와서 치울 수 있는 특권을 요청했습니다. "무엇을 청구하시겠습니까?"라고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그건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부인." "당신은 그것을 치워도 돼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제가 그 일을 완성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아서, 그 귀여운 아가씨가 제 손에 하프 달러 두 개를 쥐어 주었습니다. 이 돈을 쥐면서 내 마음을 부풀린 감정을 이해하려면, 내 손은 내 것이고, 더 많은 귀중한 동전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내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 돈을 움켜쥐면서 내 마음을 부풀린 감정을 이해하려면, 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신이 노예였을 것입니다.

저자소개

▶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1818~1895)

▶ 노예로 태어나, 자유인으로 죽은 미국의 사회 개혁가(American social reformer)(1818~1895) :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Washington, D.C.)를 감싸 안고 있는 형상의 메릴랜드(Maryland) 주 시골 마을에서 흑인 노예 어머니 해리엇 베일리(Harriet Bailey)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에게 프레더릭 오거스터스 워싱턴 베일리(Frederick Augustus Washington Bailey)이란 지나치게 거창한 이름을 선물해 주었고, 프레더릭은 1838년, 노예로 근무하던 농장을 탈출하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성을 스탠리(Stanley), 존슨(Johnson) 등으로 변경하다가 최종적으로 더글러스(Douglass)라고 지었습니다. 더글러스(Douglass)는 월터 스캇(Walter Scott)의 시 호수의 여인(The Lady of the Lake)에 등장하는 제임스 더글러스(James Douglas)에서 따온 것입니다.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는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인물이지만, 미국 흑인에게는 수정헌법 제13조(13th Amendment)(1863)를 통해 해방 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한 링컨 대통령(President Lincoln)에 비견되는 사회 개혁가(Social reformer)이자 노예제 폐지론자(Abolitionist)로 다양한 글과 연설을 통해 대중들의 심금을 울린 작가(writer) 겸 웅변가(Orator)입니다.

▶ 7월 4일 연설(Fourth of July speech)(1852) :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는 대중들의 심금을 울린 작가이자 강연가로써 미전역은 물론 유럽을 순회하며 수백회의 연단에 올랐습니다. 그 중에서도 1852년 7월 5일 워싱턴 코린티안 홀(Historic Site of the Corinthian Hall) 독립선언서 서명 기념(the signing of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행사에 참석할 당시의 7월 4일 연설(Fourth of July speech)은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명연설로 꼽힙니다. What, to the American slave, is your 4th of July? I answer; a day that reveals to him, more than all other days in the year, the gross injustice and cruelty to which he is the constant victim. 미국 노예에게 7월 4일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대답합니다; 일 년 중 다른 모든 날들보다, 그가 끊임없이 희생당하는 엄청난 부당함과 잔인함을 그에게 드러내는 날. 그에게 있어서, 당신의 축하는 거짓입니다.

▶ 기념동상으로 제작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first African-American)(1899) : 링컨 대통령 기념상이 세워져 있는 워싱턴 스퀘어 공원(Washington Square Park)은 제네시 강(Genesee River) 강변에 조성된 미국 뉴욕 로체스터의 자그마한 공원으로, 세인트 메리 가톨릭교회(St. Mary’s Catholic Church)와 맞닿아 있습니다. 1899년 링컨 대통령을 등지고 있는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의 기념동상이 1899년 세워졌으며, 이는 ‘기념동상으로 제작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first African-American)(1899)’입니다. 워싱턴에는 워싱턴 스퀘어 공원(Washington Square Park)과 같은 이름의 공원이 여럿 있으니, ‘뉴욕 로체스터’로 가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2020년 그의 동상이 반달리즘(Vandalism)으로 인하여 통째로 훼손되었습니다. 뉴욕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 미국 우정청(USPS) 저명한 미국인 시리즈(Prominent Americans series) 기념우표(1967, 1995) : 미국 우정청(USPS)은 1965년부터 미국의 대통령과 시장, 장관 등을 아우르는 저명한 미국인 시리즈(Prominent Americans series) 기념우표를 발행하였습니다. 주로 정치인이 우표의 주인공으로 채택되었으나,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역사가 프랜시스 파크만(Francis Parkman), 기자 어니 파일(Ernie Pyle), 의사 엘리자베스 블랙웰(Elizabeth Blackwell), 기업가 아마데오 지아니니(Amadeo Giannini), 작가 유진 오넬(Eugene O'Neill) 등이 예외적으로 포함된 바 있습니다.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는 노예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1967년 저명한 미국인 시리즈(Prominent Americans series)에 선정되었습니다. 1995년에는 남북전쟁 종전 130주년 기념우표(the year of the 130th Anniversary of the end of the Civil War)로 다시 한 번 발행되었으며, 1967년과 달리 칼라로 제작되었습니다.

▶ 예일 대학교(Yale University) 프레더릭 더글러스 출판상(Frederick Douglass Book Prize) 제정(1999) : 예일 대학교(Yale University)는 길더 레르만 미국 역사 연구소(Gilder Lehrman Institute of American History), 노예, 저항 및 폐지 연구를 위한 길더 레르만 센터(Gilder Lehrman Center for the Study of Slavery, Resistance, and Abolition)와 함께 1999년부터 매년 프레더릭 더글러스 출판상(Frederick Douglass Book Prize)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습니다. 평생 노예제의 폐지에 헌신한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의 이름을 딴 상이니만큼 한 해 동안 관련 주제로 발표한 논픽션 소설을 선정해 2만 5천불의 상금을 수여합니다. 1999년 이라 베를린(Ira Berlin)의 수천 명이 사라지다: 노예 제도의 첫 2세기(Many Thousands Gone: The First Two Centuries of Slavery)를 시작으로, 2019년 에이미 뮤렐 테일러(Amy Murrell Taylor)의 투쟁의 자유: 남북 전쟁의 노예 난민 수용소를 통한 여행(Embattled Freedom: Journeys through the Civil War’s Slave Refugee Camps) 등이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 뉴욕 작가 명예의 전당(New York Writers Hall of Fame) 헌액(2010) : 미국 의회 도서관(U.S. Library of Congress's Center for the Book)이 2010년부터 시작한 뉴욕주 작가 명예의 전당(New York State Writers Hall of Fame)은 ‘뉴욕의 문학유산과 뉴욕 주 작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프로젝트’로 생존 작가와 미생존 작가를 구분하지 않고 선정합니다. 최초로 시작한 2010년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는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삶에 관한 이야기(Narrative of the Life of Frederick Douglass, an American Slave)(1845)의 저자로써 12명의 뉴욕 주 작가 명예의 전당(New York State Writers Hall of Fame)에 헌액 되었습니다. 2010년 선정된 최초의 12인은 모두 사망한 상태였으며, 2011년에는 생존 작가도 포함되기 시작하였습니다.

▶ 미국 조폐국(U.S. Mint) 아름다운 미국 쿼터(America the Beautiful Quarters) 시리즈 발행(2017) : 미국 조폐국(U.S. Mint)은 2017년 아름다운 미국 쿼터(America the Beautiful Quarters) 시리즈에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를 선정하였습니다. 쿼터에는 그의 초상화와 그의 집(Frederick Douglass National Historic Site)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워싱턴의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집(Frederick Douglass National Historic Site)은 그가 1877년부터 1895년 숨을 거둘 때까지, 생의 말년을 보낸 곳으로 국립 유적지(National Historic Site)로 지정 및 보존되고 있습니다.

목차소개

-목차(Index)-
▶ 프롤로그(Prologue).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 999선을 읽어야 하는 7가지 이유
▶ 18가지 키워드로 읽는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1818~1895)
01. 노예로 태어나, 자유인으로 죽은 미국의 사회 개혁가(American social reformer)(1818~1895)
02.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삶에 관한 이야기(Narrat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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