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The Narrative of Arthur Gordon Pym of Nantucket)(1838) : 국내에서만 약 160만 관객을 동원한 이안 감독의 미국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2012)는 전 세계적으로 1,200만부가 팔린 맨부커상(Man Booker Prize for Fiction) 수상작 파이 이야기(Life of Pi)(2001)를 영상으로 실감나게 옮긴 작품입니다. 인도를 출발한 주인공이 표류하여, 한 척의 배에서 호랑이와 함께 공존하는 기묘한 경험담을 환상적인 특수 효과와 함께 펼쳐내 세계적으로 호평 받았습니다.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 영화에서는 생략되었으나, 원작 소설에서는 파이와 조우한 눈 먼 조난자를 호랑이가 먹어치우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이 장면이 왜 호랑이 이름이 리처드 파커(Richard Parker)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에드가 엘런 포는 평생 단 한 편의 장편 소설(the only complete novel)을 완결 지었습니다. 바로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The Narrative of Arthur Gordon Pym of Nantucket)(1838)로,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소설에는 식량이 떨어진 선원들이 제비뽑기를 해 걸린 선원을 먹어 치우는데, 바로 운 나쁜 선원의 이름이 리처드 파커(Richard Parker)입니다. 포의 소설에서 ‘먹힌 선원’이 영화에서는 ‘먹는 호랑이’로 변신한 셈이네요.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과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문학여행을! B
▶ 쥘 베른이 오마주한 에드거 앨런 포, 남극 미스터리(빙원의 스핑크스){An Antarctic Mystery(The Sphinx of the Ice Fields)}(1897) : 쥘 베른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1809~1849)의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The Narrative of Arthur Gordon Pym of Nantucket)(1838)를 읽고, 너무나 감명 받아 해당 작품과 이어지는 남극 미스터리(빙원의 스핑크스)(1897)를 집필하였습니다. 비공식(?!) 속편(Sequel)이자 헌정작(Tribute)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남극 미스터리(1897)는 아서 고든 핌(Arthur Gordon Pym)으로부터 11년 후인 1839년 케르겔렌 제도(Kerguelen Islands)를 배경으로 하며, 두 작품은 인도양 남부(The South Indian Ocean) 케르겔렌 제도(Kerguelen Islands)를 배경으로 한 희귀한 문학 작품으로 꼽힙니다만, 쥘 베른의 의도와 다르게 그리 좋은 평을 받지는 못했다는…….
▶ PREFACE. Upon my return to the United States a few months ago, after the extraordinary series of adventure in the South Seas and elsewhere, of which an account is given in the following pages, accident threw me into the society of several gentlemen in Richmond, Va., who felt deep interest in all matters relating to the regions I had visited, and who were constantly urging it upon me, as a duty, to give my narrative to the public.
▷ 머리말. 몇 달 전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남해와 다른 곳에서 일련의 특별한 모험을 하고 다음 페이지에서 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연히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에 있는 여러 신사의 사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 내가 방문한 지역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깊은 관심을 느꼈고, 의무로서 내 이야기를 대중에게 공개하도록 끊임없이 촉구했습니다.
▶ I had several reasons, however, for declining to do so, some of which were of a nature altogether private, and concern no person but myself; others not so much so. One consideration which deterred me was, that, having kept no journal during a greater portion of the time in which I was absent, I feared I should not be able to write, from mere memory, a statement so minute and connected as to have the appearance of that truth it would really possess, barring only the natural and unavoidable exaggeration to which all of us are prone when detailing events which have had powerful influence in exciting the imaginative faculties.
▷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기를 거부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중 일부는 완전히 사적인 성격이었고, 저 외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른 것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단념시킨 한 가지 고려사항은, 제가 부재한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그것이 정말로 가지고 있는 진실의 외관을 가지기 위해 너무 세밀하고 연결된 진술을 쓸 수 없어 두려웠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강력한 영향을 미친 사건들을 상세히 설명할 때 경향이 있습니다.
▶ Another reason was, that the incidents to be narrated were of a nature so positively marvellous, that, unsupported as my assertions must necessarily be (except by the evidence of a single individual, and he a half-breed Indian), I could only hope for belief among my family, and those of my friends who have had reason, through life, to put faith in my veracity?the probability being that the public at large would regard what I should put forth as merely an impudent and ingenious fiction. A distrust in my own abilities as a writer was, nevertheless, one of the principal causes which prevented me from complying with the suggestions of my advisers.
▷ 또 다른 이유는, 서술할 사건들이 너무나 긍정적으로 경이로운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내 주장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처럼 (단일 개인과 혼혈 인도인의 증거를 제외하고) 나는 내 가족과 삶을 통해 이성을 가진 내 친구들 사이에서 믿음만을 바랄 수 있었습니다. 나의 진실성?대중들이 내가 내세워야 할 것을 단지 뻔뻔하고 기발한 허구로 여길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로서의 제 능력에 대한 불신은 제 조언자들의 제안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 This expos? being made, it will be seen at once how much of what follows I claim to be my own writing; and it will also be understood that no fact is misrepresented in the first few pages which were written by Mr. Poe. Even to those readers who have not seen the Messenger, it will be unnecessary to point out where his portion ends and my own commences; the difference in point of style will be readily perceived. A. G. PYM. New-York, July, 1838.
▷ 이 폭로가 이루어지면 다음 내용 중 내가 내 자신의 글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얼마나 많은지 즉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포가 작성한 처음 몇 페이지에는 사실이 잘못 표현되지 않았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메신저를 본 적이 없는 독자들에게도 그의 몫이 어디에서 끝나고 나의 몫이 시작되는지를 지적하는 것은 불필요할 것입니다. 스타일 포인트의 차이를 쉽게 감지할 수 있습니다. 아서 고든 핌(Arthur Gordon Pym). 1838년 7월 뉴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