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대에서 바라본 변경의 역사
-갑곶돈대에서 염주돈대까지
380여 년 전에 축조된 해안 군사시설
“돈대는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강화도에는 54개의 돈대가 있다. 세계 유일의 해상 방어시설인 이들 돈대는 적의 동태를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군사기지로서 주변을 관망할 수 있게 평지보다 높은 평평한 땅에 돌로 쌓았으며, 포좌와 성가퀴 등이 설치되어 있다. 강화도에 돈대가 처음 축조된 것은 숙종 5년인 1679년으로 그 배경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숨어 있다. 병자호란이라는 치욕과 북벌이라는 설욕 사이에서 탄생한 돈대는 병자호란 이후 강화도가 ‘보장처(전란 때 임금과 조정이 대피하는 곳)’로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됨에 따라 방어시설을 확충해 100킬로미터의 해안선을 따라 돈대를 축조해 섬 전체를 요새화했다. 돈대로 둘러싸인 강화도는 프랑스, 미국, 일본으로부터 강제 개방을 요구받았고 또 청나라, 러시아, 일본의 전쟁터가 되는 등 가혹하리만치 숱한 고통을 겪었으며 그 고통의 현장에 돈대가 서 있었다.
시계 분침의 눈금처럼 강화도를 둘러싸고 있는 54개의 돈대는 모두 빼어난 조망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380여 년 전 축조된 돈대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방치되어 허물어지거나 멸실되었고, 제대로 복원된 것들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강화 돈대―돌에 새긴 변경의 역사>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르포르타주 작가인 이상엽이 2015년부터 강화도의 돈대를 찾아다니며 공부하고 사진으로 기록한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생생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강화도 54돈대의 첫 출발지인 갑곶돈대부터 염주돈대까지 민통선지역을 포함해 이들 돈대를 돌아보며 돈대가 간직하고 있는 아픈 역사를 담담히 전하고 있다. 책에는 저자가 직접 촬영한 돈대의 사진들과 돈대가 세워지게 된 배경과 기원, 돈대에 얽힌 설화, 역사적 사건, 돈대를 만들고 지킨 민중들의 삶 등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 읽는 재미와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조선의 변방 강화도가 모순의 격전장이 된 이유, 전쟁과 학살이 자행된 돈대를 역사가 은폐해온 사실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으며, 강화도의 역사적 가치와 오랜 세월 주목받지 못했지만 민족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함께한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이들 돈대와 좀더 가까이 만날 수 있다.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돈대를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격랑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강화 돈대들”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강화도에는 54개의 돈대들이 우직하니 서 있다. 오랜 세월 서해를 지키며 지난날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을 최전선에서 막아낸 이들 돈대는 1679년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의 지휘 아래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등지에서 승군, 어영군, 석공, 목수 등을 동원해 80일 만에 축조한 해상 방어시설이다. 특히 8900명이 동원된 승군은 40일 만에 여장을 제외한 돈대의 모든 작업을 마쳐 그들이 돈대를 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많은 이의 희생으로 탄생한 돈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비극적이었다. 아픈 역사를 품고 묵묵히 서 있는 돈대를 그동안 잊고 지나쳐왔지만 이제는 돈대의 이야기와 역사적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강화도에 숨어 있는 보물인 돈대를 저자가 오랜 시간 찾아다니며 기록한 각각의 돈대에 얽힌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1부와 2부에서는 17세기 초반 격변하는 동아시아의 전세 속에서 강화도에 세워진 돈대의 기원을 추적한다. 영고탑 회귀설(寧古塔回歸說), 북벌론, 정경(鄭經)의 침입 등 정세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당파들에 의해 강화도에 돈대가 설계된 과정을 동아시아적인 관점으로 확대해 조망함과 동시에 조선 내부의 권력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돈대가 축조된 연유에 대해 살펴본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서구와의 첫 만남은 모두 전쟁으로 귀결되었고, 그 장소는 강화도의 돈대였다. 이에 3부에서는 19세기 말 최초로 접촉한 서구와의 만남이 왜 하필 돈대에서였을까라는 우연 또는 필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4부에서는 광복 후 한국전쟁과 군사 쿠데타로 인해 돈대는 전혀 다른 가치를 부여받아 과거의 군사 목적이 아닌 역사·문화 유적으로 각광받는 현실에 대해 살펴본다.
한동안 폐허로 잠들어 있던 돈대가 다시 눈을 뜬 것은 박정희 정권 때로 손돌목돈대 등 신미양요의 현장을 대대적으로 복원했는데, 갑곶돈대에서 초지돈대까지 약 10여 개의 돈대가 역사적 고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복원되었다. 현재 54개 돈대 중 10개는 멸실이고, 20여 개는 군의 소유이며, 나머지는 버려지거나 고증 없는 복원을 거쳤다.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돈대는 몇 곳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허물어져 방치되고 버려지고 이용당한 돌덩어리인 돈대가 이 책이 밑거름이 되어 많은 이의 관심 속에 ‘보편적이며 탁월한 가치’를 다시 되찾아 인류의 가장 순수한 역사기념물로 보존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