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이사한 적이 있다. 새집으로 이사한 첫날을 떠올려보자. 모든 물건이 어제까지 사용한 것인데도 내 집이 아닌 듯한 기분. 어색한 공기, 내 물건이 놓여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위치.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간은 가까워지고, 그렇게 집(house)은 나의 공간이 된다. ‘집(home)’이 된다.
집은 그 공간을 사용하는 거주자의 개인 취향이 반영된 곳이다. 집은 개인의 역사와 인생 양식으로 채우는 무대 공간이다. 모든 물건에는 시간과 장소와 연결된 특별한 기억이 담겨 있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를 경험하는 사물이나 공간과 밀접한 관계를 이룬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경험이 조화를 이루는 것은 공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집은 타인의 삶이 공유되는 곳이기도 하다.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 식탁은 친구의 결혼 소식을 나누는 장소가 된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거실은 친구들과 사소한 혹은 심각한 논쟁을 벌이는 장소가 된다. 집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작은 사회를 반영하는 곳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간은 가까워지고,
집(house)은 나의 공간이 된다. ‘집(home)’이 된다.
『집의 감각』의 저자 김민선은 네덜란드에서 4년을 보내며 다섯 번 이사를 했다. 두 개의 여행용 가방만으로 충분했던 짐은 점점 늘어났다. 계약이 끝날 때마다 ‘집’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했다. 그때마다 새로운 공간에 적응해야 했다. 작가는 그것을 ‘집의 감각’으로 부른다.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 ‘집의 감각’을 찾으려고 산책을 나섰다. 동네를 산책하는 일은 그곳과 친해지는 데 필수다. 지도 없이 동네를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그곳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도시에서 무엇을, 언제, 어떻게 경험했는지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자 도시를 이루는 부분이다. 나의 정체성과 나의 친밀함도 도시의 일부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집에 있다’는 느낌을 만드는 과정은 개인의 삶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정착하느냐의 문제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건강한 요소들이 그 지역에 존재한다는 의미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유 공간과 자연 자원 같은 물리적 환경은 거주자들의 삶을 지원하고, 나아가 새로운 이주자들이 정착하는 데 도움을 준다.
『집의 감각』은 저자가 2013년부터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는 <집에 관한 참여 워크숍(Home for a moment)>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개인의 삶을 통해 거주자들의 삶의 방식을 관찰하고 ‘집’이라는 공간의 본질적 요소를 찾는 ‘리서치’ 프로젝트다. 첫 시작은 낯선 도시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갔던 ‘나’를 이야기의 대상자로 설정하여 ‘편안함’을 주는 공간 요소를 찾았다.
집이란 대문을 열어야 시작되는 집 ‘안’의 장소를 넘어 집 ‘밖’의 장소이기도 하다. 작가는 범위나 요소(형식)에 구체적인 제한을 두지 않고 참가자를 만났다. 참가자는 워크숍의 시작인 ‘나’의 이야기를 듣고 준비된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여 자신이 ‘집’이라고 느끼는 요소를 만들며 참여한다. 그렇게 2백여 명의 사람들을 만났고, ‘집’에 관한 140여 개 이야기를 모았다. 그 수많은 이야기를 30개 키워드로 정리했다. 30개의 키워드는 ‘집의 구성원’을 시작으로 ‘현관’을 통해 ‘집 안’을 거쳐 ‘집밖’의 시선으로 연결된다. 대화의 기록마다 참가자들의 과거(기억), 현재(일상의 삶), 그리고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가능성을 잔뜩 품은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다.
좋은 공간은 좋은 경험을 가져다준다. 그 경험은 삶을 바꿀 수 있다. 다양한 집의 모습이 더욱 많아지기를 소망하는 마음, 『집의 감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