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이 닿는 곳에 손을 뻗으면
가만히 계절을 차려주는 정원
어느 식물관찰자가 들려주는 뭉클한 자연 이야기
사람에게도 꽃에게도
삶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 있다
어릴 적부터 자연을 손으로 만지고 눈에 담으며 자라온 사람은 어떤 시각을 가질까? 김영희 작가의 머릿속에는 특별한 식물 호텔이 있다. 이 식물 호텔 안에는 각각의 식물들이 분류에 따라 층과 방을 나눈 채 투숙하고 있다. 식물에 대해 공부하기 전부터 본능적으로 나누어둔 이 식물들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며 길 위의 식물들에 관심을 기울이며 쌓아온 것이다. 지금도 숲을 오래 걷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식물을 발견하면 그 방에 종소리가 울린다. 식물들이 친구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다.
첫 책 『가끔은 숲속에 숨고 싶을 때가 있다』에서 자신의 은신처이자 놀이터로써, 또 자신을 성장시킨 부모로서의 자연을 소개했던 김영희 작가가 두번째 에세이를 펴낸다. 이 책 『사람도 꽃으로 필 거야』에는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보이는 존재들을 애써 들여다보고 함께 놀며” 작가가 체득한 공생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오감으로 접했던 자연을 저장해둔, 자신만의 머릿속 호텔의 문을 활짝 열어 독자들을 초대한다.
식물에게는 꽃만이 그들의 황금기가 아니다
예쁜 꽃이 화려하고 생기 있게 보이는 것은
사람의 시각에서 꿀을 얻으려는 곤충의 입장에서 그러할 뿐이다
김영희 작가는 숲과 길에 피어난, 특히 길에 핀 식물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왔다. 오래 자연을 벗 삼아 살아왔고 그후에는 식물에 대해 더욱 탐구하고 싶어 식물유전공학을 공부한 뒤 10년이 넘게 여러 숲과 산 등에 식물 탐사를 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국립수목원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산림교육전문가 양성과정을 강의하기도 했다. 식물들은 이렇듯 작가의 오감에 체화되어 있어, 작가가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줄 때 파릇파릇 살아 숨쉰다. 식물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눈이 반짝이고 말 마디마디가 빨라진다. 애정이 듬뿍 담긴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그 사람이 펼쳐놓은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김영희 작가가 풀어가는 이야기 속에는 식물과 곤충, 날씨의 변화와 그 사이에 오고가는 인간의 이야기가 연결고리를 만들며 이어진다. 그리하여 우리가 어떻게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해준다. 인간의 작은 손길이 자연의 순환에 미치는 영향들은 흡사 다큐멘터리처럼 읽히기도 하고 소설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이 책은 모두 세 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콧잔등에 꽃가루를 묻히고’는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자연에서 문득 느끼는 낯섦에 대한 이야기가 모여 있다. 여명이 밝아오는 때, 맡을 수 없는 동백꽃의 향기를 느끼려다 ‘툭’ 하고 꽃이 떨어지며 피어나는 소리에 놀랐던 일화나 찰나라고 생각했던 꽃의 일생을 사람의 시간으로 환산해보고는 찰나가 아님을 알게 되는 이야기 등을 실었다. 2부 ‘마음 끝에 푸른 물을 들인 채’에서는 자연과의 거리를 한 걸음 좁혀 직접 닿았던, 그리하여 새롭게 깨달은 것들을 담아놓았다.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인간의 체온이 우화를 막 끝낸 잠자리에게 미치는 영향, 독성을 품고 있는 식물을 음용했을 때 인간이 받는 영향, 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회양목’이 어떻게 만년필로 탄생할 수 있는지를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3부 ‘잠깐 머무는 중이야’는 2부에서 터득한, 자연에서 인간이 위치할 적절한 자리를 가늠하고 그 속에서 새롭게 자연과 관계를 맺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식물과 새 그리고 곤충 들은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수록되어 있어, 마치 관찰자인 작가와 나란히 서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상상하듯 읽을 수 있다. 또 첫 페이지에 각각의 학명을 함께 기록하여 우리가 단순히 ‘나무’ ‘꽃’ ‘곤충’ ‘새’ 등으로 알고 있었던 자연들의 이름을 더욱 구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도왔다.
찬란한 꽃의 시간, 식물의 한 생애와
그 주위로 가득 차오르는 수런거림들
꽃가루받이를 하려는 병꽃나무와 꿀을 탐하는 꿀벌 그리고 어리호박벌 등의 공생관계, 아버지가 논에 무심코 두고 간 농기구를 지키려 밥도 굶어가며 한곳에 머무른 강아지 메리, 안전을 위해 자신이 낳은 새끼를 집 안방으로 자꾸만 옮기는 어미 고양이 일화를 통해 우리는 각자의 목적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존재들이 어떻게 다른 존재에게 무해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작가의 이야기들은 나아가 인간이 지구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잘 지낼 수 있을지 한번쯤 생각해보게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이제는 작가와 함께 기나긴 식물 산책을 마치고 온 양 마음 끝에서부터 푸른 물이 번질 것이다. 그리고 마음 한 켠에 작은 식물 호텔이 생겨나서 계절이 넘어가는 순간에 눈에 걸리는 꽃과 풀들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 안에 새로운 투숙객들을 들이게 될 것이다. 그렇게 가득찬 우리의 마음은 비로소 제철에 피어나는 꽃처럼 풍성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