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를 뿌리고 물을 주자
그리고, 기다리자!
흐드러진 봄날도 눈 내리던 겨울밤도
정원을 가꾸며 도자기를 빚던 나날
자연 속에서 땀흘려 일하며 발견한 아름다움
부족할수록 넉넉하다. 고단해도 뿌듯하다. 계절의 호흡에 따라 사는 한 해 한 해의 순환은 땅에 단단히 발 딛고 살아가는 실감을 주었다. 스물세 해가 흘렀다. 도예가는 숲속에 작업실을 짓고 땅을 일구며 산다.
『숲속의 사계절』은 도예가 지숙경이 23년 동안 경기도 칠장산 아래에서 도자기를 빚으며 사시사철 정원을 일군 기록을 담은 산문집이다. 그는 흙과 씨름하고 흙을 달래다 흙을 닮아간다. 산속 집을 둘러싼 그의 정원은 1000여 평이 넘어 밭에 가깝다. 양귀비, 작약, 히아신스, 튤립, 벚나무. 철철이 피고 지는 꽃을 돌보고 잡초 뽑고 채소를 가꾸다보면 하루해가 짧다. 운명처럼 이끌려 시작한 도자기 작업도 흙의 일이다. 빚고 굽고 유약을 발라 오묘한 색을 기다리는 일은 거듭할수록 미묘하고 매번 마음 떨리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고집 센 듯해도 결실을 안겨주는 흙의 마음을. 조급해하며 보채지 않아도 싹을 틔워 올리는 땅의 약속을.
그는 조금 고집스레 땅을 일구고 땔감을 패고 손으로 도자기 작업을 하며 자립의 삶을 이어나간다. 스물세 해 동안 그래왔으니 이제 실험이라기보단 지속 가능한 정착이다. 그가 보여주는 삶은 ‘이렇게 살아도 됨’의 작은 증명이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바쁘고, 채우기도 전에 보여주고 전시하느라 자꾸 가난해지는 우리에게 시원한 샘물이 된다. 굳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호수로 떠날 필요가 있을까.
계절이 주는 선물,
보채지 않아도
순리대로 산다. 절기를 따르며 계절과 함께 산다. 오지 않은 열매를 보채지 않고 내 할일 하며 기다린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사랑한다.
자연 속에서는 이런 원칙이 미사여구가 아니다. 먹을 것을 얻고 꽃을 피우기 위해선 따를 수밖에 없는 생활의 습관이다. 급한 마음에 씨앗 심고 물 잔뜩 준다고 당장 내일 꽃피는 게 아니지 않은가. 기다려야 한다. 햇살과 온도와 비와 시간을.
저자는 처음, 숲속에 집을 짓고 텃밭을 마련하며 자급자족에 가까운 생활을 꿈꾸었다. 푸성귀를 심고 봄에는 나물을 채집하고 오죽하면 땔감까지 산에서 간벌한 나무를 끌고 올 정도였다. 덜어낼수록 풍요로워지는 삶을 믿었다.
자연에 기대어 살려면 기다림을 배워야 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다 때가 있다”고. 도시인에겐 한낱 수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이 말이 땅을 일구는 그에겐 진실이다. 때가 되면 씨앗 심고 풀 뽑아야 한다. 어느 하나 때를 놓치면 안 되기에 거무튀튀한 촌부의 얼굴이 됐지만 하나 억울하지 않다. 땅은 시간이 지나면 때맞춰 선물을 돌려준다.
흙을 빚다
도자기를 굽다
그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작업에 알맞게 흙이 반죽되는 토련기 대신 직접 흙을 밟아서 꼬막을 밀어서 쓰고, 디지털 설정으로 온도를 조절하는 전기 가마나 기름 가마 대신 도끼로 장작을 패고 그 장작 하나하나를 집어넣어 작업자의 눈과 경험으로 가마 온도를 결정하는 장작 가마를 땐다.
매년 10월 가을 가마 소성(도자기를 가마에 넣고 불을 때는 일)은 어쩌면 1년 도자기 농사를 마무리하는 의식에 가깝다. 가마 안에 요철이 생기도록 도자기를 하나하나 놓은 다음 패놓은 소나무 장작을 가마 칸에 던져넣으며 서른 시간 동안 뜬눈으로 도자기 곁을 지킨다. 가마를 열어 완성된 도자기를 보면 흡족할 때도 있고 마음에 차지 않을 때도 있지만 모든 게 예측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자연의 이치 아닐까? 대신 작가인 내 마음엔 안 들어도 다른 누군가에겐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점!
토마토 수프를 먹는 밤
자발적 은둔자의 위트 넘치는 숲속 생활
홀로 있지만 적막하지 않다. 숲속 생활엔 어려움도 있지만 대개 생기와 위트가 넘친다. 너푸리, 나비, 짝눈이…… 함께하는 개, 고양이가 나눠주는 온기로 포근하다. 눈 내린 겨울 산비탈에서 썰매도 무엇도 없이 엉덩이로 폭신한 눈을 미끄럼 타고 내려오는 재미는 숲속 생활자만 아는 즐거움 아닐까?
서로 의지하고 도울 수밖에 없는 이웃의 이야기도 정겹다. 나보다 더 풀 매기를 독려하는 지연이 할머니는 내가 잠시 허리라도 펼라치면 “아니, 그래가지고 언제 다 할겨, 사장님! 해 떨어지기 전에 빨리빨리 혀야지” 꾸지람이 호되다. 알고 보면 홀로 자식들 건사하며 쉼없이 일해야 했던 사연 있는 속 깊은 분이다. 손끝 매운 앞집 장금이 김명자 선생도 막역한 이웃사촌. 종종 손 야문 그분의 협찬을 받아 식탁을 차려낸다. 김치에서 떡볶이까지 정말 끝내준다. 고추김치와 초여름 참외장아찌는 그분 레시피다.
때로는 고립이 주는 기쁨을 마음껏 누린다. 눈이 무진 내린 어느 새해에는 폭설을 핑계 삼아 고향 방문도 취소하고 집에서 홀로 따끈한 떡국을 먹었다. 숲에 산다고 인간 보편의 근심이 어찌 없을까. 그러나 눈 치우고 정원 일 하고 하루종일 물레와 씨름하며 육체노동을 하고 나면 맛있게 밥 먹고 이내 잠든다.
처음, 도로가 포장돼 있지 않아 길도 분간하기 힘든 이곳에 집을 지어 홀로 살겠다고 나섰을 때 어머니는 걱정하셨다. 어느 날 해질녘 걸려온 전화. “좋으냐? 행복하니?” 엄마의 나직한 음성이었다. “내가 복이 참 많은가봐요, 이런 곳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유.” 엄마는 전화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됐다. 니가 행복하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