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1564~1593)
▶ 윌리엄 셰익스피어에 비견되는 영국 캔터베리(Canterbury) 출신의 극작가 : 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는 1564년 2월 26일 영국 캔터베리(Canterbury)에서 구두장인 존 말로우(shoemaker John Marlowe)와 캐서린(Katherine)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세인트 조지 교회(St George's Church, Canterbury)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가 세례를 받은 교회 탑은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으며, 캔터베리에는 그의 이름을 딴 박물관(The Marlowe Theatre), 공연장(The Marlowe Kit), 방탈출 게임방(Escape Room: Marlowe's Ghost) 등이 있습니다. 그와 동시대 활동한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년~1616)의 생일은 동년 4월 26일로 딱 2개월 차이입니다. 극장 인근에 더 말로 모누멘트 캔터베리(The Marlowe Monument Canterbury)와 말로 메모리얼(Marlowe Memorial)이 설치되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말로는 킹스 스쿨(The King's School, Canterbury)과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Corpus Christi College, Cambridge)를 모두 장학금을 받고 다녔을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였으며, 1584년 예술 학사 학위(Bachelor of Arts degree)에 이어 석사 학위(Master of Arts degree)까지 취득하였습니다.
▶ 크리스토퍼 말로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1616)의 연결고리?! : 영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극작가로 꼽히는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1616)는 평생 39편의 걸작을 잇달아 발표하였습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업적 때문에 그를 연구하는 이들도 많고, 그만큼 그를 둘러싼 의혹 또한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가 동시대 영국에서 활동한 크리스토퍼 말로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말로의 활동 기간이 지나치게 짧았고 작품도 적었을 뿐더러 단명함에 따라 ‘잊혀진 작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여러 측면에서 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학자들이 인정하는 사실로 가장 대표적인 4 작품만 꼽아봐도 주제의식과 소재에 있어서 유사성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햄릿(Hamlet,1609)에는 디도, 카르타고의 여왕(The Tragedy of Dido Queene of Carthage,1585~1587)의 주인공 디도(Dido)가 거론됩니다.
▶ 엘리자베스 시대의 저명한 극작가(the pre-eminent Elizabethan playwright) : 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가 집필한 극본은 미완성 유고 영웅과 린더(Hero and Leander,1598)를 제외하면 단 여섯 편에 불과하지만, 당대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형식적으로 무운시(Blank verse)로 쓰인 최초의 영국 연극(the first English play written in blank verse)이란 특징을 지니며, 크리스토퍼의 시대는 곧 엘리자베스 시대 극장의 성숙기(the beginning of the mature phase of the Elizabethan theatre)를 열었다고 평가됩니다.
▶ “All beasts are happy,
For, when they die,
Their souls are soon dissolv'd in elements;
But mine must live still to be plagu'd in hell.
Curs'd be the parents that engender'd me!
No, Faustus, curse thyself, curse Lucifer
That hath depriv'd thee of the joys of heaven.”
▷ “모든 짐승은 행복합니다.
그들이 죽으면요
그들의 영혼은 곧 원소로 분해됩니다.
하지만 지옥에 떨어지기 위해서는 내 것이 가만히 있어야 해요.
저주라면 날 자극하는 부모가 될 거예요!
아뇨, 파우스터스, 자신을 저주하고 루시퍼를 저주해요
그것은 하늘의 기쁨을 빼앗아갔어요.”
▶ 어드미럴스 맨(Admiral's Men) 전속 배우 에드워드 알랭(Edward Alleyn) 또한 그의 연극에 주연 배우로 수차례 등장하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크리스토퍼의 이름을 널리 알린 탬벌레인 대왕(Tamburlaine the Great,1587~1588)을 시작으로 몰타의 유대인(The Jew of Malta,1589~1590), 포스터스 박사의 비극(The Tragical History of Doctor Faustus,1588~1592)에 연달아 출연하였습니다. 그는 매우 키가 컸는데, 크리스터포 작품의 ‘건방진 캐릭터’와 잘 어울려 관객들의 찬사를 자아냈습니다.
▶ 크리스토퍼 말로는 왜 2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을까? : 말로는 술집에서 일어난 시비 끝의 싸움으로 인해 불과 29세의 나이로 단명하였습니다. 그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못지않은 극작가로써 활동할 수 있는 천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짧은 활동 경력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죽음을 놓고 다양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1593년 작성된 부실한 사망신고서는 오히려 그의 죽음에 대한 의혹만 부추겼더랬죠. 그가 비밀 요원으로 일하던 로버트 세실(Robert Cecil,1563~1612)의 정적 에섹스 공 로버트 데베룩스(Robert Devereux, Duke of Essex)가 보낸 밀정 살해설. 에드워드 2세(Edward the Second, 1592)란 작품에 분노한 영국 왕실 살해설, 파리의 대학살(Massacre at Paris, 1593)을 통해 고발한 교회 살해설, 다른 극작가들의 살해설 등등……. 사후 세인트 니콜라스 교회(St Nicholas's church, Deptford)에 안장되었으며, 웨스터 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에 그를 기념하는 창문이 설치되었습니다. 그의 전집은 영국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발간되었습니다.
▶ 크리스토퍼 말로는 스파이?! : 그의 일대기에 관한 떡밥 중 하나는 크리스토퍼가 프란시스 월싱엄 경(Sir Francis Walsingham,1532~1590) 혹은 로버트 세실(Robert Cecil, 1563~1612)의 비밀 요원(secret agent)으로 활동했다는 의혹입니다.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으나, 추밀원(the Privy Council)의 압력으로 무사히 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의 행보 이면에 무언가가 있으리란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말로는 1584년부터 1585년까지 장기간 결석을 하였을 뿐 아니라, 그의 장학금을 초과하는 개인 식료품 구매 기록이 발굴된 바 있습니다.
▶ “Hell hath no limits, nor is circumscribed
In one self place, for where we are is hell,
And where hell is must we ever be.”
▷ “지옥은 한계가 없고, 제한도 없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지옥이니까
그리고 지옥이 있는 곳에 우리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