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라는 저마다 가장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늘 어린이 가까이 있었던 어른의 이야기
어린이와 삐뚤빼뚤 반나절의 팀플레이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우리의 열심과 진심
알쏭달쏭 맞춤법의 나라에서 길을 헤매는,
수학시간 조그맣게 터져나온 “아하” 소리를 듣는,
텅 빈 운동장을 보며 왠지 허전한 마음을 달래는,
아이들과 목숨을 건 공기놀이 한판을 펼치다가도
가끔은 어른의 세계로 얼른 달려가고 싶은
교실생활자의 울퉁불퉁 나날들.
학생으로 16년, 교사로 23년. 인생 절반 이상의 점심을 학교에서 먹은 ‘교실생활자’이자 『방학 탐구 생활』 『최기봉을 찾아라!』 등을 쓴 베스트셀러 동화작가 김선정의 첫 에세이 『너와 나의 점심시간』이 출간되었다. 그간 현실적이고 유쾌한 인물들과 힘 있는 주제의 동화로 어린이 독자들을 만나온 김선정 작가가 이번엔 교실생활자로서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처음 꺼내 보인다. 23년 초등학교 교사 경력에 마침표를 찍으며 그동안 교실에서, 도서관에서, 과학실에서 틈틈이 써두었던 학교생활의 단상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어린이의 학교생활을 촘촘히 채우는 매 순간의 노력들,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알 수 있는 교실 속 열심과 진심의 장면들을 교사의 시점으로 생동감 있게 담아낸 교실생활기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열심이었던 날들은 언제일까. ‘학교’라는 거대하고 낯선 세상에 조심조심 발을 내딛고 정신없이 단체생활에 적응해나가야 했던 초등학생 시절이 아닐까? 오로지 내가 나로서 주목받던 시절, 내 감정과 표현이 전부였던 유치원 시절을 벗어나, 규칙과 인내를 배우며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하는 그 시절은 말 못할 난처함과 어려움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지금은 희미해졌을 그 어린 날들이 책 속에서 생생하게 펼쳐진다. 오늘은 무슨 메뉴가 나올지 기대되는 점심시간, 문제풀이를 시키면 어떡하나 두려운 수학시간, 마치 과학자가 된 듯 근엄한 표정을 짓게 되는 과학시간. 과목마다 반갑고 익숙한 감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동화작가인 저자의 재치 있고 흡인력 있는 문장이 우리를 단번에 교실로 데려가 교실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하나하나 밝혀준다.
교사에게는 일터, 어린이에게는 삶터
교실에서 함께 생활하며 함께 무럭무럭 성장한다는 것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어린이 민원 상담실로 출근해 그 대혼란의 틈바구니 속에서 끝없이 잔소리를 하는 사람. 초등 교사인 저자는 자신의 직업을 이렇게 소개한다. 제각기 다른 성격의 어린이들을 한데 모아 딱딱한 의자에 앉혀 매일 반나절의 일정을 함께 보내야 하니, 교실생활이란 어린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만만치 않은 과업의 연속이다. 훌륭한 선생님처럼 능숙하게 수업을 이끌고 싶지만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는 날은 잘 없다. 주목받고 싶어 자꾸 엉뚱한 질문을 하는 아이, 자기 눈에 거슬리면 무엇이든 고발하는 아이, 선생님이 말할 때 똑같은 속도로 혼잣말을 하는 아이 등 교실 속 아이들은 다양한 행동으로 선생님을 시험에 빠뜨린다. 가끔 체력이 올라오는 날에는 어린이의 심리적 허기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대부분은 실패하고 아이들과 각축전을 벌이다 씁쓸하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렇게 후회하고 마음을 다잡아도 다음날 실패와 후회를 또다시 반복하며 어쩐지 완벽한 선생님의 모습과는 점점 멀어져 간다.
교실생활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일에는 속 시원한 결말이나 해답이 없다. 툭하면 불거지는 돈 문제부터 점심시간 운동장 축구 자리싸움, 내가 좋아하는 아이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문제, 바뀌고 또 바뀌는 관계의 양상에 지치는 마음까지, 교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은 사실 하나하나 복잡한 사정을 품고 있다. 이때 교실에서 함께 생활하는 어른이 해야 할 일은 그 사정을 헤아려주는 것, 아이 스스로도 몰랐을 마음과 의도를 좋은 쪽으로 해석해주며 다음으로 나아가자고 손 내미는 것이다. 때로는 장난기 가득한 친구의 모습으로, 때로는 엄격한 선생님의 모습으로 상황에 따라 자리를 바꾸어가며 교실에서 일어나는 각종 민원 사건들을 차근차근 해결하는 저자의 진중한 태도에서 신뢰가 느껴진다.
사람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회에 적응하며 자기 자신을 만들어나간다. 그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은 그 아이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폭도 넓힌다. 결코 헛되고 무용한 견딤이 아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고 함께 살 수 있다는 것, 교실은 그것을 배우는 곳이니까. (본문 중에서)
그렇게 교실에서 부대끼다보면 아이들과 서로 상처를 주고받을 때도 있다. 이때 교사로서 느끼는 어려움과 부끄러움 또한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솔직하게 드러난다. 아픈 시행착오를 거치며 경력이 쌓여도 아이들 마음에 다가가는 일은 늘 조심스럽고, 모두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교실생활이란 결코 쉽지 않음에 대해 털어놓는다. 어린이의 사정을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해 꾸짖거나 말뿐인 격려로 사건을 일단락하지 않고, 함께 생활하는 어른의 책임을 다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교사 또한 하루하루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친구 없이 혼자인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 교실 내 역할분담, 온갖 치료를 받아 교실로 편입되는 아이들 등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지내는 어른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봤을 주제들에 저자의 경험치가 더해져 여러 생각할 거리들을 안겨준다.
지금도 교실생활자이거나, 한때 교실생활자였던
우리 모두를 학교로 데려가는 책
90년대 후반에 교사가 되어 코로나 팬데믹 시대까지 학교에서 일하며 학교 문화와 교실 풍경의 변화를 몸소 느껴온 저자이기에 풀어낼 수 있는 학교 이야기의 스펙트럼 또한 넓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가정방문과 ‘놀토’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는 달라진 환경에서 우리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생각해보게 하고, 학교폭력이 난무했던 시절의 이야기는 오늘의 불평등을 더 예민하게 감각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갖게 한다. 한편 세월이 흘러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점심시간의 풍경과 마니또를 향한 열광, 정신없는 체험학습과 뭉클한 졸업식의 스케치는 우리에게 익숙한 감정을 일깨우며 옛 추억들을 소환해 웃고 울게 한다.
김성라 작가의 포근한 일러스트와 함께 교실생활자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보면 한동안 잊고 살았던 교실생활의 기억들이 방울방울 떠오를 것이다. 어린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른들에게는 현실적인 공감을 선사하고, 한때 어린이였던 모든 어른들에게는 어린 시절 이해받고 싶었던 진심들을 살뜰히 짚어주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학교라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애쓰며 성장한 우리 모두에게 수고했다고, 그리고 지금도 애쓰고 있을 어린이들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자고 말을 건네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