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의 세계는 이미 우리 안에 있다
불완전한 뇌가 최적화의 지도를 그리는 방법
인간은 완전한 신진대사 기관을 갖추고 세상에 태어난다. 하지만 신체와 다르게 인간의 뇌는 프로그램된 채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신경회로를 다듬는다. 뇌의 지도는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겪는 경험들로 하나씩 완성되는 것이다. 가능성으로 가득한 세계를 따라 걸으며 우리는 많은 질문과 만날 것이다. 팔 한쪽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세계 최고의 궁사가 되었을까? 우리는 왜 자면서 꿈을 꾸고 꿈은 행성의 자전과 무슨 상관인가? 기억의 적은 세월이 아니라 다른 기억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왜 촉각과 청각처럼 다른 감각이 더 잘 발달했을까? 서번트 증후군이 있는 아이들이 루빅큐브는 맞추면서 친구와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뇌가 반쪽인 아이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저자 데이비드 이글먼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한마디로 뇌의 무한한 가능성이다. 뇌 가소성은 신경학계에서 많이 쓰이는 말로, 이글먼은 플라스틱처럼 한번 형태가 잡히면 영원히 유지된다는 뇌 가소성이라는 용어에 한계를 느끼고 여기서 한 걸음 더 확장된 개념으로 ‘생후배선livewired’을 제시한다. 평생에 걸쳐 스스로를 바꿔나가는 뇌의 무한한 가능성을 한층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본 것으로, 바로 이 지점이 이 책의 차별점이다. ‘뇌에는 종점이 없다.’
《우리는 각자의 세상이 된다》는 한마디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계속해서 증명하는 과정이다. 우리 뇌가 끊임없이 회로를 바꾸는 모습을 실제 삶과 미래에까지 연결 지어 제시하는 이 책은, 신경회로의 재편으로 뇌가 최적화의 길을 찾기만 한다면 이 원리를 그대로 우리 미래 기술에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제시한다. 아마추어의 뇌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반면, 전문가의 뇌는 놀라울 정도로 잠잠한 이유가 바로 뇌의 최적화와 관련돼 있다. 전문가의 뇌는 이미 특화된 신경회로를 갖추고 있어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뇌의 지도는 미리 그려져 있지 않다
뇌가 반쪽인 아이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매슈는 희귀한 만성 염증성 질환을 진단받고 여섯 살에 뇌의 절반을 제거하는 반구절제술을 받았다. 수술 직후에는 몸을 제어하지 못했지만 물리치료와 언어치료를 받은 결과 매슈는 서서히 회복했고 나이에 맞는 발달단계로 돌아왔다. 어른이 된 지금, 오른손을 잘 쓰지 못하고 다리를 살짝 절기는 하지만 이를 제외하곤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를 처음 보는 사람은 그의 뇌에 반구 하나가 없다는 사실을 짐작도 못한다.
뇌 한쪽이 없이 태어난 앨리스의 사례도 있다. 앨리스는 태어날 때부터 뇌의 좌반구밖에 없었는데, 왼손을 섬세하게 쓰지 못하는 것 외에 시력도 정상이고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보통 두 반구에 걸쳐 분포돼 있는 신경회로가 어떻게 연결된 건지 알아보니, 왼쪽과 오른쪽에서 뻗은 섬유들이 모두 좌반구로 연결되어 있었다. 두 경우 모두 놀라운 뇌의 생후배선 능력으로 절반밖에 안 되는 뇌가 남은 기능을 모두 처리한 것이다. 이 점이 바로 뇌가 컴퓨터와 다른 지점이다. 스마트폰에서 전자장치를 절반 잘라낸다면 작동이 불가할 테지만, 우리 뇌는 절반의 뇌가 회로를 재편해 스스로 부족한 기능을 보충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뇌의 지도를 그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과 주변 환경이다. 아인슈타인과 비슷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모두가 아인슈타인이 되는 것이 아니듯, 뇌가 올바르게 발달하려면 좋은 환경이 필요하다. 뇌가 발달하려면 적당한 시기에 적절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어린 시절 제대로 된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고립되어 사회적 결핍을 겪은 이들의 뇌는 정상적인 발달경로에서 탈선한다. 아주 빠르게 문이 닫혀버리는 이 시기를 놓치면, 문을 다시 열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생후배선으로 미래를 그리는 방법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시각장애인은 청각에 뛰어나다. 감각 하나가 사라지면 다른 감각은 재빠르게 그 자리를 차지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신경 재배치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점이다. 뇌는 차분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더 넓은 영역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힘입어 이글먼은 아주 재미있는 가설을 하나 내놓는다. 바로 우리가 꿈을 꾸는 이유다. 밤이 되면 시각은 어둠 속에 던져진다. 시각을 제외한 촉각, 청각, 미각, 후각에는 영향이 없다. 그 결과 시각 피질은 매일 밤 다른 감각들에 점령당할 위험에 처하고, 자신의 영토를 뺏기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렘수면 중 시각을 사용하고자 꿈을 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역 재배치와 그 속도를 생각하면 그럴듯한 가설이다. 그렇다면 피질이 그만큼 유연하다면 과연 그 한계는 어디인가? 우리는 이를 미래에 어떤 식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
그 핵심은 ‘감각 대체’에 있다. 청각에 문제가 있다면 청각 시스템을 어떻게 고칠지 연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데이비드 이글먼은 생각을 조금 달리해 생후배선의 시각에서 감각 대체 방법을 연구했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이 청각이 아니라 촉각으로 세계를 파악하게 한다는 발상으로 주위의 소리를 포착해 피부에 부착된 진동 모터로 느낄 수 있게 하는 조끼와 손목 밴드 등을 발명한 것이다. 이런 모든 기술의 핵심은 뇌의 유연성이다. 인간이 만든 컴퓨터 장치만 있다면 뇌는 역동적으로 스스로 재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뇌에 새로운 능력을 부여할 수 있다.
삶의 짜릿함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 중인가에 있다
그렇다면 뇌 발달에 나이가 정말 중요한 걸까? 나이는 중요하다.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시각 피질은 다른 감각에 완전히 점령당한다. 다섯 살에 시각을 잃었다면 점령 범위가 덜하고, 열 살 이후라면 점령된 범위가 훨씬 더 작다. 뇌가 나이를 먹을수록 유연성이 떨어져 재배치가 어려워지는 탓이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이런 삶의 궤적들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려준다. 아기는 가지고 태어나는 기술이 거의 없고 가소성이 대단히 큰 반면, 어른은 유연성을 희생하는 대신 특정한 일에 통달하게 된다는 것. 적응력과 효율 사이에 거래가 이루어져, 우리 뇌는 특정한 작업을 잘 수행하게 되는 대가로 다른 일을 하는 능력을 조금 잃어버린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의 팬이 그런 연주 솜씨를 가질 수 있다면 평생이라도 바치겠다고 말하자 펄먼이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라고 말했듯이, 한 가지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다른 길로 통하는 문을 닫아야 한다. 인생은 한 번뿐이므로, 어떤 일에 헌신하는가에 따라 특정한 길을 가게 되고 나머지 길은 모두 영원히 가지 않은 길로 남는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세계로 뻗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