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1883~1931)
▶ 레바논인(Lebanese)으로 태어나, 미국인(American)으로 죽은 이민자 시인(1883~1931) : 지브란 칼릴 지브란(Gibran Khalil Gibran), 일명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은 지중해 동쪽 연안의 레바논(Lebanon) 브샤리(Bsharri)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Ottoman)의 지배 하에 있던 고향땅에서의 생활은 고달팠고, 이에 그의 가족은 1895년 어머니 친척이 거주하는 미국으로 옮겨 레바논계 미국인으로써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가족은 당시 시리아-레바니아계 미국인(Syrian-Lebanese-American community)이 밀집한 미국 보스톤에 둥지를 틀었고,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은 보스톤의 조시아 퀸시 학교 보스턴(Josiah Quincy School Boston)을 시작으로 레바논 베이루트(Beirut)의 천주교 신학교 지혜의 대학(Coll?ge de la Sagesse), 프랑스 파리 아카데미 줄리안(Acad?mie Julia, n, 1908~1910) 등을 오가며 창작 활동에 전념하였습니다. 특히 파리에서는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Fran?ois-Auguste-Ren? Rodin, 1840~1917)과 교류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 대서양 양편(both sides of the Atlantic Ocean)을 오가는 예술가 : 칼릴 지브란은 지혜의 대학(Coll?ge de la Sagesse)에서는 동료들과 학생 잡지를 만들어 대학 시인(college poet)으로 집필하였을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미국과 유럽 뿐 아니라, (가족들의 권유로) 자신의 뿌리인 레바논 베이루트(Beirut)에서 아랍 문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대서양 양편(both sides of the Atlantic Ocean)을 오가는 그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는 싹을 틔우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미국행에 동참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레바논에 머물렀기 때문에, 그는 오랜만에 찾은 고향에서도 낯설지 않았을 것입니다.
▶ 칼릴 지브란의 영혼의 동반자, 메리 하스켈(Mary Haskell, 1873~1964) : 1904년 미국 보스톤의 한 스튜디오(Day's studio)에서 소설이 아닌 그림으로 먼저 등단하였으며, 당시 인연을 맺은 여학교 교장(the headmistress of a girls' school) 메리 하스켈(Mary Haskell)은 그의 작가로써의 삶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메리 하스켈(Mary Haskell)은 칼릴 지브란의 친구이자 후원자로써 그의 생애동안 재정적인 지원 뿐 아니라, 그가 영어로 집필한 글의 편집을 맡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둘은 1910년경 10살이 나이 차이를 극복한 작가와 편집자, 예술가와 후원자로써 교류하였으나,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메리 하스켈(Mary Haskell)은 자신이 평생 수집한 컬렉션 백여 점을 1950년 미국 조지아 주의 Telfair Museums에 기증하였으며, 이는 최대 규모의 지브란 컬렉션(the largest public collection of Gibran's visual art)으로 꼽힙니다.
▶ 동양과 서양 사이 그 어딘가, 지브라니즘(Gibranism) : 첫 책 음악 예술의 프로필(A Profile of the Art of Music, 1905)은 1905년 뉴욕에서 영어가 아닌 모국의 아랍어로 출간하였으며, 1918년을 기점으로 영문 작품을 다수 발표하였습니다. 이로써 그의 작품은 아랍문화권을 초월해 영미의 독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의 대표작 예언자(The Prophet, 1923)는 전 세계 1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을 정도로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는 역사상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책( the top ten most translated books in history) 10위권에 해당하는 대기록이자,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the best-selling books of the twentieth century in the United States)입니다. 특히 반교권주의(Anti-clericalism),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s), 반문화(Counterculture) 등 기존의 세력에 반항하는 젊은이와 혁명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대 최고의 뮤지션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1935~1977)를 비롯해 비틀즈(Beatles, 1960~1970), 조니 캐시(Johnny Cash, 1932~2003),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1947~2016) 등 당대의 예술가에게 영감을 선사하였습니다.
▶ 칼릴 지브란의 대표작, 예언자(The Prophet, 1923) : 칼릴 지브란은 미국으로 이민 온 초창기에 아랍어로 집필하였으나, 1918년을 경계로 영어로 직접 글을 쓰기 시작하였고 예언자는 무려 20여 년간의 구상을 거쳐 출간한 작품으로도 유명합니다. 1923년 출간된 예언자는 훗날 지브라니즘(Gibranism)이라 명명되는 칼릴 지브란 특유의 지혜가 오롯이 담긴 작품으로 ‘20세기의 성서’라 불릴 정도로 격찬 받았습니다. 첫 책 음악 예술의 프로필(A Profile of the Art of Music, 1905)부터 숨을 거둔 1931년 대지의 신(The Earth Gods, 1931)까지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전무후무한 판매량으로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칼릴 지브란의 대표작’입니다. 알무스타파(Almustafa)란 예언자(The Prophet)의 목소리로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26가지의 화두 - 사랑, 결혼, 자녀, 감정, 우정, 종교, 죽음 등을 문답의 방식으로 들려주는 작품으로, 칼릴 지브란이 직접 그린 그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레바논의 문학 영웅(literary hero in Lebanon) : 그는 류머티즘과 간경화에 시달렸고 1931년 대지의 신(The Earth Gods, 1931)을 출간한 후 다음달 4월, 48세의 나이로 영면하였습니다. 사후에는 그의 유언에 따라 모든 인세를 고국에 기부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지브란 박물관(Gibran Museum)이 설립되었으며 그의 시신 또한 고향땅 레바논으로 옮겨졌습니다. 그의 가족과 메리 하스켈은 레바논의 한 수도원(St. Serge Monastery)을 사들여 그의 문학박물관으로 조성하였습니다. 미국 국적을 취득했을 뿐 아니라 생의 절반 이상을 미국에서 보냈습니다만, 자신의 고향을 잊지 않았기에 그를 레바논의 문학 영웅(literary hero in Lebanon)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지브란 박물관(Gibran Museum)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유언이 새겨져 있습니다. "The epitaph I wish to be written on my tomb: 'I am alive, like you. And I now stand beside you. Close your eyes and look around, you will see me in front of you'. "제 무덤에 제가 쓰고 싶은 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도 당신처럼 살아있어요 그리고 나는 지금 당신 옆에 서 있습니다. 눈을 감고 주위를 둘러보세요, 제가 당신 앞에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