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것은 일이었고 아버지는 일꾼이었다.
죽는 것은 무시무시했고 아버지는 죽고 있었다.”
필립 로스 에세이 국내 첫 출간
거장이 그려낸, 죽음이라는 장엄하고도 격정적인 전투!
예측 불허의 천재적인 서사 감각은 신이 필립 로스에게 내린 선물이다.
_뉴욕 타임스
『아버지의 유산』은 작가 필립 로스가 뇌졸중에 걸린 아버지의 투병과 죽음을 지켜보는 과정을 기록한 자전적 에세이다.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목가』 『에브리맨』 『휴먼 스테인』 등 많은 소설이 국내에 번역되어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지만 에세이가 국내에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버지의 유산』은 1992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해마다 노벨문학상의 강력한 수상 후보로 점쳐지고, 미국 언론으로부터 “우리 시대 가장 뛰어난 소설가”(『뉴요커』)라는 평을 듣는 필립 로스는 1950년대 말 첫 소설집 『굿바이, 콜럼버스』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래 퓰리처상, 펜/포크너 상, 펜/나보코프 상, 펜/솔 벨로 상, 미국 예술문학아카데미 골드 메달,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그 문학적 성취를 증명했다. 또한 그는 미국 비영리 단체인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에 최초로 이름을 올린 생존 작가로, 현재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손꼽힌다.
“필립 로스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걸작”(『뉴욕 리뷰 오브 북스』)이라는 평을 들은 『아버지의 유산』은 전기적 차원의 자전 에세이를 넘어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가 번뜩이는, 필립 로스의 작품 세계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작품이다. 전작 『에브리맨』을 통해 비정할 정도의 냉철한 시선으로 죽음에 대해 그린 바 있는 필립 로스는, 이번 『아버지의 유산』에서는 그동안 소설에서 만나왔던 것과는 조금 다른 따뜻하고 다정한 시선으로, 죽음이란 한 세계가 끝나는 것임과 동시에 가장 장엄하고도 위대한 전투이며 가장 치열한 형태의 ‘삶’임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개별적인 경험에서 이 세상 모든 아버지, 나아가 모든 인간의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경험으로 확장해나가는 탁월한 서사 감각은 읽는 이에게 강렬한 울림과 감동을 전해준다. 그동안 인간이 직면한 삶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폭풍 같은 서사에 단단하게 쌓아올리는 작업을 해온 필립 로스는 지금까지 소설에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에세이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능숙하게 그 일을 성공해 보인다.
“그래. 아버지는 정말이지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기품 있는 전투를 해왔어.“
필립 로스의 아버지 허먼 로스는 여든여섯이 되던 해에 뇌졸중 판정을 받는다.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인 이민자로서 강인한 인내심을 갖고 한 가정을 이끌어온 그는, 메트로폴리탄생명에서 보험 판매원으로 시작해 근면함만을 무기로 지점장까지 올라간 인물이다. 필립은 아버지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깊은 절망에 빠지고, 뇌를 점령한 종양으로 인해 이미 얼굴의 절반이 마비된 아버지는 빠른 속도로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그는 우연히 찾아가게 된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자신이 결국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할 때가 되었음을, 그리고 그 일을 결코 간단히 받아들일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유산』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아들 필립이 노인이 된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는 이야기이다. 여러 의사를 찾아가 검사를 받은 아버지는 끔찍한 수술을 견뎌내지 않으면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수술을 한다고 해도 살아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잃지 않는다. 그는 고통스러운 검사 과정과 수술 방법에 대해 들으면서도 그것에서 도망치려 하지 않고 똑바로 자신의 상태를 마주한다. 그것은 허먼 로스라는 사람이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보였던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 자신의 흐트러짐을 허락하지 않은 엄중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렇게 치열한 삶을 살아온 한 사람이 죽음에 대항해 격렬히 투쟁하는 모습은 자못 숭고하기까지 하다. 지인들은 물론 의사마저도 아버지가 살 만큼 살았다고, 이제는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때라고 필립을 위로하지만 필립은 아버지의 삶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통해, 죽음이란 이십대의 젊은이에게나 여든여섯의 노인에게나 같은 무게로 다가오는 것임을, 같은 크기의 두려움과 같은 크기의 절망을 감내해야 하는 일임을 깨닫는다. 죽음은 무자비하지만, 그만큼 또 누구에게나 공정한 것임을.
아버지는 뇌졸중에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유대인 공동체인 Y에 다니며 일상을 유지한다. 아내의 죽음에 대해 죄책감에 시달리며 깊은 슬픔을 느끼는 한편, 새로운 사랑을 만나기도 하고, 내성적인 친구를 변화시키려 노력하기도 한다. 눈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된 노인을 보살피기도 하고, 같은 병실에 입원한 중국인을 보고 마음을 다해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는 다가오는 죽음을 눈앞에 두었음에도, 최선을 다해 생생한 삶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