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대리점을 하느라 바빴던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한 달 전 큰딸이 글자를 하나도 못 읽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초속성 단기 과외를 받게 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부모님이 아는 아저씨 집에서 특훈을 하고 문자의 세계에 입문했다. 학창 시절 내내 유일한 취미인 소설 읽기에 빠져 있다가 대학교 졸업반이 돼서야 학점은 엉망이고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음을 깨닫고 뉴질랜드로 도피성 어학연수를 떠났다. 오클랜드 중고 서점에서 우연히 스티븐 킹의 《쿠조》를 샀다가 밤을 새워서 읽고 영어 원서라는 두 번째 문자의 세계에 입문했다. 이후 번역가가 되어 읽고 싶은 소설을 원서로 실컷 읽고 번역하는 가난한 성덕의 삶을 살다가 제대로 영국 문학을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뒤늦게 영국 브루넬 대학원에 입학했다. 배움을 추구하기 위해 물 건너 영국까지 갔지만 대학원에서는 토론식 수업만 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매일 눈물을 흘리며 두꺼운 영어 소설을 찾아 읽고 수업 준비를 했다. 그러다가 영국인들에게서 특유의 민족성 비슷한 것을 감지하고, 그 힌트를 찾기 위해 19세기 영국 여성 작가들의 소설을 연구해보겠다는 무모한 야심을 품었다. 어렵기 그지없는 19세기 영어를 공부하며 다시 한 번 피눈물을 흘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현대 소설을 주제로 논문을 쓸 것을……. 내 발등을 내가 찍었다. 이렇게 소설을 주야장천 읽는 인생을 보내다가 급기야 《너를 찾아서》라는 스릴러 소설을 집필해 2022년에 발표했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영국 드라마와 영화로 읽는 영국 문화’를 연재하고 있고 다양한 매체에 다수의 칼럼을 게재해왔다. 《세계대전 Z》, 《토니와 수잔》, 《차일드 44》, 《사브리나》 등 80권이 넘는 소설과 그래픽노블을 우리말로 옮겼고,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공저), 《우리 지금, 썸머》(앤솔로지), 《단어의 배신》 등을 썼다. 에세이집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는 웹툰이 제작되어 연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