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블린 데일의 꿈이 깨어진 것은 어느 가을날이었다.
사랑을 맹세한 약혼자가 공작위를 물려받던 날.
‘쉽게 말씀드려서 이것은, 혼전 계약서입니다.’
제러드는 소설이 그녀의 목숨과 다름없다는 걸 알면서
공작 부인으로서의 품위를 위해 집필을 관둘 것을 요구한다.
그 밤. 에블린은 공작저에서 도망쳐 나와, 트리센 제국을 떠난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리튼 왕국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며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에블린의 다짐은 유효했다.
“레이너스 황후께서 데니스 하울 작가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
“에블린 데일 양. 당신을요.”
출판사 대표, 브라이언트 클립튼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
“출발하기 전에 시간을 내 주시죠. 우리가 서로를 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 테니까요.”
설마. 에블린이 미간을 조금 더 찡그렸다.
“클립튼 씨가 저와 함께 가시나요?”
“네.”
“제국까지요?”
“어디든지요.”
에블린은 말을 잃은 채 브라이언트의 얼굴만 마주보았다.
거절을 해야 하는데 마땅한 근거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와 동행할 수 없는 이유.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이유를 대야 해.’
그러나 간절히 궁리해도 빠져나갈 틈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낭패였다.